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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문(遇仙門)’, “저 문 지나가서 신선 만나볼까”
‘우선문(遇仙門)’, “저 문 지나가서 신선 만나볼까”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2.05.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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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하천 엿보기] <2> “아는 만큼 보인다”는 ‘광령 8경’의 신비를 만나다

인류의 4대 문명이 모두 큰 강을 낀 곳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굳이 세계사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에게도 상식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통해 문명을 꽃피우게 되는데 ‘물’이 가장 큰 요소였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의 하천이 제주인들의 삶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조선후기 한학자 김영호가 시로 읊은 광령 8경

광령교 근처에 '광령 8경' 을 소개하는 비석이 서 있다. 바위 위에 비석이 놓인 모습이 이채롭다.

공동학술조사단 일행이 출발하기에 앞서 탐사 코스를 점검하고 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내 4개 박물관의 공동학술조사에 따라나서기 시작한 후로 두 번째 탐사다.

지난 5월 17일의 두 번째 탐사는 다시 광령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천 지형과 식생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계곡으로 들어서기 전, ‘광령 8경’을 안내하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광령 8경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조선후기 한학자인 김영호가 ‘무수천 8경가’에서 이 일대 계곡의 절경을 노래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광령 8경은 해발 200m 근처에 있는 제1경 보광천, 제2경 웅지석, 제3경 용안굴, 제4경 영구연, 제5경 청와옥, 제6경 우선문, 제7경 장소도, 제8경 천조암까지 이어진다.

광령교에서 출발, 한라산 방향으로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 이날 탐사에서 8경 중 처음 맞닥뜨린 모습은 개구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인 ‘청와옥(靑瓦屋)’이었다.

# 개구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의 ‘청와옥(靑瓦屋)’

광령 8경 중 제5경인 ‘청와옥(靑瓦屋)’. 개구리가 웅크린 자세로 입을 벌린 형상이다.

광령교에서 계곡을 따라 300m 가량 오르다 보니 계곡 동쪽에 입을 ‘떡’하고 벌린 거대한 개구리 모습의 바위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바위가 겹겹이 쌓인 모습이 마치 개구리가 다리를 잔뜩 웅크린 채 입을 벌리고 먹이를 노리는 것 같다.

광령 8경 중 제5경인 청와옥(靑瓦屋)이다. 일명 ‘청제집’이라고도 한다.

한학자 김영호는 ‘청제집 석고에 사람이 있어 / 두들기니 / 궁각 두 음이 서로 이어지는구나’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실제로 안내를 맡은 사진작가 강정효씨가 바위를 타고 올라가 안쪽에서 돌을 쳐보니 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북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 한라산 남북방향 하천, 급경사 때문에 퇴적 지형 발달 못해

광령천 계곡은 비가 올 때, 비 온 후, 그리고 바짝 말랐을 때 등 시시각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상 광령천 계곡의 하류 지역에 속하는 곳인데도 이 일대 지형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곳곳에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다른 지역의 강 하류에서 모래나 자갈 등의 퇴적층 지형이 발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하류 지역에서도 강 상류지역에서 나옴직한 지형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에 대한 답은 제주도 섬의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제주 섬의 모양이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지만 남북으로는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하천이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발원하지만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들은 비교적 완만하게 흐르는 반면, 남북 방향의 하천은 급경사의 지형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하류 근처에서도 퇴적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햇빛과 어우러진 우선문(遇仙門), “천상의 문이 바로 이 모습일까”

광령 8경 중 제6경인 ‘우선문(遇仙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마치 대문처럼 선계(仙界)로 이끄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청와옥을 지나 숨을 헐떡이며 험한 계곡을 타고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이 수시로 눈앞에 펼쳐진다.

광령 8경 중 제6경인 ‘우선문(遇仙門)’의 빼어난 절경은 때마침 햇빛이 계곡으로 들어오는 각도와 어우러져 말 그대로 천상으로 통하는 문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잔뜩 구름이 끼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면 신선이 금방 눈앞에 나타날 것 같은 곳이다.

산악인들이 암벽등반 연습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지형이다. 우선문 주변으로는 암벽 등반 코스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곳곳에 고리가 박혀 있는 모습도 보였다.

계곡을 깊이 알면 알수록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곳이 광령천이다. 공동조사단이 깎아지른 듯한 바위를 기어오르고, 도저히 올라갈 길을 찾지 못해 잠시 계곡을 벗어났다가 다시 계곡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주도내 4개 박물관이 함께 하고 있는 공동학술조사단 일행이 조심스럽게 광령천 계곡을 따라 거슬러올라가고 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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