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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는 벽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장애라는 벽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 조승원 기자
  • 승인 2010.04.14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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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희망이야기]⑧장한 장애인대상 수상자 강지훈씨의 이야기

시각장애인들이 인쇄매체를 접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기가 생겨 예전에 비해 수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점자에 의존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다.

13일 오후 제주시 월평동에 위치한 제주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강지훈씨(26, 제주시 이도2동).

그는 제30회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즈음해 제주특별자치도가 선정한  '올해의 장한 장애인대상' 수상자다.

그 역시 선천적 시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점자교육에 힘쓰며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준 것이 이번 대상을 수상하게 된 주요 공로다.

강씨는 제주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교육 교사로 근무하며 인터넷 상이나 컴퓨터에 저장된 문장이나 글을 점자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점자정보단말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시의 업무 협조 요청을 받아 시정홍보지 등을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점자로 교정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선천적 시각장애인보다 사고나 당뇨 등 질병으로 인해 시력이 떨어진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많아요. 하지만 그들도 책을 읽고 싶어하고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어하죠. 그런 분들이 점자를 익힐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는 사고나 당뇨 등으로 시력을 잃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다.

어렸을 때는 장애에 대한 생각을 가지지 않고 친구들과 격의 없이 지냈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인 7~8살이 되자 특수학교냐 일반학교냐 하는 첫 번째 벽을 만났다.

# 장애로 인한 벽, 벽 그리고 벽...

특수학교를 선택하고 제주영지학교에 입학한 그는 우선 점자를 읽혀야만 했다. 장애를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집에 살면서 먹고 싶은 것 먹고 살던 어린애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했고, 정해진 것만 먹어야 했으니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그래서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 내 친구, 형, 누나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죠."

초등학교 시절, 나름대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두 번째 벽에 부딪쳤다.

점자를 통해 공부해야 했던 그와, 눈을 통해 공부할 수 있었던 비장애인은 공부의 속도나 능률면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 대학 진학 생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안마사자격증을 딸 수 있어 먹고 살 정도는 됐을 것이라 고백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려서 어머지를 여의고, 아버지도 고등학교 2학년 쯤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형, 동생이랑 셋이서 살아가야 했어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을 구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하지만 주위의 만류 그리고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그를 우석대학교 특수교육학과로 이끌었다.

대학 생활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대학생활 4년 내내 방학기간을 이용해 안마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벌어야 했고, 시험을 치러야 할 때면 대필자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대학내 자치기구인 장애학생복지연합회에 몸담아 장애학생의 학습권과 이동권을 위해 앞장서서 사회활동에 참가했다.

지난 2007년 힘겨이 대학을 졸업하며 교사자격증을 취득했으나, 그는 여기서 세 번째 벽을 만나야 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어요.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많이 나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인 그때만 해도 취직하기 어려웠죠. 능력이 있어도 일을 못하는, 일자리 구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능성있고 능력있는 장애인들이 많은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하는 걸 보면 안쓰럽죠..."

그는 점역.교정자격증을 취득해 지난해 4월부터 제주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세번째 벽을 뛰어 넘었다.

#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숨지 마세요. 밖으로 나오세요"

그는 이제 네 번째 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가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제 꿈이 홀로 전국일주를 하는 건데, 올해 보행자용 네비게이션이 나온다고 해서 기대됩니다. 그리고 누군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시내버스로만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쉽진 않겠지만요."

앞으로도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도록 교육과 조언에 힘쓰고 싶다는 강지훈씨.

또 시각장애인들이 홀로 설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는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꽁꽁 숨어있기보단 밖으로 나오세요. 몸으로 부딪히고 넘어지며 단련된다는 것을 제가 직접 느꼈거든요. 장애라는 건 별 것이 아닙니다. 장애의 벽을 깨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보이니깐요." <미디어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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