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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문 연 '대화', 그러나 '갈등의 골'은 깊었다
포문 연 '대화', 그러나 '갈등의 골'은 깊었다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8.08.2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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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김태환 지사, 해군기지 반대 강정 주민과 대화

제주 해군기지 논란과 관련해, 그동안 극한 대치상황을 보여왔던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정이 드디어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21일 오전 10시 제주도청 2층 회의실에서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연일 거리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을 비롯한 마을 대표자 8명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여론조사를 통한 해군기지 정책결정 후 처음 가진 이날 '만남'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대화가 없었기 때문인지, 양자간에 깊고 깊어진 '갈등의 골'을 확인한 채 1시간30분만에 마무리됐다.

대화에서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불만'과 '원성', '요구'는 크게 표출된데 반해, 정작 김 지사는 "서면 답변하겠다" "나중에 검토해 알려드리겠다"는 등 한발 물러서 대화의 진전은 이뤄지지 못했다.

오전 10시, 회의장에 들어선 김태환 제주지사는 강동균 마을회장을 비롯한 대표자 8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자리를 함께 했다. 김 지사는 인사말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도보행진도 하며 여러가지로 마음을 표출했는데, 이는 모두 강정마을을 위한 애정표현으로, 도지사로서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도지사가 처음에 주민 동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지금까지 대화 한번 하지 않다가 오늘에야 대화를 하게 됐다"며 서운한 감정을 표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화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쏟아져 나왔다.

#강정 "여론조사 방법이 합당한가" VS 김 지사 "보편타당한 방법이고, 도의회와도 협의했다"

양홍찬씨는 "도지사가 주민동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느닷없이 공정성이 훼손된 여론조사를 통해 정책결정을 한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또 입지선정 과정에 있어서도 타당성 조사 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결정에 있어 여론조사 방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태환 지사는 "여론조사는 도민의 의사를 묻기 위한 보편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 여론조사를 한번도 아니고 두 차례에 걸쳐 했고, 도의회와도 협의를 했다"며 여론조사를 통한 정책결정 방법이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김 지사의 이같은 설명에, 또다른 강정주민은 "여론조사를 실시함에 있어 충분히 도민들에게 홍보하고 실시하는 것과, 전혀 모른 차원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일례로 숙소를 예약함에 있어 정작 숙박업소 주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어느 곳을 할 것이냐고 외부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에 있어 강정마을 참석자들이 크게 흥분해 하며 탁상을 내리치며 고함이 오가기도 했다.

#"강정주민들의 오손도손 살 권리는 도지사도 막을 권리가 없다"

또다른 주민은 "김 지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당장 해군기지를 철회하라"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헌법

10조에 위반됐다. 강정마을은 오손도손 잘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도지사도, 대통령도 막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행복추구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권리로 이를 훼손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옳은 말씀이다"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또다른 주민은 그동안 김 지사가 강정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제대로 갖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그는 "해군기지를 결정하면서 강정주민들과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하면서 강정주민들과 대화도 없이 이럴 수 있나"라며 "이런 도지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쏘아 붙였다.

그러자 김 지사의 얼굴은 상기됐다.

주민들의 불만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한 주민은 "특별자치도 출범 후 제주도는 큰 일 났다. 공무원들이 모두 지사만 쳐다본다. 시장으로서 역할과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전달사항만 전달하고 있다"며 서귀포시장의 행보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강정마을회 공식 반대입장에도 밀어붙이는 이유 뭐냐"

이날 강정마을 주민들의 문제지적은 크게 3가지다. 마을회는 제주도에 공식적으로 건넨 건의서를 통해 "우선 법원의 합법적 판단에 근거한 마을 주민투표 결과에 의해 강정마을회의 공식적인 해군기지 반대입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도당국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을 대표자들은 "이미 강정마을이 후보지로 결정된 근거로서 지난해의 여론조사는 그 위법 부당성이 입증된 바 있다"며 "그럼에도 막무가내 밀어 붙인다면 마을 공동체가 깨어지고 날로 골이 깊어져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마을 주민간의 갈등은 그럼 누가 책임질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두번째는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후보지로 선정되는 과정의 여론조사 등의 절차적인 문제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절차적인 문제점 등을 인정해 지난해 국회는 제3의 대안으로 해군기지가 아닌 '민군 복합형 기항지'를 주문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끝끝내 해군기지 건설을 전제로 이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세번째는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로서의 타당성 논란이다. 주민들은 "강정마을이 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 중 핵심지역인 범섬을 마주하고 있고, 강정 앞바다는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제442호인점, 제주도지정 해양도립공원인 점, 환경부지정 생태계보전 지역인점, 해수부 지정 해양보호구역 등 무려 5개의 보호구역으로 둘러싸인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수심.해류흐름, 육안만으로 판단돼 졸속으로 추진되는 기지건설 여건 차원만이 아닌, 그것이 군사기지든 크루즈항 개발이든 과연 강정이 입지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제주도 차원의 면밀한 검토와 조사가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답변해라"

여러가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주민들은 강정마을회의 4가지 요구사항을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강정마을회는 먼저,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 및 연구용역은 국회의견인 민항 중심에서 왜곡돼 사실상 해군기지를 기정사실화해 이뤄지는 내용이므로 어떠한 결과물이 나와도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번째로는 입지선정에 있어 항구의 입지적 조건, 건설시 비용, 사후관리비용, 효율성,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문화재적 가치의 보존 등 여러가지 사항을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도지사가 정하는 장소로 국책사업을 무조건 실시할 수만은 없으며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 및 연구용역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실시해 최적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와함께 제주도와 해군은 지금까지 추진과정에서 민주성, 공정성, 투명성을 도민에게 보여주지 못했으므로, 이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결과에 대해 해당지역 주민의 주민동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도 요구했다.

강정마을 대표자들은 이 4가지 요구에 대해 8월25일까지 답변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김 지사 "여러분들 얘기 듣고 감동 느꼈다. 답변 꼭 하겠다"

이에 김 지사는 마무리 발언을 통해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와준데 대해 감사하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마음에 간직했던 것을 말씀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이 자리에서 '즉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신중하게 하기 위해 여러분이 건의한 4가지 사항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을 해드리겠다. 저도 고향이 농촌이지만,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고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오늘 여러가지 말씀을 해주신데 대해, 종합적으로 도의 입장을 정리해 회신해 드리겠다"고 말한 후, 자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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