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미군은 참 나쁘다.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왜 폭탄을 퍼붓는 거야?"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보고 나오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한 말이다.
사실 그랬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비춰진 미국의 모습은 결코 1970년대와 1980년대 '조작된 이데올로기'의 선상에 있는 '우방'이나 '평화의 사신'은 결코 아니었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민간인의 희생이나 피해는 크게 감안하지 않는 그러한 군으로 묘사됐다.
영화는 1950년대, 산골마을, 태백산, 함백산, 미전투기, 미군,, 북한군, 남한군, 인민군, 전투기 조종사, 팝콘, 수류탄, 뱀, 꽃단 여자, 폭격, 감자, 고구마, 멧돼지, 미식축구, 이념갈등 등 무수한 요소들을 이용해 웃음을 주고, 때로는 감동을 주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비껴간 두메산골 '동막골'이란 마을을 무대로, 이곳에 들어온 국군과 인민군, 그리고 미군이 한데 모여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는 웃음과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극 전개가 흥미위주에 지나치게 무게감이 실리면서 아쉬움을 남긴 점은 있지만, 어쨌든 흥행에는 크게 성공한 듯 하다.
지난 4일 개봉한 이 영화가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한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관객 5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들은 결코 평화의 사신이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재미있었다'라는 평을 남기고 있지만, 설정된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 기존 전쟁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이 영화의 개봉은 과연 가능했겠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국군과 미군은 평화와 자유를 지키려는 상징으로, 인민군은 평화와 자유를 짓밟는 상징으로 묘사됐던게 기존 전쟁영화의 주류였다.
하지만, '웰컴투 동막골'은 달랐다.
국군도 평범한 국군이 아니었다. 동막골을 찾은 국군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획일화된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는 '폭파 명령'에 고뇌하다 자군 병력에서 이탈한 '인간적 군인'이었다. 인민군 역시 부녀자와 부상자를 우선 생각하고 함께 하는,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인간'으로 설정됐다. 여기에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우연히 동막골에 들어선 미군 스미스도 국군과 인민군이 동막골 사람들과 융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동막골'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하지만 연합군 부대내에서 작전을 총괄하는 미군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작전본부 내의 국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민간인지역을 인민군 요새로 오판하고, 폭격을 감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극 설정으로 인해 영화 마지막 부분인 대규모 폭격이 감행되는 부분을 숨죽여 본 관객들은 '노근리 사건'을 떠올리며 미군에 대한 반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결코 '평화의 사신'이나 '자유 수호자'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 보여주는 '미군'은 오랫동안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있던, 아직까지도 분명히 남아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역습'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초등학생의 감성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나쁜 일 했는데 어떻게 대통령 됐지?"
이번에 말을 바꿔, TV 얘기를 하고자 한다.
"전00 대통령이라는 사람, 참 나쁘다."
요즘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고 있는 '제5공화국'를 볼 때마다 옆에 있는 딸이 하는 말이다.
12.12 쿠데타에서 별 두개의 장군이 정부와 군대를 장악하는 과정이나, 광주시민을 무참히 짓밟고 대통령 권좌에 오르는 모습은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어린 동심에 크나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불과 몇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통치했던 대통령에 대한 얘기였기에, 현역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이기에 동심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저렇게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됐어?"
그 물음에 마땅히 답할 구실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그렇게 됐어..."라고 말문을 흐린다.
"존경해야 할 대통령은 누구고, 나쁜 대통령은 누구누구야?"
불쌍한 대학생과 강제징집된 군인을 시켜 대학가와 노동계를 염탐케하고, 공안사건을 조작하는 일명 '프락치 사건'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이제 갓 초등교육을 시작한 동심에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조작된 사회', '부끄러웠던 시대'를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진실은 진실대로 정리되고 규명돼야 한다.
하지만 뒤늦게 드러나는 '역사적 충격', 깨어지는 '환상'이나 '이미지'에 대한 혼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사회변혁의 흐름 속에서 기성세대의 책무는 너무나 무겁기만 하다.
<윤철수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