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위기의 제주 한라산, 광범위한 전염병에 고통 받는 나무들
위기의 제주 한라산, 광범위한 전염병에 고통 받는 나무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4.01.02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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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잎녹병, 넓게 퍼져 ... 고사되는 나무 늘어날 듯
복원 위한 양묘장 묘목에서도 각종 전염병 넓게 퍼진 상태
인공 식재된 나무도 영향 부족 ... 쇠퇴 앞으로 심화될 듯
'주목' 등의 나무에서도 전염병 확인 ... 대책마련 절실
잎녹병에 감염된 한라산 구상나무./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잎녹병에 감염된 한라산 구상나무./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제주 한라산의 나무들이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라산의 대표 나무인 '구상나무'의 경우 다 자란 성목뿐만 아니라 복원사업을 위해 키우고 있는 묘목에서도 광범위한 병이 확인됐다. 이외에 복원을 위해 인공적으로 심어진 구상나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는 최근 '한라산 구상나무 병해조사 용역' 결과를 공개했다. 

최근 몇 년간 한라산에서는 구상나무의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2017년에 30만7000그루 이상이었던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2021년 29만4000여 그루로 4년 사이에 1만3000여 그루가 고사하는 등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라산 구상나무 쇠퇴 주요 원인은 기후변화의 가속화 등이 꼽혔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과 가뭄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쇠약해진 나무가 2차적으로 각종 병원균의 공격을 받으면서 고사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라산연구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 한라산에서의 광범위한 병해 조사에 착수했다. 이 결과 구상나무의 경우 지금까지 제주는 물론 국내에서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병인 '잎녹병'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잎녹병’은 병원균을 가진 포자가 새로 자라나는 잎에 달라붙으면서 감염시키는 방식으로 전염이 이뤄지는 병이다. 병에 걸린 나무는 잎이 떨어지면서 광합성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로부터 2~3년이 지나면 나무 전체가 고사하게 된다. 

이 병에 걸린 한라산 구상나무는 2022년 9월 한라산 영실의 병풍바위와 선작지왓, 장구목 등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이 최초 발견 이후 잎녹병은 더욱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지난해 4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조사 과정에서 영실의 병풍바위에서 선작지왓까지 넓은 면적에서 잎녹병에 걸린 구상나무가 확인됐다. 특히 병풍바위에서 선작지왓에 걸친 등산로 주변의 구상나무는 절반 이상이 잎녹병에 걸려 있었다. 

이 때문에 향후 몇년 사이에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라산국립공원 등산로 인근에서 구상나무의 잎녹병이 확인된 구간.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한라산국립공원 등산로 인근에서 구상나무의 잎녹병이 확인된 구간.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구상나무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구상나무 복원을 위해 묘목을 키우는 구상나무 양묘장에서도 병이 상당히 퍼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3년 이하의 어린 구상나무에서 잎이 갈색으려 변하면서 떨어지는 '잎떨림병'이 확인됐다. 5년 이상된 묘목에서도 잎의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초록색 잎이 떨어지는 증상이 확인됐다. 이외에 자라나는 나무의 가지 끝 부분이 마르면서 갈색으로 변하는 '가지끝마름병'도 확인됐다. 

이처럼 어린 나무의 경우는 자라나는 과정에서 잎에 문제가 생길 경우 향후 성장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잎떨림병 등에 감염돼 잎이 완전히 떨어지면 광합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고사를 피한다고 해도 향후 각종 전염병에 취약해진다. 

구상나무 양묘장에서 자라는 어린 구상나무의 가지 끝이 마르는 '가지마름병'이 확인되고 있다.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구상나무 양묘장에서 자라는 어린 구상나무의 가지 끝이 마르는 '가지마름병'이 확인되고 있다.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구상나무를 위해 이미 한라산 중턱에 인공적으로 심어진 나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유산본부에서는 지금까지 사제비동산에서 윗세오름과 장구목에 걸친 구간에 구상나무의 복원을 위해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이렇게 심어진 나무 중 상당수가 나무 가지 끝이 죽는 피해를 입고 있다. 

더욱이 인공적으로 심어진 나무의 많은 경우가 잎이 왜소하고 누렇게 변하면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여러 나무가 좁은 장소에 심어지다보니 토양에서 흡수할 수 있는 영양분이 제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외에 자연적으로 자란 구상나무와는 달리 바람과 눈, 기온, 노루의 섭식 피해 등에 더욱 많이 노출된 것도 인공적으로 심어진 구상나무의 쇠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구상나무 뿐만이 아니다. 한라산의 넒은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주목' 역시 광범위한 전염병의 피해를 받고 있다. 특히 영실 병풍바위부터 선작지왓에 걸쳐 등산로를 따라 20~30그루의 나무가 가지마름병에 걸린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구상나무 뿐만 아니라 한라산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들에서도 광범위한 전염병이 확인되면서, 제주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라산 식생 전체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장기적이고 면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라산연구부 관계자는 "이번 용역 결과를 통해서 앞으로 3년간 지속적인 연구용역과 모니터링에 나설 예정"이라며 "향후 이어지는 연구를 통해 구상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데이터를 더욱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구상나무 보전 대책을 세밀하게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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