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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하수 처리 사각지대 ... 눈돌린 행정에 땅에 스며든 '똥물'
제주 하수 처리 사각지대 ... 눈돌린 행정에 땅에 스며든 '똥물'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8.11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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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민원실] 일도1동 일부 거주지, 공공하수도 연결 안돼
제주시 "거주지 앞 골목길, 사유지라 하수도 설치 못해"
도시계획도로도 "경사 심하고 좁아 힘들다" 폐지

거주자들이 자체적으로 하수도 놓기에도 힘든 상황
하수처리구역 내 지역, 개인하수처리시설도 불가
제주시 일도1동 운주당공원 인근의 한 골목길. 이 골목길은 사유지로 이 밑으로는 공공 하수도 등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 골목길에만 면해 있는 일부 주택들은 공공 하수도와 연결돼 있지 않아 하수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제주시 일도1동 운주당공원 인근의 한 골목길. 이 골목길은 사유지로 이 밑으로는 공공 하수도 등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 골목길에만 면해 있는 일부 주택들은 공공 하수도와 연결돼 있지 않아 하수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제주시 일도1동 운주당공원의 인근에서 살아가던 80대 A할머니에게 어느날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무려 50만원에 달하는 액수를 내라는 내용이었다. 5만원도 아니고 50만원이나 내야 한다는 과태료 고지서를 집어든 할머니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벌금은 커녕, 평생을 이처럼 많은 액수의 과태료를 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하수였다. 할머니가 살아가던 집에서 하수가 흘러넘치면서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고, 제주시에서 이에 대한 A할머니에게 상당한 액수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할머니가 살아가던 집이 있는 일도1동은 제주시 동지역으로, 하수처리구역 내 지역이다. 하수도법상 하수처리구역 내 지역에서는 도로를 따라 설치돼 있는 공공하수도와 집이 연결돼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집과 연결된 공공하수도를 따라 집에서 만들어진 하수가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정화처리를 거치게 된다.

하수처리장과 거리가 있어 공공하수도 연결이 힘든 하수처리구역 외 지역에서는 이른바 ‘정화조’로 불리는 개인하수처리시설로 하수를 처리할 수 있지만, A할머니가 살고 있던 곳은 하수처리구역 내 지역이라 하수도법상 개인하수처리시설도 설치하지 못한다. 하수처리를 위해서는 무조건 공공하수도와 연결을 해야 한다.

하지만 A할머니의 집은 공공하수도과 연결돼 있지 않았다.  A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이 할머니가 살아가는 집의 옆집, 그 옆집, 그 옆집도 공공하수도과 연결돼 있지 않았다. 집앞으로 골목길이 지나가고 있었고, 이 골목길이 A할머니와 이웃들 거주지의 유일한 통로이지만, 여기에는 공공하수도가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하수처리시설도 설치할 수 없기에, 갈 곳은 잃은 하수는 땅으로 스며들다 결국 넘쳤다. 제주 하수처리의 사각지대였다. 

이 일대에서 수십년간 살아온 이들이, 자신들의 집이 공공 하수도와 연결돼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일대에서 2010년 5월부터 2013년 1월에 걸쳐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고 이에 따라 하수도가 도로를 따라 설치가 됐다. 이 도로 개설에 따라 인근 사업장 및 거주시설과 공공하수도를 연결하는 배수설비 설치가 이뤄지게 됐고, 이에 대한 지원이 제주시 차원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새로운 도로와 이어진던 A할머니와 그 이웃들 집 앞 골목길은 모두 사유지였다. 이 때문에 A할머니와 그 이웃들은 집 앞 골목길에 공공하수도를 설치는 물론 배수설비 설치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게 됐다.

주민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집 앞으로 공공하수도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에서 1970년대부터 살았는데, 그 후 2010년까지 우리들에게 하수도 설치 한다, 못한다 이런 말도 없었어. 집앞 도로에 하수도가 없어서 하수처리를 하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알지 못했지. 아예 몰랐어.”

이들이 살던 집에서 만들어진 온갖 하수는, 그냥 그렇게 땅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수십년의 세월이었다.

제주시 일도1동 운주당공원 인근의 한 골목길. 이 골목길은 사유지로 이 밑으로는 공공 하수도 등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 골목길에만 면해 있는 일부 주택들은 공공 하수도와 연결돼 있지 않아 하수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제주시 일도1동 운주당공원 인근의 한 골목길. 이 골목길은 사유지로 이 밑으로는 공공 하수도 등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 골목길에만 면해 있는 일부 주택들은 공공 하수도와 연결돼 있지 않아 하수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이들에게도 희망은 생겼다. 2017년 A할머니와 그 이웃들이 살아가던 집 앞 골목길이 도시계획도로로 지정된 것이다. 골목길을 따라 새롭게 도시계획도로가 개설되면 이 도로를 따라 집 앞으로 공공 하수도가 지나갈 수 있게 되고, 할머니와 이웃들은 집앞을 지나는 하수도와 집을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일대 주민들은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도시계획도로 계획은 폐지된다. 도로의 경사가 심하고 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계획 폐지로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집의 하수를 공공 하수도와 연결시키기 위한 방법은 결국 이들이 사비를 들여 사유지인 골목길을 따라 배수설비를 설치하고, 공공하수관까지 연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골목길의 소유주와 협의를 벌여야 했다.

골목길의 소유주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한 명과 협의를 벌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다 A할머니를 비롯해 인근 주민들은 모두 70·80대 할머니들이었다. 이들에게는 골목길의 소유주를 일일이 다 찾는다는 것도 힘들었고, 다 찾아낸들 이들과 협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더군다나 제주시마저도 “사유지이기 때문에 정비를 하지 못했다”고 손을 놓와버린 곳이었다. 70·80대 할머니들이 나서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행정당국으로부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제주시 측은 “행정에서 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행정이 해야하는 부분이 있고, 주민들이 해야할 부분이 있다. 주민분들이 70·80대의 어르신분들이라 문제를 해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행정에서 일일이 나서서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만 제주시는 공공 하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문제의 골목길을 다시 한 번 도시계회도로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도시계획도로상 보행중심도로로 지정하고 보행도로를 만드는 방안이다. 이 보행도로를 만들면서 이를 따라 공공하수도를 설치할 수 있다. 제주시는 이 내용을 오는 10월부터 진행될 예정인 2030 관리계획재정비용역에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그렇게 되면 인근 주민은 자신들의 집 앞으로 지나는 공공하수도까지만 배수설비를 설치하면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검토’다. 관리계획재정비용역에 이 도시계획도로 지정이 추가되지 않을 수도 있다. 추가가 된다고 한들 해당 도시계획도로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제주도내 수많은 도시계획도로가 아직 삽도 떠보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골목길 역시 이처럼 계획상으로만 남겨져 장기간 방치될 가능성이 없다고할 수는 없다.

도시계획도로는 지정 후 20년 동안 집행이 안되면 폐지된다. 지정되도 방치되다 폐지될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

그 동안 공공하수도와 연결되지 못한 할머니들의 삶의 질은 제자리 걸음을 할 수 밖에 없다.

이 할머니들은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제주시 등에 민원을 넣고 도움을 요청하고 하지만 행정당국에서 전해들은 말들은 ‘안된다’나 ‘검토해보겠다’ 뿐이다.

그 동안 제주도내 하수처리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게 된다. 그 동안 하수는 제주의 땅속으로 스며들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할머니와 주민들, 그리고 제주섬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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