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복종을 거부한 남방큰돌고래들의 귀향, 그리고 남은 과제는?
복종을 거부한 남방큰돌고래들의 귀향, 그리고 남은 과제는?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7.20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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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돌이와 함께 잡혔지만, 고향엔 늦게 돌아간 복순이
복순이와 함께 먹이 거부한 태산이 ... '복종하지 않겠다'
국내 수족관 남은 돌고래 21마리 ... 2마리는 바다쉼터로

[10년 전 제주바다 돌아간 제돌이 ... 돌고래가 만든 '희망의 여정']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제주의 바다를 거닐던 남방큰돌고래 ‘복순이’는 2009년 5월1일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앞바다에서 어민이 쳐놓은 정치망 그물에 또다른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함께 걸렸다. 이후 제돌이와 함께 제주도내에서 돌고래 공연을 이어가던 업체인 ‘퍼시픽랜드’에 팔려갔고, 그 이후 좁디좁은 수족관에서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로부터 만으로 4년이 지난 2013년 7월18일, 제돌이는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 속에서 고향이었던 제주바다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때에도 복순이는 고향바다에서 직선거리로 450km 이상 떨어진 과천의 서울대공원 안 수족관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함께 잡힌 제돌이는 바다로 돌아갔지만, 복순이에게 고향바다는 먼 이야기였다.

지난 7월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사진=미디어제주.
지난 7월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사진=미디어제주.

제돌이가 고향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2013년 3월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당시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에 혼획된 남방큰돌고래를 불법적으로 거래했던 퍼시픽랜드가 기소되면서 수족관에 갇혔던 남방큰돌고래을 몰수해 자연으로 돌려 보낼지 아니면 수족관에 놔둘지가 화두로 떠올랐고, 대법원에서 ‘몰수형’이 확정되면서 수족관에 갇혀 있었던 남방큰돌고래들이 제주바다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남방큰돌고래가 제주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다.

1990년 수족관에 갇힌 첫 제주 남방큰돌고래인 해돌이를 포함, 혼획돼 ‘로얄마린파크’ 혹은 ‘퍼시픽랜드’에 팔려온 남방큰돌고래는 모두 26마리다. 우리나라는 1986년 고래류에 대한 상업적 포경을 금지한 국제포경위원회(IWC) 가입국이었기 때문에 어민의 그물에 혼획된 돌고래는 바로 바다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 26마리의 돌고래는 불법적으로 거래됐다. 2012년 검찰은 이에 대해 퍼시픽랜드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해당 법에 대한 공소시효가 3년에 불과했다. 즉 2009년 이전에 불법포획된 돌고래들은 법원의 판결 영향권 밖에 이었다.

제주에서 2009년 이후 포획된 남방큰돌고래는 제돌이를 포함해 모두 11마리다. 이 중 6마리가 대법원의 몰수 판결이 이뤄지기 전에 숨을 거뒀다. 이 6마리의 돌고래들은 숨을 거둬서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수족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대법원의 몰수 판결이 이뤄지는 순간까지 살아남아 고향바다로 돌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나머지 5마리의 돌고래는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태산이’였다. 이 중 제돌이와 춘삼이가 2013년 7월18일 고향 바다로 돌아갔고, 삼팔이는 그보다 앞선 같은 해 6월22일 자유가 됐다.

나머지 2마리, 복순이와 태산이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2013년 당시 야생에서의 생존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었고, 제돌이 등과 함께 고향 바다에 방사될 수 없었다. 대법원의 판결 당시 퍼시픽랜드의 수족관에 갇혀 있었던 복순이와 태산이는, 몰수 판결이 확정되자 바다가 아닌 서울대공원의 수족관으로 옮겨졌다.

♢복종을 거부했던 로멘티스트 돌고래들

복순이와 태산이가 야생방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던 것은 이들이 복종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제돌이와 함께 그물에 걸려 잡혀온 복순이는 드넓은 바다를 잃고 수족관에 갇힌 순간부터 먹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들에게 먹이를 공급한다는 것은 돌고래 공연을 위한 훈련의 한 체계였다. 돌고래들이 훈련을 잘 받거나 돌고래 공연 과정에서 동작을 잘 취했을 때에 보상의 차원에서 먹이가 주어지는 형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즉 복순이가 먹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돌고래 공연 자체를 거부한 것이기도 했다. 복순이가 잡힌지 두 달 정도가 지나 그물에 걸려 수족관에 들어온 태산이도 훈련과 먹이를 거부하긴 마찬가지였다.

2015년 당시 함덕해역에서 야생 적응훈련 중인 태산이의 모습.
2015년 당시 함덕해역에서 야생 적응훈련 중인 태산이의 모습.

더군다나 복순이는 다른 돌고래들과는 달리 부리 부분이 뒤틀려 있었다. 업체 측에선 훈련을 거부하는데다 부리까지 뒤틀린 돌고래를 공연에 내보내는 것보다는 그냥 수족관에 놔두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돌고래는 같은 수족관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 이후 태산이는 수년간 일편단심으로 복순이의 곁을 지키게 된다. 복순이가 먹이를 먹지 않을 때에는 태산이도 먹이를 먹지 않았다. 어떤 이들을 태산이를 보고 ‘로멘티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두 돌고래 사이에서는 2012년 6월 새끼 돌고래도 태어났다. 복순이와 태산이의 새끼 돌고래는 성체가 되기도 전에 숨을 거뒀지만, 분명 두 돌고래의 사랑의 결과였다.

♢바다로 돌아갈 때도 함께였던 두 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가 바다로 돌아간 후 1년여가 지나 복순이와 태산이의 야생방사 프로잭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때에도 두 돌고래의 먹이 활동이 야생방사의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야생에서의 사냥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두 돌고래가 머물고 있는 수족관에 살아있는 고등어를 풀어놓았지만, 복순이는 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복순이가 먹질 않으니 태산이도 먹이를 거부했다.

두 돌고래는 수족관에 살아있는 고등어를 풀어 놓은지 한달이 지나서야 조금씩 고등어를 사냥해 먹기 시작했고, 그 이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앞바다에 마련된 가두리 시설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나타냈던 순간이 있다.

지난 7월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관찰된 뛰어오르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지난 7월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관찰된 뛰어오르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복순이와 태산이가 서울에서 제주로 이송될 때, 복순이는 임신상태였다. 하지만 복순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면서도 임신 여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도 복순이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복순이와 태산이는 그대로 서울에서 제주로 옮겨졌다.

두 돌고래가 제주의 가두리시설로 옮겨진지 8일이 지났을 때, 복순이는 죽은 돌고래를 출산했다. 죽은 상태로 태어난 새끼 돌고래는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그럴 때마다 복순이는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들어올리려 했다. 복순이는 자신의 새끼 돌고래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야생에서는 이처럼 갓 죽은 새끼 돌고래를 어미 돌고래가 수면위로 들어올리는 행위가 종종 관찰된다.

이와 같은 아픔을 견디며 두 돌고래는 함께 2015년 7월5일 마침내 고향 제주바다로 완전히 돌아갔다. 그날 가두리 양식장의 마지막 그물이 사라졌을 때, 두 돌고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헤엄쳐 사라졌다. 이날 복순이와 태산이의 야생방사 행사를 위해 당시 해수부 장관까지 현장에 찾아오는 등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인 이들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물 속으로 사라졌다. 잡힌 순간부터 복종을 거부했던 두 돌고래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거부하며 자신들이 태어난 바다로 나아간 것이다.

복순이는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주의 바다에서 생존해 있는 것이 관찰된다. 다만 태산이는 지난해 5월 성산읍 해안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야생방류 7년 만이었다. 끝까지 복순이의 곁을 지켰던 태산이는 그렇게 고향바다에서 명을 달리했다. 

지난2015년 7월태산이와 복순이가 기존 남방큰돌고래 무리와 함께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사진=해양수산부 제공
지난2015년 7월태산이와 복순이가 기존 남방큰돌고래 무리와 함께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사진=해양수산부

♢남은 돌고래들의 운명은?

지난해에는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야생에 방사됐다. 방사 직후 비봉이의 생사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국내 수족관에 남아 있던 제주출신의 남방큰돌고래는 ‘비봉이’가 마지막이었다. 32년을 이어온 남방큰돌고래 불법 포획과 거래의 잔혹사는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를 찾지 못한 다른 돌고래들이 국내 수족관에 남아 있는 상태다. 그 중에서도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돌고래가 일본에서 건너온 두 마리의 큰 돌고래 ‘태지’와 ‘아랑’이다.

이 두 돌고래 역시 제주의 돌고래 공연 업체인 퍼시픽랜드에서 이름이 바뀐 ‘퍼시픽리솜’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퍼시픽리솜이 돌고래공연을 중단하면서 이 두 돌고래는 거제도의 ‘거제씨월드’로 옮겨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해수부의 허가가 없었다. 불법 반출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사법기관의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태지’와 ‘아랑’은 향후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대진항 구항에 마련될 예정인 ‘바다쉼터’로 옮겨져 남은 여생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환경이 다른 국내 바다에 무작정 방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늦어도 2025년 경에는 대진항 구항에 바다쉼터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다쉼터의 경우는 어민들의 어업활동이 비교적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태풍 등에 파손될 가능성이 적은 장소에 만들어져야 한다. 해수부와 도내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등은 이와 같은 조건에 부합한 장소를 찾다 이제는 항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영덕군의 대진항 구항을 최적지로 판단했다.

해수부 등은 향후 이 대진항 구항에 두 돌고래가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을 수 있도록 방음벽 등을 설치하고, 두 돌고래가 충분히 활동할 수 있도록 수심도 더 깊게 만드는 등의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더라도, 국내에는 여전히 19마리의 돌고래가 수족관에 갇혀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벨루가’로 불리는 흰돌고래가 5마리, 일본에서 온 큰돌고래가 14마리다. 이 돌고래들 중 일부는 보유한 업체에서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지만, 약속의 이행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유를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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