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10년 전 제주바다 돌아간 제돌이 ... 돌고래가 만든 '희망의 여정'
10년 전 제주바다 돌아간 제돌이 ... 돌고래가 만든 '희망의 여정'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7.18 14: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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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그물이 잡힌 제돌이, 2013년 7월18일 방사돼
올해 딱 10년 ... 제주 대정읍 앞바다서 건강하게 생존
지난 6월9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100여마리가 무리를 이뤄 헤엄치고 있었다. 이날 무리에는 10년 전 제주바다에 방류된 제돌이와 춘삼이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미디어제주.
지난 6월9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100여마리가 무리를 이뤄 헤엄치고 있었다. 이날 무리에는 10년 전 제주바다에 방류된 제돌이와 춘삼이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어느 시대에나 자유로움을 향한 움직임은 오랜 노력이 더해졌을 때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자유를 얻는 일이 쉬이 이뤄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면서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더해 나아갔을 때 얻은 결과는 언제나 더욱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게 남겨지곤 했다. 제주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2009년 5월 초, 제주 남쪽의 신풍리 앞바다를 헤엄치던 젊은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의 눈 앞을 보이지 않는 그물이 막아 섰다. 두 남방큰돌고래는 어느 방향으로 헤엄처도 그물을 벗어날 수 없었다. 두 남방큰돌고래를 막아선 것은 어선이 쳐놓은 정치망 그물이었다. 해안선 길이만 해도 400km가 넘는 광할한 제주바다 전역을 헤엄치던 남방큰돌고래들이었지만, 눈 앞에 넓은 바다를 두고도 그 곳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물을 확인한 어민는 법에 따라 두 남방큰돌고래를 다시 풀어줘야만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1986년 상업적인 포경을 금지한 국제포경위원회(IWC) 가입국이었다. 의도적인 포획은 물론 바다에 설치한 그물에 고래류가 우연히 걸려드는 ‘혼획’이 이뤄지더라도, 즉시 방류를 하거나 해양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그물 속 남방큰돌고래를 확인한 어민은 남방큰돌고래를 바로 풀어주지 않았다. 그 어민은 전화기를 들었지만 연락을 한 곳 역시 해양경찰이 아니었다. 연락이 닿은 곳은 제주도내에서 돌고래 공연을 해오던 ‘퍼시픽랜드’였다. 그 두 남방큰돌고래는 이후 1500만원에 퍼시픽랜드에 불법적으로 팔려나갔고, 이어 ‘제돌이’와 ‘복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제돌이와 복순이가 이후 다시 고향 제주바다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의 노력도 필요했다. 이 오랜 시간과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제돌이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것이 2013년 7월18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 제주 연안 남방큰돌고래 포획사

돌고래를 동원한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퍼시픽랜드는 '로얄마린파크'라는 이름으로 1986년 9월10일 제주에서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 로얄마린파크에서 공연을 펼치던 돌고래들은 모두 일본에서 수입된 큰돌고래였다. 당시 일본의로부터의 돌고래 수입에는 상당한 금액이 투입됐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로얄마린파크 측은 큰 돈을 들여 일본에서 돌고래를 수입해오지 않더라도 돌고래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제주 앞바다에선 어선의 그물에 종종 남방큰돌고래들이 혼획됐고, 이렇게 돌고래 한 마리를 혼획한 어민에게서 로얄마린파크에 연락이 온 것이다. 로얄마린파크 측에서 그 돌고래를 사들였다. 1990년 7월이었다. 돌고래에게는 ‘해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수족관에 갇힌 최초의 제주 남방큰돌고래였다. 해돌이는 그 후 5년을 로얄마린파크의 수족관에서 살았다.

제주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나름 안정적인 돌고래 공급처를 확보한 로얄마린파크는 그 후 다른 사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선에서의 혼획을 통해 확보한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서울대공원에까지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의 수족관에서 5년을 살았던 해돌이가 시작이었다. 해돌이는 1995년 10월 서울대공원으로 이송됐고, 그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로얄마린파크는 그 대가로 서울대공원으로부터 물개를 받았다.

당시 법에 비춰봤을 때에도 명백한 불법행위였지만, 그 당시 국내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돌고래와 물개의 물물교환을 불법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내 유명 언론에도 “제주 어민에게 생포된 돌고래를 로얄마린파크가 사들여 훈련에 성공했고, 과천대공원이 제주산 돌고래 구입을 희망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로얄마린파크는 ‘해돌이’ 이후 모두 25마리의 남방큰돌고래를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연안 바다 전역이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주의 서쪽 신창바다에서 동쪽 종달바다까지, 북쪽 제주시 연대마을 앞바다에서 남쪽 서귀포시 남원 앞바다까지 모든 곳에서 돌고래가 혼획됐다. 이렇게 혼획된 돌고래들은 마리당 7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중 해돌이를 제외하고 서울대공원까지 이송됐던 돌고래는 모두 7마리다. 먼저 1997년 서귀포시 중문 앞바다에서 불법포획된 ‘대포’와 1998년 제주시 한경면 금등리 앞바다에서 포획된 ‘금등이', 2001년과 2002년 중문 앞바다와 성산읍 앞바다에서 잡힌 ‘돌비’와 ‘쾌돌이’, 그리고 2009년 성산읍 신풍리 앞바다에서 잡힌 ‘제돌이’와 ‘복순이’, 같은 해 한림읍 귀덕리 앞바다에서 잡힌 ‘태산이’ 등이다.

이처럼 불법적으로 잡혀 서울까지 이송된 남방큰돌고래들의 자유를 향한 여정에 시동을 건 것이 바로 ‘제돌이’였다.

♢돌고래들의 자유를 항햔 희망의 여정

제돌이가 처음 확인된 것은 2007년이었다. 그 당시 제주 연안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아가고 있던 모습이 관찰된 바 있다. 하지만 그 후 제돌이는 자취를 감췄고, 2년이 지난 2009년 과천의 서울대공원 수족관에서 공연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2년만에 발견한 제돌이는 드넓은 바다가 아니라 좁디 좁은 수족관에 갇힌 모습이었다. 이 모습에 국내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제주 바다에서 헤엄을 치던 남방큰돌고래들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서울대공원까지 조달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2012년 2월에 이와 관련된 재판이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로얄마린파크’에서 이름을 바꾼 ‘퍼시픽랜드’에 수산업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고, 퍼시픽랜드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돌고래들에 대해서는 몰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퍼시픽랜드 측은 제판과정에서 제기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쟁점은 돌고래들에 대한 몰수형이 이뤄질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또 몰수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몰수형 이후 돌고래들의 야생방사가 가능한지가 주요 핵심 사항이었다.

수족관에서 수년 동안 갇혀 지내온 돌고래들에 대한 야생방사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그 당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당시 여론의 중심에 있었던 제돌이의 경우 2009년 5월에 잡혀 햇수로 4년 째 수족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제돌이가 이미 수족관 생활에 적응했기 때문에 야생으로 돌아가 본능을 회복하고 생존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제돌이를 비롯해 수족관에 갇혀 있던 많은 남방큰돌고래의 야생방사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 그들은 많은 논문과 해외사례를 들며 수년간 수족관에서 지냈던 돌고래들도 충분한 적응훈련 과정을 거친다면 야생에서 무리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생방사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이와 같은 의견은 당시 5대5로 팽팽하게 맞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서울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2년 3월12일 오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대공원에 갇혀 있는 제돌이를 제주바다에 방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다만 박 시장의 이와 같은 발표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갔을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 시장이 제돌이 방류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구럼비가 있는 제주 앞바다에 방사한다”고 말한 점을 꼬집어 이를 강정해군기지 논란과 연결하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은 서울시 산하기관이었지만, 서울대공원 역시 야생방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언론과 서울대공원의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발표 이후 제돌이의 야생방사를 위한 ‘제돌이시민위원회’가 꾸려졌고, 이후 법원에서는 불법적으로 포획된 남방큰돌고래들에 대한 몰수형을 결정했다. 2012년 4월4일 제주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이뤄졌고, 퍼시픽랜드 측에서 즉각 항소했지만 같은 해 12월13일 항소심에서도 몰수형이 선고됐다. 해를 넘겨 2013년 3월에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다시 만난 고향 제주 바다

이후 야생방사와 관련된 사항은 ‘제돌이시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퍼시픽랜드의 수족관에 갇혀 있던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와 삼팔이가 3월 말 성산항에 마련된 야생방사 적응 훈련을 위한 가두리 시설로 이송됐다. 춘삼이는 2009년, 삼팔이는 2010년 혼획에 포획돼 퍼시픽랜드 수족관에 머물던 남방큰돌고래들이다.

이 두 돌고래가 가두리시설로 옮겨진지 2개월여가 더 지난 5월에는 서울대공원에서 제돌이가 고향 제주바다로 돌아왔다. 가두리 시설에 들어간 것이지만, 2009년 7월 제주바다를 떠난지 4년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이었다.

야생방사를 위한 적응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 모두 야생적응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가두리에서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 2013년 6월22일이었다. 그 날 오전 가두리 시설 관계자들은 가두리 시설 밖에서 돌고래가 한 마리 헤엄치는 것을 목격했다. 그 돌고래가 원래 가두리 시설 안에 있어야할 삼팔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그 돌고래를 목격하고 나서였다. 삼팔이는 야생방사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가두리 시설을 ‘탈출’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가두리 시설의 그물망에 약 30cm 가량의 구멍이 뚤려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삼팔이는 그 구멍을 통해 드넓은 바다로 향했다. 가두리를 나간 삼팔이는 한 동안 가두리 시설 인근에 머물면서 헤엄을 쳤고, 그날 오후 성산항 밖으로 벗어났다. 삼팔이는 그렇게 먼저 고향 제주바다로 떠났다.

삼팔이가 그렇게 떠나고 난 후 26일이 더 흐른 2013년 7월18일에는 가두리 시설의 그물이 모두 제거됐다. 정확히 10년 전 오늘이었다. 제돌이와 춘삼이의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돌고래는 드넓은 고향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제돌이와 춘삼이는 1개월의 차이를 두고 고향 제주바다에서 어민의 그물에 걸렸다. 두 돌고래 모두 고향 바다를 떠난지 햇수로 5년, 만으로 4년만에 찾은 자유였다.

지난 6월9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무리를 이뤄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붉은색 원 안에 있는 남방큰돌고래가 10년 전 제주바다로 돌아간 춘삼이다. /사진=미디어제주.
지난 6월9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무리를 이뤄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붉은색 원 안에 있는 남방큰돌고래가 10년 전 제주바다로 돌아간 춘삼이다. /사진=미디어제주.

그로부터 꼬박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돌고래들은 제주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지난달에도 제돌이와 춘삼이가 함께 대정읍 앞바다에서 다른 돌고래들과 무리를 이뤄 함께 헤엄치는 장면이 <미디어제주>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보다 먼저 가두리 시설을 탈출한 삼팔이 역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제주 바다를 누비고 있다. 제주도내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지난 7월10일에도 대정읍 앞바다에서 삼팔이가 관찰됐다.

이들의 야생방사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최초의 성공사례로 남았고,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존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돌고래들의 야생방사에 긍정적인 가능성을 증명해 내고 있다.

지난 6월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중 '생태법인 제도 공유를 통한 아시아-태평양 생태평화공동체 형성’ 세션에서 토론자로 나선 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는 제돌이를 비롯한 남방큰돌고래의 야생방사를 두고 ‘희망의 서사’라고 말했다. 이 희망의 서사를 더욱 널리 알려 남방큰돌고래를 더욱 잘 보호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힘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돌이의 여정은 고통스러웠고 힘겨웠지만 그 순간들을 견디며 지나왔고, 이제는 제주바다에서 함께 살아가는 남방큰돌고래의 보호에 있어 하나의 상징이자 힘, 그리고 희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제돌이와 함께 그물에 걸려 수족관에 갇혔던 복순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외 로얄마린파크의 수족관에 갇혀야 했던 수많은 돌고래들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여기에도 쉬이 넘기지 못할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기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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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18 17:22:09
너무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