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고백
일종의 고백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06.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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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12화

4월부터 비는 주로 밤 시간에 내렸다. 그 덕분에 이른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마디로 선하다. 밤새 내린 비로 나무와 풀은 더욱 초록빛이 도드라졌고, 도로는 먼지가 싹 쓸려가 매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장마에 접어들고 나서도 제주에는 비가 자주 밤에 내린다. 어떤 날은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밤새 몰래 내린다. 앞베란다에 거주하는 매화나무부터 꽃기린, 긴기아난, 꽃피는 염좌, 사랑목 등이 담긴 크고작은 화분들은 활짝 열어놓은 베란다 창 앞으로 옮겨다 놓았다. 수돗물보다 빗물이 식물에 좋을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필자와 식물 모두 4월 고사리장마부터 6월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아침의 선한 기운을 계속 받고 있다.

시계꽃. 늘 쉽지 않았던 시절을 품은 꽃 같다.
시계꽃. 늘 쉽지 않았던 시절을 품은 꽃 같다.

# 비 내린 뒤 아침에 받는 선한 기운

얼마 전 방영이 끝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본방사수하며 시청했다. 각자에게 ‘해방’의 대상은 다를 것이다. 수줍음이 많았던 청소년기에는 부끄러움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랐고, 독립심이 강했던 청년기에는 가족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으며, 일 욕심이 컸던 30대에는 육아로부터의 해방을 욕심내었다. 이렇게 살아온 연대표대로 해방을 정리하다 보니 필자의 마음속에는 뭔가 벗어나고 싶은 꿈틀거림이 늘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나오는 해방클럽 4인방에게 해방은 ‘힘겨움의 원인을 아는 것, 문제점을 아는 것’이었다. 결국 해방은 얽매여 있는 것에서 벗어나기, 다시 말해 내 안의 욕망을 억누르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것, 이것을 인정하고 보듬고 바꿔나가다 보면 밤새 내린 비 덕분에 우리가 느끼는 아침의 선한 기운처럼 맑은 구석이 드러날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의 해방클럽 회원들. 해방은 힘겨움의 원인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해방일지'의 해방클럽 회원들. 해방은 힘겨움의 원인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 늘 쉽지 않았던 시절

특히 <나의 해방일지>를 시청하면서 귀에 착 꽂힌 노래들이 있다. 염창희(이민기 분)와 그의 친구들이 창희의 어머니를 보내고 쓸쓸한 분위기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한 친구가 기타를 들고 와서 읊조리듯 노래를 부른다.

아무 말도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이름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와
아주 멀리 가버릴 줄 왜 몰랐을까
사랑 그렇게 보내네

이문세가 부른 <사랑, 그렇게 보내네>를 들으며 2월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또 다른 어머니가 생각나며 그리움이 커졌다.

또 곽진언이 부른 <일종의 고백>은 필자의 젊은 날을 소환했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내 마음대로 될 것만 같았던 시절이었지만, 쉽사리 풀리지 않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 지금 정도의 나이가 되면 무엇이든 내 뜻대로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뜻을 접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 결국 삶은 ‘늘 쉽지 않았던 시절’인가 보다.
 

# 새로이 꿈을 꾸는 즐거운 상상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밤새 내린 비로 아침의 선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생기를 얻고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럼에도 ‘뭐, 언제 내 마음대로 착착 진행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라며 느슨해지려고 노력한다. 또 그럼에도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마음대로 안 되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싶다. 또 그럼에도 그 자리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이 꿈을 갖게 되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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