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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4
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4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6.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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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1년 3월호] 스페셜 시리즈
김석윤(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제17대 회장/건축사사무소 김건축)
건축가 김석윤
건축가 김석윤

근대주거건축의 유입

근대성 주거란 합리주의적인 도식에 따라 방들이 용도별로 구획되고 공간이 가족중심으로 조직되는 주거형식을 말한다. 이전 전통시대의 신분 과시적이고 공적인 성격 위주이던 주거방식에서 방들의 조직기준을 가족 위주로 대응시키게 된 것이 근대성의 내용이다. 일편 이 변화된 생활방식을 담아내는 물리적 장치인 주택은 생산과정에서 신재료의 발명과 공법 과학화와 기계화된 생산방법으로 공급이 이루어진다. 근대성 주거건축의 성립 기반이 이러하다.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는 동양의 어느 국가의 경우보다도 급격하였다. 근대와 조우하는 과정에 개항과 일제 강점하에 우리 주거건축의 고유성은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개항과 함께 서구 열강의 기독교 선교사들은 서구식의 주거를 들여왔고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식민통치를 담당할 관리들의 관사와 은행과 철도, 통신과 해운계통의 회사 관련 사택들을 대량으로 건설하면서 자신들의 주거형식을 이곳에 유입시켰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전역이 대략 비슷하였지만 선교사의 양식주택이 보이지 않고 간결하게 정제한 일식 기와집과 함석지붕들의 집합을 보여주었던 것이 반도의 다른 도시들과 대조되는 근대 제주의 도시경관이었다.

한때 한국의 대표 미감으로 채용되던 바 있는 처마의 선을 가진 한옥 기와집이 다풍, 다우인 제주의 기후 특성에 불리한데서 보급이 제한적인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근대의 이전시기에 인적 교류와 경제적 의존도가 본토보다는 오히려 일본과 더 빈번하였던 제주도의 사회적 배경이 이곳 도시경관과 근대주거의 성격형성에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시각일 것이다.

주택의 전통적 생산양식이 해체되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상품시장으로 재편성되면서 새로운 건축재료인 시멘트와 벽돌, 특히 집의 외관에 영향이 큰 지붕재료가 산가와라(棧瓦)로 불리우는 일식기와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리고 주택의 외형이 변화할 수 있는 물질적 기초로서 유리와 철재가 공급되고 목재의 제재기술과 목조구법 전반에 합리적이고 규격화된 일식공법이 확대 보급되기에 이른다. 암, 수키와가 모양이 다른 한와에 비하여 산가와라(棧瓦)는 제작과 공법 양면에 매우 간편하고 효율이 뛰어났다. 양회 즉 시멘트가 외벽의 마감재료로, 혹은 쌓기의 사춤재료로 쓰이기 시작하고 마감공법으로 씻어내기, 뿜기, 갈아내기 등 다양한 외장 기법들이 활용되었다. 새로운 건축재료와 공법으로 시가지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근대경관의 시작이다. 이 새로운 재료와 공법과 건축이념의 유입은 일본인 관리들을 위한 관사와 사택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 일본인 관사

1906년 통감부 설치와 함께 한반도는 사실상 식민 통치체제에 들어갔다. 일제는 합방 이전부터 이미 식민정치를 기정화하고 관사 건설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일식관사는 조선총독부 산하관서의 관사와 철도국의 철도관사 그리고 육군관사의 세계통 이외에도 체신국과 지방관청에서 자체 관사를 짓고 있었으나 총독부의 관방 회계과가 주도한 관사가 규모와 다양성에서 두드러졌다.

총독부에서 전담하였던 관사는 관리의 직급에 따라서 규모가 연면적 백평 이상의 저택급에서 부터 열평 남짓한 하급관리용 숙사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다양하였다고 한다. 칙임관 관사는 330㎡ 이상, 주임관 관사는 99∼198㎡, 판임관 관사는 66∼83㎡ 식으로 등급이 10단계로 구분하고 있었다. 관사는 사용부재의 규격과 평면이 표준화되어 동일한 설계안으로 전국에 획일적으로 건설되었다. 간(6척=약1.8m)을 모듈로 하여 각 공간의 크기를 규격화하고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 관사건축의 특징이다.

일인관사는 초기에는 일식주거형식으로 지어지다가 곧 양식의 접객공간과 일본식 주거공간이 결합된 속복도형 화양절충식으로 바뀌었다. 명치유신 이후 일식주택이 서구주택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형식이 중복도형주택인데, 그들의 전통 주거의 근대화 과정을 나타내는 평면형식이다. 중복도형 주택은 방들을 개실화하기 위하여 내부 복도를 둔 데서 온 명칭이다.

관사는 접객기능이 중요한 만큼 이 성격에 알맞도록 현관에 붙여서 양식 응접실과 서재 그리고 객실이 마련되고 이 부분에 많은 면적을 할애하고 있다. 응접실과 서재는 입식가구를 사용하는 서양식이고 객실에는 일본식 다다미를 깔았다.

내현관 우측 입구 쪽에 하녀실이 있고, 일본식 자시키(座敷)와 차노마(茶間) 그리고 부엌과 욕실이 있다. 후면에 있는 엔가와(側緣)는 접객공간과 생활공간을 잇는 보조 이동공간으로 사용된다. 또한 관사는 표준 평면도를 한 지역에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택지를 조성하고 도로를 비롯한 필요 기반시설을 보급하는 데에 서구 근대건축의 단지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 때에 주택의 평면과 입면 그리고 외부공간의 권역 분배 개념 등, 계획기법들이 근대적 설계이념을 따르고 있는 것이 관사건축의 성격이다. 이 경험은 이후 우리 근대주거단지의 생산에 활용되었다.

제주에는 대표적 일식 관사주거로 도사(島司)관사와 제주측후소 관사, 법원장과 검사장 관사가 있었다. 제주목관아지의 동측 일우(一隅) 현재 노인회관이 도사 관사의 옛터인데, 1980년 초에 철거된 이 관사는 330㎡가 넘는 칙임관급 관사로 해방후 철거 때까지 역대 도지사의 관사로 활용되었다. 오현로 서측 노변에 제주지방법원장과 검사장 관사가 연접하여 자리해 있었다. 이 관사는 목골구조에 라스치고 시멘트 몰탈로 마감하는 오카베(大壁) 구조에 지붕은 일본식기와를 덮었다.

주택의 양식은 언제나 고급주택이 변화를 선도하고 이를 모방하는 속성을 지닌다. 강점기 한국사회는 관료 중심사회로 민간 자본 형성이 미약한 단계에 있었으므로 건축활동이 모두 관에 집중되었고 관리들이 사는 관사가 근대화된 모범주택으로 민간 주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했다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제주읍내 부자동네인 일도동과 삼도동 도립병원 주변에 몰려있던 큰 집들은 모두 이 일식 관사를 본보기로 해서 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일본인 사택

사택은 관사의 형식과 구분하여 특정할 수는 없으나 기업체의 임·직원들을 위해서 건설한 주택으로 일인들 주도의 은행이나 동척회사와 물류회사 소유의 주거를 이름하는 것으로 제주시의 경우에는 건입동의 현 동초등학교 인접 지역에 단지형식의 동척회사 주정공장 사택과 (주)조선운송회사의 마루보시 사택이 자리했었고 일도동에 식산은행의 사택이 있었다.

동척회사의 사택은 마름모의 평스레이트를 이은 박공지붕 형식의 간이형 일식 목구조에 외벽은 누름대를 규칙적으로 설치한 비늘판벽 외장으로 지어졌다. 십여 동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서 단지를 이루었었다. 1940년초 전쟁 말기 고구마로 주정을 제조하여 군수를 조달하기 위하여 건설한 주정공장의 사원 주택이다. 크레오소드를 칠한 검정색 널판벽이 집단적으로 줄지어 있던 이색 경관을 1970년대까지 여러 채가 남아 있었으나 최후 남은 한 채를 실측한 자료가 있다. 당초에 다다미가 깔렸을 방들은 온돌로 개조된 이후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은행 사택은 동척회사의 사택보다 더 고급스러운 외장에 일식기와인 산가와라(棧瓦)를 덮은 화양 절충식 중복도형 평면으로 관사와 유사하였다. 현관에 붙여 양식 응접실을 두고 가족이 사용하는 내현관을 따로 두었다. 접객공간 가까이에 별도의 화장실과 내현관을 설치해 생활공간과 구분하고 현관 근처에 하녀실과 복도 끝 부분에 부엌이 있다. 접객공간과 주생활 영역을 적절히 분리하려는 서양식 계획기준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들 관사와 사택과 일본인 주택들은 해방 후에 적산가옥으로 한국인에 귀속되는데, 그 수가 남한에만 60,000호 이상이었다 한다. 제주도에는 이제 남은 사례가 없으니 주거건축사 일부가 공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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