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근대성 주거공간-1'
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근대성 주거공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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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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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12월호] SPECIAL SERIES
김석윤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제17대 회장/건축사사무소 김건축

근대주의 혹은 현대주의로 번역되는 모더니즘은 19세기 후반에 서구에서 발생한 역사 전반의 급진적 의식이다. 봉건성에 대한 반항과 산업혁명으로부터 동기된 이 사고는 합리성과 이성 중시, 과학정신을 지상으로 삼고 기본적으로 모든 낡은 것에서부터 새로운 것으로의 이행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어 왔다.

근대성 주거공간은 시민의식의 확대와 합리주의적 가치관의 확대에 따라 방들이 각각 용도에 따라 구분되고 가족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되는 한편, 생산방식에서 공업화와 새로운 건축미학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주거형식을 일컫는다.

전통주거에서는 접객이나 의례, 휴식, 섭생 그리고 생산 행위와 소비활동이 모두 주거에 통합되어 있고 모든 것을 자급적으로 해결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거 공간 안에서 사교적 모임과 의례행사와 같은 공적성격의 생활은 점점 감소되고 그 규모는 축소되어 갔다. 공적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범위도 줄어들면서 이 모임이 주거 내에서 중요한 일상사로 남아있거나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예전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공적 모임이라 하더라도 예와 달리 가족 중심적 생활의 보충 내지 연장선으로 간주되는 위상적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들 전래 의례 중 제례의 경우만 보더라도 과거에는 가정생활의 중심에 선조의 봉제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정 경제에도 기제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었다. 부지간에 전통 제례는 소규모 가족행사로 위축되고 오히려 아이들의 생일잔치가 더 의미를 가진 세상이 되었다. 더러 가족모임의 성격을 벗어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이러한 생활방식의 변화는 주거에서 공간적인 분포나 각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가족형태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주거공간의 용법 결정의 주요 인자인 것이다.

주거공간의 용법을 결정하는 내적 조건인 가족형태는 혈통적인 수직적 축, 즉 친자관계의 축과 그리고 수평적이고 결연적인 계열화의 축인 결혼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서 이 두 개의 축을 따라서 나타난 사태 가운데 결정적인 내용은 자녀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 것과 결혼의 정의가 새로워진 것이다. 결혼이 가족과 가족간의 교환관계에서 사랑에 기초한 관계로 변화하였고 그 결과로 아이들의 양육방식과 자녀의 가족 내에서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는 서로 무관하던 남녀간의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되고, 결혼이 이제는 가족 안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이런 사고의 변화에 따라 이전 시대까지는 과시적이고 공적인 방식에서 이용되던 주택은 가족관계가 우선시 되는 공간으로 변모되어 간다. 그리고 분화된 공간과 그것의 이용 방법을 가족생활을 기준으로 대응시키고 일치시키려 하는 욕구가 발생하였다. 이 욕구가 주거의 근대성을 이루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주거의 중심에는 핵가족화가 가져온 가족주의가 있다는 얘기이다.

주거의 구성단위인 방들의 변화에서 근대성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현관
현관은 우리 전통주거에는 없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양과 달리 신을 벗고 방에 들어가므로 신을 벗어 놓을 공간으로 현관이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도 처마 밑 댓돌 위에 신을 벗어 놓으면 비바람에 대책이 없는 불편을 겪으면서도 근대에 들어와서 현관을 새로 들일 때까지 이 습성을 이어오고 있었다.

현관은 일본식에서 배워온 명칭이다. 현관(玄關), 즉 좁고 어두운 공간이란 의미에서 붙인 이름일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원명은 ‘entre’ 혹은 ‘entrance’이다. 이 현관은 주거공간에 들어온 내객들을 분류하고 내방한 목적에 따라 가야할 곳을 지정해 주는 공간이다. 이곳이 여하히 조성되느냐에 따라서 출입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집안 사람들의 프라이버시와 내밀성이 보호될 수도 노출시킬 수도 있다.

다시 현관은 주거의 내부와 외부공간을 분절하고 이를 통과하는 동선의 흐름을 적절하게 차단하거나 여과하여 그 의미를 확대시킬 수도 있다. 사회로부터 사적인 공간을 보호하는 이를테면 반사회적 성격을 지닌 공간이 현관인데, 방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어야 하는 좌식생활 관습을 가진 우리들은 이곳에서 탈착화를 위한 동작과 또 내부와 외부의 접점공간이므로 의식이 전환되는 결절점으로의 의의를 새겨볼 만하다.

탈착화나 착의동작이 가능한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외출에 필요한 신변 용품들을 이곳에 보관해 두면 생활의 편의성을 훨씬 더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거실
전통주거에서 대청은 여름철의 기거와 제례 등 비일상적인 의례 위주의 공간이다. 대청은 일식, 양식, 절충주택이나 문화주택이 들어오면서 크게 변화를 겪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름도 대청이나 상방으로 불리우다가 만들어진 물리적 형상에서 유래하여 ‘마루’라는 용어로 쓰이는 것도 근대 시기의 일이다. 대청의 전면에 유리문을 달아서 이 공간을 사철 상용하도록 하고 나아가서 탁자와 소파를 배치하여 입식의 거실이나 응접실로 사용하게 된 변화가 근대의 모습이다. 이제는 대청이나 상방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가족의 단란을 위하거나 접객의 공간으로 성격이 점점 더 굳혀진 것이다.

근대적 주거개념이 도입된 후에도 마루는 전통주거에서와 똑같이 여름공간으로서의 개념이 남아 있어서 반외부공간의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다. 마당과 연결되는 개방공간이고 난방설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온돌방과는 구분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던 곳이다. 거실은 가족적인 단란과 식사와 바느질 등의 가사와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와 접객까지 뒤섞여서 이루어지던 복합적 공간이다.

마루가 거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고 바닥에 판넬난방이 설치되면서 방과 다름이 없는 상시 거주공간으로 변화되었다. 대청이 이렇게 온전히 거실로서의 기능이 확립된 것은 적어도 1980년대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거실은 주거 내에서 가장 개방되고 사회적 기능을 기대할 수 있으면서 복합적 기능들이 소화되는 공간인데, 시기에 따라서는 더러 안방에서 이루어지던 접객과 교류의 기능도 안방이 차차 주침실로 성격이 뚜렷해 지면서 거실에만 한정되어 갔다. 이로써 거실의 복합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근대적 주거공간 구성은 혼성을 배제하고 가능하면 단일한 기능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그 성격이지만 결국 거실은 다양한 기능에 상응하는 공간으로 정의되어서 사적인 성격이 더욱 강화된 침실 등과 확실하게 차별된다.

식당
서양식 주거에서 식당은 손님을 맞이하는 접객공간일 뿐만 아니고 일상적으로 가족들이 식사하거나 모여 앉아서 바느질을 하거나 가족들이 담소하고 어울려 노는 가족적 공간이다.

제주의 전통 주거에서 네 칸집에는 찬방이라는 식사전용공간이 있었다. 전통시대에 일찍이 근대적 공간 분화 현상을 이어온 것은 제주도 주거의 특색 중 하나이다.

근대 이후 식당은 주거공간 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공간이 되었다. 상류주거의 주거를 본으로 해서 이곳에는 호사스런 가구와 그림들과 식기 등을 진열하여 외래객들에게 주인의 신분을 과시하고 가족의 생활하는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사회적 교제의 정점인 동시에 식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사교적인 모임이나 객들의 초대만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고 가족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모이는 공간으로 성격이 더 커지는 것은 근대이후의 변화현상이다. 가족적인 공동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식당이라는 인식과 관련하여 차차 저녁식사는 가족적인 의식으로 부상되어 간다.

식사는 대강 허기를 해결하는 행위를 넘어서 손님을 접대하는 공식적인 식사가 아닌 일상에서의 식사라고 하더라도 가족이 공동의 공간에 모여 가족됨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중요한 장소가 된 것이다.

식사에 대한 이런 인식의 변화와 함께 식당은 가족적인 공동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중심공간이 되었고, 아이들에게는 예절과 매너를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 된 것이 근대주거의 모습이다.

식당은 가족적인 생활과 가족 외적인 생활이 섞이고 교차하는 공간으로 가족화된 주거공간 안에서 가족적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성을 담지하는 새로운 위상의 공간이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식당은 이전보다 더 중요한 사회활동의 장으로, 공적 공간으로 가족적 생활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근대주거에서 식당은 가족적인 대화와 모임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는데,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접객은 서재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이제 식당은 가족의 단란이라는 19세기 부르주아의 꿈이 자리한 주거의 중심적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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