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3년을 되돌아 보며
제주에서의 3년을 되돌아 보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4.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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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10월호] 에세이
홍경범/건축사사무소 홍스

서울에서의 건축 생활을 접고, 고향 제주로 내려와 개인 사무실을 개설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제주건축저널의 회원기고를 부탁받게 되었다. 글재주도 시원찮거니와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홍스건축의 이름으로 완공된 프로젝트가 없어, 글을 쓸 자격이 되나 내심 고민도 하였지만 짧게나마 그간 진행하였던 결과물들에 대해 이야기해봄도 괜찮을 듯하여 승낙하게 되었다.

제주로 돌아와 개인 사무실을 개설하기 전, 가까운 선배 사무실에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단독주택 설계를 맡게 되었다. 도두동의 외지고 막다른 골목길 끝에 위치한, 시간의 흔적이 오래 담긴 집에서 건축주 내외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서울에서 기업이나 조합을 발주처로 두어 협의를 하다, 이렇게 개인 건축주들을 처음 대면해보며 본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단독주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참 신선했다.

건축주는 오래된 집을 허물고, 새로 짓게 될 주택에 대한 기대감이 어찌나 크던지 여러 타입의 디자인이 입혀진 다양한 주택 팸플릿을 준비하여 보여 주었다. 건축주가 워낙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 행여나 최종 결과물이 기대치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여러 차례의 건축주 협의를 거치며 50평이 조금 넘는, 2층 규모의 주택 계획안으로 방향이 잡히게 되었다.

블랙(전벽돌타일)+화이트(스터코) 2개의 톤으로 차분함을, 4개의 돌출된 전벽돌 타일마감의 측벽들로 하여금 보다 풍부한 표정을, 부분부분 채워진 큐블럭들은 외부로부터 시선을 적절히 차단해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며, 큐블럭 특유의 작은 틈 사이로 바람과 햇살, 그림자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였다. 설계 전반에 걸친 모든 과정들이 흥미롭고 즐겁게 진행되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건축주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주에서 첫 설계 작업을 하며 열정적인 건축주를 만나고, 이들의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설계를 진행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의뢰를 받게 되었다. 한림읍 동명리에 위치한, 세 삼촌분의 공동명의 땅이었다. 도두동 단독주택과는 다르게 설계 초기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도 그럴 것이 공동명의의 땅을 세 필지로 균등하게 나누는 과정에서 도로와 어떻게 면하느냐에 따라 재산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향후 이들 삼형제 간에 분란이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경우 수의 필지 분할을 고민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더군다나 3개의 필지 분할을 하며 각각 한 동씩, 총 3동의 건물을 배치해야 했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결과적으로 3동의 건물은 원래가 한 개의 건축물이었던 것처럼 길게 선형으로 배치하게 되었고, 건축디자인 또한 건물의 규모와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같은 재료와 유사한 디자인 어휘로 통일성을 주게 되었다. 무엇보다 각 3동 건물의 전면마당을 하나로 이어주어 북측과 남측에 위치한 도로 사이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길로 형성해줌으로써 건물 간에 시너지가 발휘될 수 있도록 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물론 세 필지의 주인들이 우애 깊은 친형제들이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으리라.

한림읍 동명리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이듬해에 건축사사무소 ‘홍스’라는 이름으로 개업하게 되었다. 첫 시작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처음 몇 달간은 설계사무실이 아닌 개인 작업실로 여겨질 정도로 손님도 뜸하고 원체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설계 공모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때마침 한경면 종합복지회관 설계공모에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다. 개업 첫해는 이렇다 할 일거리가 없을 것임을 신께서 아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셨는지, 개업 후 처음 도전한 설계 공모에서 운 좋게도 당선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상을 치르고 몇 달 안 있어 생긴 호사였기에 당신께서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컸다.

한경면 종합복지회관 당선 후, 한경면사무소와 많은 협의를 거쳐 규모를 일부 축소하고, 공사비 예산에 맞춰 설계변경을 하느라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감사할 따름이다. 2020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며, 개관 후 한경면 주민들에게 편하고 친근한 복지회관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원고를 작성하며 짧다면 짧은 제주에서의 건축 생활과 나의 가정사를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고, 시간이 금세 흘러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다사다난함 속에서도 나를 찾아주고 도움을 주시는 지인들께 감사하고, 부족한 남편 곁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주는 아내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제주건축>저널 덕분에 3년 간의 짧은 1막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초심이라 하였던가.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책 제목처럼,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항상 주변과 내 자신을 뒤돌아보며 정진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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