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파이프라인의 파열, 원 도정 실패 원인이 됐다”
“소통 파이프라인의 파열, 원 도정 실패 원인이 됐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8.04.2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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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제주를 움직이는 소통과 실천의 리더십을 선택하자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응답과 울림 없던 제주 사회, 갑갑증의 울화에 갇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치인들의 난장질로 어수선하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표심 구걸을 위해 너도나도 SNS에 뛰어들면서 문자폭탄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울리는 문자 수신 알림음이 짜증스럽게 한다. 일면식도 없는 정치인들이 보내는 문자는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을 떠오르게 해 기분까지 찜찜하게 만든다. 합법적 선거운동이라지만 시도 때도 없는 일방적 문자 공세가 개인 일상에 불편을 끼치고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쌍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이며 기회주의적 위장술수 소통이 과연 득이 될 수 있을까?

2013년 12월을 통타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에 국민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응답과 울림 없는 차가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서운함을 비난의 절규로 풀지 않고, 따뜻한 공동체적 연대감으로 불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 장애와 갈등이 일상화되고 있는 제주 사회가 아프게 성찰하고 고뇌해야 할 대목이다.

원 지사 임기내내 제주 사회는 갑갑증 속에 갇혀 있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하고 목청 높혀 부르지만 대부분 울림과 응답없이 딴청이나 부렸다. 상대방의 대화 요청에 문을 닫은 채 모두가 일방적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독선적인 모노드라마로 세상사를 난장질했다. 마치 여러 개의 나라, 여러 개의 국민이 존재하는 듯이 응답과 울림 없는 불통 사회의 민낯만을 보여줬다. 특히 응답과 울림의 정치를 내팽개친 정치 지도자들이 제주 공동체의 수호자인 양 자처하는 것은 도민에 대한 심각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섬이라는 지역적 폐쇄성은 제주 사회의 응답과 울림 없는 사회적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가운데 파사현정을 실천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퇴행적 사회 현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제주의 폐쇄성과 반개방성 문화가 사라지고, 정치 지도자들의 상대를 배려하는 소통 정치가 함양되지 않는 한 제주에서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절규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 도민들이 갑갑증의 울화에 계속 갇혀 살아야만 하는 이유다.

# 진화하는 소통 패러다임에 적응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통의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지배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같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통이야 말로 사회 발전을 위한 최고의 미덕이다. 이로 인해 사회 생활에서 생겨나는 관계의 수만큼이나 올바른 소통에 대한 관심은 계속 증가하고 중요시되고 있다. 그래서 소통을 향한 갈망 또한 간절하다. 그만큼 사회성 결핍이 심화됐다는 의미다.

이러한 소통의 패러다임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과거 어느 때보다 넘쳐나고 있다. 대면과 서신 중심의 오프라인 소통시대에서 스마트폰이나 SNS를 통해 타인과 상시 소통할 수 있는 시대로 진입했다. SNS 등의 모바일 혁명은 지리적 장벽을 깡그리 없애, 모두가 동시에 참여하는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자연히 신속성과 투명성이 모든 사회 작용을 지탱케 하는 근본 속성이 돼버렸다.

이처럼 모든 사회가 신속하고 완전히 소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하에서는 정치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야합과 술수가 주도하던 퇴행적 정치 문화로부터 이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설득과 소통 주도의 정치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패거리 정치에 함몰돼 서로를 향해 벽을 쌓고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집단적 자폐성에 빠져서는 성공한 정치를 이룰 수 없다. 설득과 소통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소통의 수단과 방법을 확장하는 기술적 발달이 이뤄짐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손쉽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비대면 소통이 많아지면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소통 패러다임의 진화와 함께 울림 없는 차가운 세상이 점점 깊어지며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체와 소통한다고 SNS를 개문해 놓고 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손쉽게 자신을 알리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SNS의 소통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남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못해 우매하기만하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SNS 메신저에 제대로 적응하는 길은 바로 경청과 울림이다. 경청을 제대로 해야 상대방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며 울림이 있어야 소통의 효과가 배가 된다. 올바른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해 진화하는 소통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것이 세계화의 무한 경쟁시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이다.

# 소통장애는 사회관계의 수만큼이나 많은 폐단을 낳는다

사회적 관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소통의 장애는 사회 관계의 수만큼이나 많은 폐단을 낳게 된다.

첫째, 정치 지도자에게는 소통의 역설로 나타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이들의 소통 회피는 배은의 정치나 다름없다. 정치인들은 권력의 사다리를 오를 때는 주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정상에 서고 나면 소통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소통이 불만을 표출하는 경로이며, 권위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을 방해하고 실행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른바 권력을 가지면 오만과 독선이 소통을 외면케 하는 '소통의 역설'이 작동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직언을 경청하면서 소통을 중시하여야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 당 태종이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명군으로서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위징과 같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언하는 충직한 신하를 가졌고, 그 까칠하고 속 뒤집는 직언을 태종이 경청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림 속에서 소통을 제대로 실천하는 정치 지도자는 흔하지 않다. 정치 지도자가 소통의 역설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상의 자리를 스스로 위태롭게 한다. 귀에 거슬리고 불편한 비판의 소리를 기피하고 듣기 좋은 소리에만 치우칠 경우 전체를 보는 균형된 안목을 잃어 문제 해결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원 지사의 정치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이유다.

둘째, 소통의 장애는 권력의 언어에 빠지게 한다. 소통은 당사자 간에 의미의 공유가 일어나야 한다. 의미의 공유는 응답과 울림을 전제로 한다. 응답과 울림이 없으면 의미의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아 소통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응답과 울림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언어로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이곳에서의 소통은 자신들 집단을 과시하고 상대를 소외시킬 목적으로 악용되는 권위적 언어가 난무하기 십상이다. 자신들의 사익 추구를 위한 권위적 언어가 있을 뿐, 공동체 구성원을 위한 배려의 소통 언어는 사라진다.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언어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배제의 도구로 전락한 이유다.

셋째, 소통과 울림이 없는 사회는 불신 사회를 조장해 공동체의 파열을 가속화한다. SNS의 개설은 서로가 울림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성실히 하자는 상호간 약속이다. 그러나 SNS의 개점 휴업이나 일방적 소통은 이런 약속을 어기는 행위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약속을 지키는 신의다. 그 어떤 조직, 어떤 국가든 마찬가지이다. 규율과 행동 규범을 만들어 이를 지키기로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회야말로 신뢰를 토대로 하는 안정된 사회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약속 파기행위는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돼 사회가 피폐해지는 원인이 된다.

넷째, 사회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가 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직면한 것도 우리 사회의 울림 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자폐적 확증편향의 집단사고(集團思考)에 빠져있던 정치권과 관료 집단에 울림의 공론의 장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예방하지 못해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계 최고 두뇌집단인 IMF의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에선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금융기관의 문제는 시장 자율기능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자폐적 확증편향의 집단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데 철저히 무력했다. IMF는 스스로의 무능에 대한 뼈저린 반성문에서 “조직 내의 부서간 장벽과 부서 이기주의에 의한 소통의 부재(不在)가 눈을 가렸다”고 지적했다.

존 F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직에 오른 지 3개월도 안된 1961년 4월,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쿠바침공(‘피그스만 침공’)을 감행했다. 미국정부는 쿠바 망명객 1400명을 훈련시켜 침투시켰는데 사흘 만에 100여명이 죽고 1200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케네디 대통령과 국방장관, 법무장관, 안보보좌관 등 하버드대학 출신들의 집단적 동질의 침공결정에 그 누구도 반대 입장을 밝힐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로 만든 이 무모한 침공작전은 소통 장애에 의한 집단사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다섯째, 소통 장애는 탁상행정의 단초가 돼 정책 실패를 야기한다.

정책은 과학에 기초한 사회 구성원 설득의 종합 예술이다. 따라서 정책의 메시지는 알아듣기 쉽고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사회 구성원을 설득해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과의 소통과 교감 없이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은 좌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졸속 탁상행정의 대표적 사례였던 ‘세제개편안 파동’ ‘가공식품의 오픈프라이스 제도’ ‘골프장 야간조명 금지’는 국민의 원성이 높아지자 아예 정책을 백지화했다.

정책의 부작용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다가 백지화하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현실성 없고,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정책이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믿음이 실리지 않는 졸속 정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믿음은 쌍방향 소통과 울림 속에서 쌓여가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의 위기가 그 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정부와 정책의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는 주어진 여건하에서 그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있다는 것과 그 정책이 추진되었을 때 그것이 의도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합쳐질 때 생기는 것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는 적절한 타이밍과 소통의 정치력이 어우러질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기회는 놓치면 정책에 대한 기대는 하락하게 된다. 때를 놓치면 기회를 다시 잡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게 된다. 정책 수요층과의 부단한 소통 노력이 있어야 졸속 탁상행정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이유다.

# 소통 장애가 생긴 원 도정 파이프라인, 종국엔 파열됐다

원희룡 지사는 4.17일 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임기 중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지난 지자체장 선거에서 협치의 큰 정치를 통해 제주를 뿌리 채 바꾸겠다며 ‘변화와 희망’을 설파할 때 생기 넘치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돼 안타까웠다.

원희룡 지사는 어느 지사도 누려보지 못한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높은 지지율을 믿고 오만과 오기를 부리며 잠시 방심하면 민심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원 지사는 높은 지지율에 취해 지지율이 허무하고 덧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임기 중반을 지나면서 원 지사의 표정에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막막함과, 목표물을 포착하지 못해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심란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 지경의 자충수에 이르게 됐을까? 제 허물엔 눈감고 남 탓만하는 오만과 독선이 소통 파이프라인을 파열시켜 성공한 지사로 가는 길을 막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지율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고 겸손하게 도민을 대했으면 원 지사의 정치인생도 크게 달라졌을 텐데 말이다.

첫째, 내가 항상 옳다는 오만과 독선은 소통 실패의 보증수표다. 지지율에 취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오만과 독선과 불통의 독버섯이 왕성하게 번식하게 된다. 원 지사의 소통의 역설과 정치의 실패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인데도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여기에 과잉 충성분자들이 속삭이는 달콤한 말이 경계 비상벨의 작동을 가로 막아 오만과 독선과 불통을 더욱 심화시켜 버렸다.

곡절이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통해 성공 방정식을 만들며 지도자가 된 이들은 '내가 결국 옳았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들은 자기가 살아오면서 내렸던 수많은 판단과 결정이 전부 옳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 확신이 강할수록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더 깊어지며 결국 실패한 지도자로 내몰게 한다. 수석 신화의 원 지사 또한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주 지도자가 되었고 대선도 꿈꾸고 있다.

이런 사람의 자기 확신은 스스로 거의 운명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강력할 수 있다. '상대방 비판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고집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독선은 데칼코마니다. 원 지사를 둘러싼 화려한 수식어가 그를 활동적 타성의 덫에 가두어 소통과 정치 실패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원 지사는 도민이 어려움에 처할 때 함께하려는 적극적인 노력보다 건조하고 형식적이며 실무적인 소통에 집착했다. 도민 모두가 힘들어하고 두려워할 때 절실한 지도자의 위로와 공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위기 극복에 도민 참여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의 용기와 감동도 보이지 않았다. 제주국제공항 재난 발생 시 불투명한 행보와 동료를 도우려다 희생한 부하 직원에 대한 배려보다 정치적 모임의 펜크럽 ‘프랜즈원’ 행사를 우선시 하는 모습에서 도민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 지사는 갈등 심화와 위기감이 고조되는 제주 상황에서 여전히 도민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설사 위기 돌파를 위한 실무적인 대응에 실패했더라도 지사가 진정으로 ‘같이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사를 바라보는 도민의 시선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울림의 소통을 통해 위험과 고통에 힘들어하는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국왕은 독일군 폭격으로 피해를 본 지역을 방문하고 군수공장을 찾아가 격려했다. 왕실은 전시의 부족한 물자로 인한 배급제도에 적극 동참해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창문을 판자 등으로 가려 추위를 견뎠다. 국가 위기상황에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보여 줘야 할 전범(典範)을 조지 6세는 제대로 보여 준 것이다. 옛날 가뭄이 극심해 백성의 피해가 커지면, 임금은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돌려 수라상을 받지 않고 삼베옷을 입고 거적때기에서 백성을 위하여 하늘에 석고대죄하는 기우제를 지냈다. 소통 실패로 정치 생명을 위협 받고 있는 원 지사가 곱씹어야 하는 할 가르침들이다.

셋째, 원 지사 임기 시작과 함께 같은 편과의 소통은 강화하고 다른 편과의 단절은 심화하는 일방적·편파적 소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단과 오만의 덫에 걸려, 도민과 도정 사이에 크고 많은 장벽과 구렁이 가로막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로 원 지사의 소통 언어는 도민과 눈높이를 나누는 수평적 대화에 이르지 못하고 위에서 가르치는 훈시적인 언어가 지배했다.

귀를 열어 들으려하기 보다는 말을 많이 하려 했다. 진정한 울림의 소통을 요구하는 도민들의 질타에도 다수의 도민보다 자신들 한쪽의 요구에만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이들의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패거리를 과시하고 타인을 소외시킬 목적으로 악용되는 배제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져 권력의 벽은 더욱 높아지고 소통 자체가 증발해 버렸다. 파사현정의 울림의 정치보다 '그들만의 2013'에 응답한 소통 부재와 독선 정치가 이루어진 이유다.

쌍방향 울림의 선순환 소통은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문제해결을 용이하게 하지만 일방적 악순환 소통은 반대 효과를 초래할 뿐이다. 요즘처럼 사실 갈등이 정책 갈등, 가치 갈등, 자아 갈등으로 이어지면 소통은 점점 악순환의 덫에 갇히게 된다. 도민을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원 지사의 자폐적 확증편향 정치가 악순환 소통의 단초가 되어 실패한 지도자로 내몰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악순환 소통이 민심과 시대정신의 외침에 응답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제주 사회는 지난 4년 내내 갑갑증 속에 갇혔다. 이의 여파로 도민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응답하지 않는 차가운 정치에 대해 분노와 서운함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민심에 적극 호응하고 시대정신을 선점했던 지난 선거 당시 도정의 모습과는 선명히 대조되는 풍경이다. 제주의 명운을 가르는 결정적 시기에 도민 에너지를 모으지 못하는 도정은 죄악을 드러내는 것으로 아프게 성찰하고 고뇌해야 한다.

넷째, 지사가 도정의 모호성을 형상화하고 결단하며 비전을 제시할 때 도민은 감동하게 된다. 대담한 용기의 리더십이 감동의 원천인 셈이다. 원 지사는 소통을 강조했지만 대다수 민심은 그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정이 혼선을 빚을 때 정면 돌파보다는 뒷전에서 몸을 도사리며 시간의 방패 뒤에 숨어 기회만을 엿보고 행운만을 바라는 한심스러운 행정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비서실장 농단 의혹, 영리병원 설립, 대형 투자사업, 제2 공항 추진 등 곤란한 상황에서 원 지사의 말은 주춤대거나 빈곤했으며 선명하지 않았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문을 닫아 침묵과 관망이 일상화되었고 설득에도 게을렀다. 오직 변명과 합리화에만 진력을 다할 뿐이였다.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구차스런 변명과 회피는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제왕적 권력을 즐기면서도 그 파장에 대해선 책임을 회피하는 이러한 태도는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연유로 원 지사의 언어는 자기방어의 삭막함과 피곤함으로 빙빙 헛돌았다. 도민의 울화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도민 눈높이에 맞춘 언어를 쓰지도 않았다. 민심의 분노 표출에 때맞춰 반응을 보여주는 민첩함도 없었다. 그렇다고 민심을 도정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리더십도 보이지 않았다. 도민 사회의 밑바탕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도민을 너무 만만하게 보아 얼렁뚱땅 넘어가려다 만들어낸 자충수였다.

결국 원 지사는 오만과 독선의 덫에 갇혀 임기 종료 때까지도 도민의 생활에 신명과 감동을 확산시킬 수 있는 가슴 설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책은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몸통은 우물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주요 현안은 갈팡질팡하며 설득의 정치가 실패로 끝났다. 그러다 보니 뭐 해놓은 게 없는 무능한 도정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소통과 화합으로 도민을 보듬으며 회개와 반성의 자세로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겸손이 있었다면 분명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다섯째, 지사가 민심을 이반해 제주 공적자산인 공공기관의 보직을 측근 챙기기에 멋대로 써먹으면 도민은 도정에 협조하지 않는다.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사회적 유대감이 사라지는 자리에는 혼자 살아남겠다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가 대신 들어선다. 지사의 신뢰가 무너지면 도민을 향한 소통의 통로가 막혀 갈등과 위기 관리시스템의 작동이 불가능해진다. 이기적 불통 정치가 제주 사회를 흔들리게 하는 이유다.

지난해 제주관광공사는 면세점 등 추진한 사업들이 모두 부실을 거듭하면서 최악의 경영 실적을 나타냈다. 자신들의 실력도 모르고 민간이 뛰어다닐 시장을 너무 우습게 보다 당한 참사다. 하지만 부실 책임을 져야 할 직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유임되었다. 직원 인건비를 도민혈세에 의존해야 할 만큼 존립자체가 위협을 받았던 제주관광공사의 임직원들은 상당한 성과급까지 챙겼다. 사회적 유대감을 훼손시키면서 혼자 살아남겠다는 이기주의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이다. 고통 분담 등 자구 노력 없이 혈세만 축낸다는 사회의 비판에 눈감고 자신들만 살겠다는 부끄러운 불통의 민낯이다.

여섯째, 정책의 입안과 집행 사이에는 본질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특히 이념이나 사상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정책들은 그 간극이 더욱 커진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소통을 근원으로 하는 정책기술이다. 제주 도정의 정책화 기술은 아마츄어 수준으로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원 지사가 지사 재출마의 변에서 밝혔 듯이 책상머리에 앉아 도민과의 소통을 등한시한 당연한 결과다. 영리병원 설립, 쓰레기 수거정책, 교통체계 개선, 제2 공항설립 등이 아마츄어적 정책화 기술에서 탄생한 졸속 탁상행정의 대표적 사례이다. 졸속 정책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공론화 조사위에 떠넘겨 도민들에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책은 기술, 민감성, 지혜를 요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대처는 정책을 “살라미를 얇게 썰어 빵에 끼우는 정교한 기술”에 비유한 적이 있다.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제주 미래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정책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정책은 과학에 기초한 도민 설득의 종합예술이다. 정책화 기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 근원은 소통에 있다.

# 소통 리더십 지사를 선택해 제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소통 장애로 작은 위기를 큰 위기로 만들고, 필요 이상의 대가를 치러왔다. 광우병과 세월호에서 경험했고, 메르스에서 다시 확인하였다. 최근 제주에서는 이러한 소통 장애의 부작용이 퇴행적인 정치 행위와 맞물리면서 제주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정치 계절을 맞아 제주 가치의 고양과 성장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제쳐두고 생색날 일만 하려는 단기 이기주의와 땜질식 처방의 선심성 대책이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내 임기 동안에만 좋으면 된다’는 ‘핌투(PIMTOO: please in my term of office)’ 현상의 정도나 빈도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기 끌고 지지율 높이는 효과는 당장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은 한참 뒤에 나타나 미래 세대에 부당한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단기 성과주의에 혈안이 된 ‘핌투’보다 더 큰 문제는 뜨거운 감자나 인기 없는 일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임기 뒤로 미루려는 ‘님트(NIMT: not in my term)’ 현상이다. ‘님트’ 또한 원 도정 들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주요 현안의 대응에 갈팡질팡하다 공론화에 부치겠다는 것은 ‘님트’에 다름 아니다. 도정의 소통과 의사결정 시스템이 고장나지 않고서야 이런 폭탄 돌리기의 양상으로 변질될 수 없다.

제주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게 보이는데 이처럼 지사의 리더십 부재와 사욕추구 정치, 사회적 소통 장애에 의한 제주 내부의 견해 차이와 이해 다툼이 그 길을 막고 있다. 대형 투자유치, 환경 오염시설 처리, 제2 공항건설, 강정 해군기지 건설, 영리병원 설립, 쓰레기 배출제, 교통 체계개선 등 제주의 산적한 현안 모두가 갈등에 휩싸여 있다.

시민단체 반발과 기득권 저항이 무서워 결단을 미루고 도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지사의 의무는 물론 제주 가치의 고양과 성장도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위다. 제주 미래를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작금의 갈등 현안에 대해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을 미루면 남의 결정을 따라야만 하는 게 권력의 생리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상황이 꼬이고 있는데 단칼에 끊어낼 배짱은커녕 칼자루를 쥐겠다는 리더십도 안보이는 제주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다. 문제는 이러한 소통과 결정 장애의 결과가 고스란히 도민 고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소통 장애에 의한 제주 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정치적·이념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분쟁이 장기화하는 악순환 구조까지 갖고 있다. 그래서 소통 장애에 의한 갈등의 관리와 해결은 제주의 존립이 걸린 문제로 봐야 한다. 제주가 가야 하는 길과 도민의 인식 사이에 생긴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외부로부터 위기가 닥쳤을 때 제주가 하나가 돼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 모든 문제가 소통을 무시한 오만과 독선의 산물이다. 지사부터 서 있어야 할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지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엉뚱한 곳에 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도민과의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경우에라도 제주는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그러나 지사와 도민이 소통과 울림을 통해 그 길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면 갈등과 분란이란 꼬리가 제주를 휘저으며 계속 몸통을 흔들게 된다. 지금 제주가 흔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도정의 소통 실패는 새로운 리더십의 선택을 통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크고 작은 위기가 계속되는 제주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불통 정치로는 작은 구멍에 댐이 무너지는 재앙을 만들어낼 수 있다. 광우병과 메르스 사태의 확산도 선제적 소통의 실패에 기인한다. 도정이 소통 방식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개선이 없으면 앞으로도 작은 위기가 제주를 뒤흔드는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6.13 선거에서 선출되는 새 지사는 입은 닫고, 귀는 열어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귀와 마음을 열어놓는 울림의 소통을 통해 원칙과 신뢰라는 제주 자산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미래 권력을 의식해 너무 보여주기식 전시행정만으로 시간과 정력을 몽땅 날려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소통 장애로 인한 일방적 소통은 상대에게 100% 양보하라는 것으로 소통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통의 독단적 도정 운영으로 도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내지 못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도정 성공의 단초가 되는 울림의 소통은 상대를 배려하는 관심과 관용의 정신에서 시작된다. ‘나는 선, 너는 악’이라는 도덕적 이분법을 떠나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쌍방향 울림 소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적어도 나를 잠시 내려놓고 역지사지를 실천한다면 진정한 울림의 소통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안으론 계파를 허물고 밖으론 진정으로 울림의 소통과 겸손과 화합으로 도민을 보듬으며 소통 정치에 온몸을 던져야만 도민의 가려움증을 근원적으로 치유하며 사회 통합의 대승적 해결책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의 소통 정치를 위한 보다 개방적인 도정 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인들은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루스벨트, 케네디에 이어 세 번째로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는다. 그 이유는 레이건의 리더십이 세상을 움직이는 소통과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당 태종이 신하 위징(魏徵)에게 우매한 군주와 현명한 군주가 되는 차이를 물었다. 위징은 "고루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의견만 치우쳐 들으면 우매해진다(兼聽則明, 偏信則暗)"고 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가 경쟁력강화 개혁 정책이 유럽의 1류 국가에서 늙고 병든 2류 국가로 전락했던 프랑스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하지만 정작 마크롱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불통 리더십에 대한 국민 저항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좋지만 마크롱은 싫다’는 불통 리더십이 부른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글로벌 기업 CEO와 경영 대가(大家)들의 핵심 키워드는 ‘위기의 돌파구는 리더십에서 나온다’로 압축된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에 강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스스로를 과신하거나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단히 외부와의 울림의 소통을 통해 자아성찰을 하고 오류를 극복해 나간다. 오만과 독선에 빠져 가슴이 아닌 머리 정치만을 하며 제주 가치와 성장을 크게 훼손하는 제주 정치에 울림이 큰 교훈들이다.

제주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며, 우리 모두의 삶을 보듬어주고 보호해주는 울타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제주 공동체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간 아픔을 공유하며 가슴을 파고드는 진정한 울림이 없으면 제주 공동체의 수호는 물론 도민 행복과 화합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

새 지사는 홍보라는 분칠로 치장한 위장 전략과 전술을 거두고 민얼굴을 드러내는 직접 대면과 적극적인 울림의 소통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해진 틀에 꿰어 맞추려는 일방적인 주장만 내세우면 소통의 문은 점점 닫힐 수 밖에 없다. 소통이 차단된 파이프라인은 종국에는 파열할 수 밖에 없다. 그 파열음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소통 지사의 리더십과 도민의 폴로우십의 조화 속에 서로 손뼉을 힘차게 마주치며 몸을 마음껏 비비자. 그 뜨거운 울림으로 데워진 심장에서 포효하며 솟구치는 도민의 에너지로 동면의 껍질을 깨뜨려 제주 가치의 고양과 성장을 이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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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2018-04-23 13:50:50
촌철살인의 글입니다.
구구절절 가슴에 닿습니다.

김삿갓 2018-04-23 12:24:08
구구절절 다 맞는 말입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