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한라산 단풍구경
한라산 단풍구경
  • 박종순
  • 승인 2013.10.29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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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귀농일기] <21>

며칠 전부터 날씨에 온 신경을 써왔다.

‘1027일 한라산 단풍 절정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올해만큼은 꼭 단풍구경을 하고 덤으로 백록담도 보기로 집사람과 약속을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초부터 일기예보에 신경 쓰며 눈과 귀를 기울였고 날씨와 기온이 어떻게 변할지 신경을 곧추세웠는데, 다행히 가을 산행에는 지장이 없는 듯 했고, 비가 오지 않는다는 확신도 들었다.

백록담을 본 지도 거의 10여년이 넘었나보다.

바쁜 육지 생활에 마음속에만 차곡차곡 올라가 보고 싶은 욕망이 쌓여 가곤했다.

조용히 추억을 되살려보니 희미한 기억으로는 어리목에서 출발해 윗세오름을 지나 남쪽벽으로 정상까지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휴식년제로 인해 성판악과 돈내코, 관음사코스로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서 가까운 돈내코에서 출발해 백록담을 구경하고 관음사 쪽으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무리를 가져올 수 있어 성판악코스로 일단 백록담을 구경한 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출발하려니 바람이 드세기는 하나 맑은 하늘과 저 멀리 한라산 정상 부근에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아 마음이 놓이고 단풍을 마음껏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금씩 들떠오는 와중에 등산 배낭에 준비물을 챙기니 넣어야할 물건들이 의외로 많다. 바람막이 옷이랑 다소 두꺼운 여벌옷에 점심도시락까지. 게다가 마실 물을 구할 수 없는 한라산인지라 물도 여유 있게 준비하다보니 배낭 하나로는 모자란다.

결국 두꺼운 옷을 빼고 상의만 겨울용 등산복으로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자동차로 남원에서 출발해 상효 입구까지 이동하여 무료주차장에 주차한 후 시외버스로 5.16도로를 타고 성판악으로 향했다.

버스 안은 제주시로 출근 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앉을 자리가 없었는데, 우리의 등산복 차림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듯해서 앞만 바라보았다.

성판악에 도착하니 평일 아침 일찍인데도 주차장은 이미 꽉 찬 상태였고 도로 주변까지 줄지어 서있었다.

등산화 끈을 다시 묶고 안내판을 보니 가야할 거리가 9.5km이며 정상까지는 4시간30분 소요된다고 적혀있다. 왕복하면 9시간 예상되는데 곳곳마다 커트라인 시간이 정해져있어 그 시간 내에 주파해야 한다.

시계를 보니 1시간정도 여유가 있긴 하지만 정상을 보니 갈 길이 까마득해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등산하려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1950m정상은 꼭 올라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체력이 문제였다.

지난달 산악회를 따라 무박 2일 일정으로 오색약수에서 출발해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가 제일 마지막에 도착하는 바람에 해돋이도 보지 못하고 잠깐 인증사진 찍고는 반대편 설악동으로 하산했던 기억이 났다.

등산을 취미로 하는 산악회원인지라 야간등반장비를 갖추고는 쏜살 같이 산을 오르는 반면 나는 집에 있는 랜턴으로 오르다보니 중도에서 배터리가 떨어져 올라가는 길도 안 보이는 등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대청봉에 이르러 운해와 공룡능선 등 멋진 경치를 담아야 하는데 휴대폰 배터리 역시 떨어져 인증샷도 마음껏 못 찍고 옆에 있는 등산객에게 겨우 부탁해 후일 인증샷 사진을 전송 받기도 했다.

대청봉 바로 아래에 중청대피소가 있지만 인터넷으로 예약 받고 있어 숙박권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무리한 등산을 했는지 하산시 다리가 풀려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엉금엄금 기다시피 내려와 겨우 산악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성판악을 출발했는데 처음 구간은 그런대로 평탄하고 단풍도 듬성듬성 보이고 구간마다 나무 시설도 잘 되어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해발 900m에서 출발해 속밭대피소를 지나 조금 더 가니 1150m고지에 수지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어 괜히 무거운 물을 가져왔는가 보다고 후회하기도 했고, 샘에서 가까운 거리인 1200m 고지에는 사라오름(왕복 1.2km) 이라는 갈림길에서 잠시 오름에도 가볼까 하는 욕심도 생기기도 했다.

그 후부터는 깔딱고개는 아니더라도 길지 않는 급경사가 도처에 기다리고 있어 속도가 점차 줄어갔다.

등산한 지 3시간만에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대피소엔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한참을 기다린 후에 허겁지겁 먹어야만 했다.

그 후 등산길이 좁아진 듯,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로 복잡해지고 급경사에 세차고 매운바람 까지 몰아치자 겨울용 등산복으로 갈아입었지만 바로 걷지도 못하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험난한 등산길로 변했다.

 

1850m 부근에서 서귀포시내를 바라보고 한 컷.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 지점에 다가가자 갑자기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마치 비행기 차창을 통해 아래로 바라보듯 서귀포 시내와 수평선 까지 구름아래 잠긴 것 같은 멋진 모습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고, 바람을 피해 주저 앉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지고간 초콜릿과 캔커피를 마시며 경치에 푹 빠져 들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약 1시간30분쯤 지났을 즈음, 고도 1900m 표시판이 보이고 50m전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정상이 저기구나하고 생각 들자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정상까지 100m에는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위험하였고 불어오는 강풍에 몸을 지탱할만한 시설이 없어 아쉬웠다.

그래선지 올라가려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으로 뒤엉키는 구간도 있을 지경이었다.

가을을 만끽하는 백록담은 여름철 만수했던 늠름한 자태에서 벗어나 바닥에 한바가지 물만 담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바라보는 내 가슴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움퍽 파인 가슴을 보여주고 맑은 하늘아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한라산 백록담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한라산 정상에 오른 필자(오른쪽) 부부.

내년에도 널 볼 수 있도록 집사람과 함께 건강을 지켜다오....”

그때 마이크 방송이 들렸다. “이제 곧 하산 시간이 되어가니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아쉽지만 인증샷을 찍고는 곧바로 출발해야만 했다.

하산하면 할수록 거세던 바람도 잔잔해지고 기온도 올라가서 멋진 단풍이 있는 곳에서는 사진도 찍어가며 여유있게 산행을 마쳤다.

오전 8시에 시작한 등반은 9시간 만에 끝이 났고 성판악휴게소에서 한라산인증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다음 산행은 눈 쌓인 겨울이 될 것 같다.

집사람과 함께 아이젠을 차고 사라오름을 찾아갈 것이다.

 

< 프로필>
부산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
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수료
브랜드 돌코랑’ 상표등록
희망감귤체험농장 출발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출간
e-mail: rkahap@naver.com
블로그: http://rkahap.blog.me
닉네임: 귤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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