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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1> 연풍연가 : 제주의 풍경을 담다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1> 연풍연가 : 제주의 풍경을 담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3.04.29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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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건축 풍경은 제주만이 지닌 ‘장소성’에 대한 존중있어야”

<미디어제주>건축영화를 담은 고품격 인문학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오는 516일부터 현장 건축기행을 포함해 모두 5차례에 걸쳐 미디어제주 제1회 인문학 강좌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김태일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입니다. 이번 인문학 강좌는 주제가 그렇듯 영화를 통해 도시건축을 말하려 합니다.
건축은 쉬울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이번 인문학 강좌의 시행에 앞서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미디어제주> 지면을 통해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여기엔 건축 전문가와 건축 비전문가의 글이 번갈아 실립니다. 건축 전문가로는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건축 비전문가로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가 영화를 본 뒤 글을 씁니다. 지면에 나갈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모두 13편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지며, 제주도내 건축가들의 비평도 아울러 실으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주]

 

<미디어제주>가 첫 인문학 강좌를 위해 마련한 영화 속의 도시건축 이야기는 네 개의 테마로 진행된다. 역사의 도시, 욕망의 도시, 감성의 도시, 미래도시다. 역사의 도시와 욕망의 도시는 이미 영화 리뷰를 끝냈다. 감성의 도시는 건축학개론에 이어, 두 번째 영화로 연풍연가를 택했다. ‘건축학개론’(2012)연풍연가’(1999)는 모두 제주도가 주 무대인 곳이다. 두 영화의 제작 시기는 10여년의 간극을 두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큰 차이가 없다. ‘건축학개론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통해 1990년대 초·중반을 말하고 있고, ‘연풍연가는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90년대 이야기로 보면 된다.

영화 '연풍연가'는 제주의 곳곳을 잘 보여준다. 마라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의 주인공들.
이제 영화 연풍연가이야기를 해보겠다. 영화 연풍연가는 흥행을 끌지는 못했다. ‘연풍연가는 공교롭게도 한국 영화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쉬리와 같은 날 개봉을 하면서 성적은 볼품없었다. ‘쉬리의 열풍 속에 연풍연가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연풍연가가 지니는 의미는 적지 않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거의 없던 당시 제주도를 중심으로 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이후 제주도가 주요 배경인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진다.

지금 이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면 어땠을까. 분위기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당시는 영상관광이 보편화되지 않을 때였음에도 쉬리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영화 쉬리덕분에 제주신라호텔엔 영화의 이름을 딴 쉬리의 언덕이 생겼다. ‘쉬리와 같은 날 개봉한 연풍연가는 제주도가 주 무대였음에도 쉬리의 한 컷보다 강렬하지 못했다. 그건 영화가 흥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다니는 자본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유야 어쨌든 연풍연가는 제주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영화 연풍연가는 박대영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현재 연예인 부부가 된 장동건과 고소영이 함께 호흡을 한 첫 작품이라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라는 깊은 인연을 지닌 영화 연풍연가는 신혼여행지인 제주도를 그리고 있다. 영화가 상영된 1999년은 절정기에 이르던 신혼여행이 하향세로 접어든 시기이기도 하다. ‘연풍연가는 신혼여행지로 그려지는 영화 속 제주도와 현재의 제주도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든다. 2000년 제주관광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은 370만명이었다. 관광객 1000만명에 가까운 지금과는 거리가 있다. 수적인 면에서는 영화 속의 시대가 현재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당시엔 관광통계에 신혼부부를 별도로 구분할 정도로 허니문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2003년부터는 신혼여행 통계가 제주관광 통계에서 아예 빠지게 된다. 신혼여행객이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흐르면서 제주관광에서의 신혼여행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영화는 주인공 태희(장동건)와 영서(고소영)의 사랑 이야기다. 태희는 상사로부터 일본으로 파견할 기회를 제안받는다. 더 없이 좋은 기회이지만 태희에겐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있다. 홀로 아버지를 남겨둘 수 없는 태희는 일본행을 포기하고, 일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오른다. 영서는 관광가이드이다. 밝은 표정으로 관광객을 맞는 제주여성이다. 영화 속에서 곧잘 제주어(일부 맞지 않고, 어색한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를 하며 제주 여성임을 강조하곤 한다. 첫 만남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 소매치기범이 맺어준다. 영서의 고객의 지갑을 훔친 소매치기범을 태희가 맞서면서 둘의 극적인 만남은 이뤄진다. 영서가 소매치기범의 칼에 상처를 입은 태희를 치료해주는 장면은 둘의 관계가 어떠할 것이지를 예견한다. 이후에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가는 곳마다 둘은 얼굴을 대하게 된다. 그러다 혼자 여행을 온 태희는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둘 만의 여행은 시작된다.

영화 '연풍연가'라는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은 서귀포 남쪽 바다에서 바라본 범섬을 배경으로 제주만이 가진 장소성을 보여준다.
제주의 장소성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밭담. '연풍연가' 타이틀이 나오면서 돌담이 흐르듯 장면 장면을 장식한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영화 곳곳에서 엇갈리는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주지만 결국 태희와 영서가 만나는 것으로 결론을 짓는다. 해피엔딩이 식상한 점도 있으나 영화는 제주의 풍광을 보는 재미를 주고 있다. 영화는 연풍연가라는 영화의 타이틀과 함께 서귀포 남쪽바다에서 바라본 범섬을 제1순위로 등장시킨다. 이후 제주의 해안도로, 해변, 돌담, 밭담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제주의 풍광은 태희의 시선이면서 태희와 영서가 함께 여행을 하는 장면을 축약해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이들이 보는 풍경은 관광가이드만 해 온 영서에게는 직업을 일탈한 행동이다.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영서 : (제주도의 지도를 태희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해안 일주도로가 있죠.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산록도로예요. 중문단지에서 시작해서 이렇게(동쪽을 표시하며) 돌아서 서귀포시에서 끝날 수도 있고요, 서귀포시에서 시작해서 반대로 돌면 중문단지에서 끝나거든요. 어떻게 하실래요?

태희 : ?

영서 : 코스를 선택하시라고요.

태희 : 아니, 여행을 이런 식으로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요.

영서 : 다른데서 시작하면 왔다갔다 겹쳐서 다 못 보니까 그렇죠.

태희 : 아니요, 이렇게 말고요. 특별히 좋아하는 곳 없으세요?

영서 : 제가요? 글쎄. 뭐 특별한 게 있나?

영서(고소영)가 가장 좋아한다는 곳이다. 오름과 산담이 있다. 그 길을 영서는 사랑한다. 가장 제주적인 장소성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광가이드인 영서는 태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흔한 관광의 정석만을 제시했다. 태희는 그런 관광에 거부감을 느낀다. 태희는 관광지만 둘러보는 관광패턴이 아닌, 제주만이 가진 것을 제시하라고 요구를 했다. 그런데 영서는 특별한 게 있나?’라고 고민한다. 사실 영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그 답을 품고 있음에도, 그 답을 선뜻 꺼내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영서는 나중에야 태희에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곳은 오름과 산담이 보이는 이라는 답을 한다. 영서는 그게 해답이 될 줄을 몰랐던 게다. 응당 관광객들에게는 익히 알고 있는 관광지만이 가야하고, 봐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여행 패턴을 보면 태희의 특별한 곳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영서의 마음속에 담긴 이 관광지이면서 볼 만한 곳으로 꼽힌다. 영화 연풍연가는 시작 화면에서 그 답을 제시했다. 시작 화면에서 제주의 바다를 보여주고, 해안의 풍경과 밭담을 비롯한 돌담을 표현한 것은 바로 태희가 던진 특별한 곳에 대한 답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두 개의 도시를 아우르고 있다. 서울과 제주다. 영화에서 두 도시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태희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빌딩으로 대변되는 대도시다. 빌딩은 여기가 서울이다고 하지 않더라도 서울을 표현하는 대체물이라는 걸 관객은 느낄 수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영서의 고향인 제주를 아주 탈도시적인 분위기로 꾸몄다. 감독은 제주도는 서울과 완전히 다른 곳을 보여주려고 해서인지 시골냄새를 많이 풍기게 화면을 처리했다. 감독이 바라본 두 개의 도시는 이렇듯 차이가 난다.

영화에서 서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서울은 바로 '빌딩 숲'이다.
서울과 대비되는 장면을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제주도는 '시골'이 아닌 서울과는 다른 제주만이 가진 다름을 읽게 된다.
박대영 감독이 두 도시를 처리하려는 원래 의도를 알 수 없으나 두 도시를 구분하는 잣대만은 명확하다. ‘서울은 빌딩이며, ‘제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는 그렇지 않다는 건 영화 시작 장면에서 이미 나왔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바다를 지녔고, 아름다운 길이 있고, 아름다운 돌담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박대영 감독은 제주의 본 모습을 영화에 담으려 애썼다. 제주도는 태희와 영서라는 두 주인공이 사랑의 싹을 피우는 장소이다. 장소라는 의미를 더하기 위한 소재로, 영화 연풍연가는 제주만이 가진 것들을 장면장면에 담았다.

연풍연가는 우리에게 제주도는 어떤 풍경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연풍연가가 상영될 때의 제주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같지는 않지만 영화에서의 제주도는 서울과의 대비구도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제주의 풍경을 강조하는 게 필수였다. 이후 14년이 흐르면서 제주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지금 시점에서 같은 내용으로 연풍연가를 찍는다고 하다라도 제주의 풍광에 서울과 같은 빌딩의 모습을 담을 리는 없다. 그러기에 영화는 제주의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묵묵히 말하고 있다.

건축에서의 풍경은 자기 혼자만의 건축은 결코 아니다. 혼자만 우뚝 서거나, 혼자서 잘 났다고 주변을 해치면 건축의 풍경은 그 순간 흐트러지고 박살나고 만다. 지금 제주는 어떤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와서 제주 해안에 해놓은 작품들이 제주의 것이었는가? 아무리 돈이 많은들 뭘 하나.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작가인들 무슨 필요가 있나. 그 장소를 모르고,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알지 못하면 건축행위는 아무런 필요가 없어진다. ‘연풍연가는 그러기에 제주의 건축활동이 어떤 식으로 가야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제주 건축에 필요 요소는 다름 아닌 제주의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영화에서 수없이 비추는 돌담과 해안, 바다는 제주만이 가진 풍경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 ‘연풍연가는 공항으로 가는 길을 비춘다. 수평 에스컬레이트에 서 있는 장면 뒤로 제주로 오세요라는 광고판이 흐른다. ‘제주로 오세요라고 할 때의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제주도의 어떤 모습을 상상할까. 서울에도 볼 수 있는 건축물을 보러 제주에 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랑과 환상의 섬, 제주도로 오세요'라는 광고는 무얼 말하고 있을까. 제주 건축에 필요한 요소는 바로 제주만이 가진 자연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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