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초청 받아 만남…“제주는 레고레타 건축 근본 이뤄진 곳과 닮아”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왜 철거를 하려 드느냐”며 의문을 던진다. 그들 가운데 최일 작가(건국대 글로컬캠퍼스 KUB과정 디자인학부 교수)만큼 아쉬움이 극에 달한 이는 없을 게다.
최일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레고레타로부터 초청을 받아 멕시코에 간 인물이지 아닐까 싶다. 지난 2008년 레고레타와 최일 작가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레고레타가 홍익대에 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갤러리를 둘러보다가 제 작품을 보고 수소문을 하고는 저를 멕시코로 초청했어요.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레고레타가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는 몰랐어요. 다른 교수한테 레고레타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현대 미니멀건축의 상징’이라더군요.”
그제서야 최일 작가는 레고레타라는 인물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고레타는 멕시코에 도착한 그를 즉시 만나주질 않았다. 자신을 만나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며 먼저 그 곳을 다녀오라고 했다. 그건 레고레타 건축의 근본이 들어 있는 장소였다. 그 곳엔 아즈텍 문화유적과 원주민들의 흙집, 스페인의 침공을 받아 지어진 식민지시대 건축물 등이 혼재돼 있는 곳이었다.
“그 곳은 묘하게 섞여 있었죠. 의외로 제주와 비슷한 풍경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들어선 제주도는 레고레타와 잘 매칭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얘기가 날아들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한다는 소식이었다. 레고레타를 직접 만났던 그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정식 건물이 되면 그의 작품을 이 곳에서 전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철거가 눈앞이라는 얘기에 그의 작품을 제주도로 가지고 내려왔다. 그는 작품을 들고 지난 26일부터 10월말까지 ‘최일, 레고레타 그를 만나다’는 전시회를 강행하고 있다.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어요. 철거를 강행한다면 제 작품이 훼손되겠죠.”
작품 훼손을 무릅쓰고라도 그는 ‘철거’ 절차에 맞서고 있다. 그에게 레고레타는 그냥 스쳐가는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내내 레고레타를 향해 ‘그 분’이라는 표현을 썼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는 멕시코에서 만난 레고레타의 작품에 ‘명품론’을 꺼내들었다.
“1968년에 지어진 건축물을 봤어요. 그런데 오래된 건물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죠. ‘건축은 유행이 아니라 정신이구나’라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됐죠. 명품은 무엇인가요. 명품은 그에 걸맞는 이름도 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게 바로 명품이죠. 그래서 레고레타의 작품은 명품입니다.”
최일 작가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가설건축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모르는 소리다”며 한마디 했다.
“이 공간은 레고레타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래서 레고레타의 모든 게 다 들어 있어요. 그 분은 절대 허술하게 짓지 않아요. 혼(魂)이 들어 있어요. 여긴 애초에 갤러리로 설계를 했어요. 그러기에 가치가 있고, 마지막 혼이 들어간 곳이기에 더 지켜야 합니다.”
철거 강행을 말하는 행정에 대해서도 사고의 변화를 촉구했다.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도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어요.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이지만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제주도에도 문화적인 공간이 필요해요. 법만을 우선으로 하지 말고 좀 더 순수하게 가치를 부여하면 안될까요.”
최일 작가는 레고레타의 정신을 가까이에서 본 인물이다. 그는 제발 그의 전시회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마지막 행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10월 31일까지 그의 테라코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