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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행위란 주위 환경에 거스르지 않는 작업”
“건축 행위란 주위 환경에 거스르지 않는 작업”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05.17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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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이 말하는 건축] 가우건축 양건 대표...‘제주명품’에 작가적 사명 담아

건축물은 도시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공간은 바로 집 바깥에 있는 거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실로 표현할 수 있는 도시공간을 살리려면 건축물 개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 도시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바로 건축가들이다. 건축가들이 건축물에 어떤 의미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집 바깥 공간, 즉 거실이라고 표현되는 도시공간이 살아날 수 있다. 건축가를 통해 제주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편집자주]


가우건축이 설계한 '제주명품' 사옥 전경.

집은 무엇인가에 앞서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먼저 던져본다. 흔히 말하는 건축은 창조적 개념이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낯선 일이 건축일 수도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에 새로운 치장을 입히는 것 역시 건축일 수도 있다. 그런 건축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물상이 바로 ‘집’이라는 존재다.

그런데 집을 의·식·주라는 기본 개념으로만 바라보면 건축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집을 단순히 ‘사람이 들어가서 기거하는’ 현존물로만 바라본다면 도시공간으로서의 건축이라는 속성을 간과하게 된다.

간혹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건축물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주위와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신만 당당하게 서 있는 건축물을 바라보는 경우가 그렇다. 건축에서 관계맺음을 빼버리면 그런 일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올레가 잘 보존된 마을에 들어서는 건축물과 사방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시가지에 들어서는 건축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건축주가 같더라도, 두 곳에 들어서는 건축물을 다루는 건축가가 동일하더라도, 같은 건축물을 앉힐 수는 없다. 전통이 잘 스며있는 곳에 시가지에만 있을 법한 건축물을 등장시킨다면 건축물과 건축물, 건축물과 도시공간, 건축물과 전통의 관계는 무참히 깨지고 만다. 그만큼 건축에서의 관계는 중요하다.

가우건축의 양건 대표(제주건축가협회 회장)는 그런 관계맺음을 중요시한다. 건축은 땅에 세워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땅과의 관계를 떠나서 얘기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양건 대표는 “건축은 땅에 일상을 담는다는 점에서 집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땅을 봐야 한다”며 “건축은 유기체로서 생명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제주도 건축문화상을 받은 ‘제주명품 전시관’은 그가 추구하는 건축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우건축 양건 대표.
제주시 오라3동에 들어선 이 건축물은 이 곳 동네와는 낯선 듯하지만 이질적이지는 않다. 제주명품은 이 곳의 스카아라인을 존중하면서 나름대로의 색깔을 추구하고 있다. 양건 대표가 제주명품에서 강조한 건 ‘보이지 않는 힘’(Invisible force)이다. 앞서 그가 말했듯 건축은 유기체이기에 마치 살아있는 물상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건축행위를 펼쳤다.

‘보이지 않는 힘’은 지형, 주변도로, 기존 주택, 식생, 조망, 도시에서의 시선 등 모든 것을 망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분석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건축은 현실의 땅과 항상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기에, 땅을 분석하는 작업이 건축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임은 물론이다.

제주명품은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에 의해 주변의 시선을 응시하며 자리를 틀게 됐다. 제주명품 사옥을 따라 남서쪽으로 난 골목길(올레)은 원래 제주명품 사옥이 존재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주명품의 벽체가 그대로 이 곳 골목의 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제주명품 사옥에 쓰인 주재료는 노출콘크리트다. 안팎 모두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했다. 건축물 주위에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도 노출콘크리트는 잘 어울린다. 노출콘크리트와 아울러 주재료격으로 쓰인 동(銅)도 주의 깊게 볼 만하다.

이 곳에 주재료인 동(銅)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천장에 쓰인 동.
'보이지 않는 힘'을 강조하고 있는 제주명품. 남서쪽 길을 따라가면 주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작품 의도를 읽게 된다.

이 지역은 여전히 옛 풍경을 간직한 곳이기에 주위와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 들어서야 한다. 그런 재료로는 동(銅)이 적격이다. 제주명품 사옥의 지붕과 내외부 벽면을 동이 차지하고 있다. 동은 밤색에서 산화과정을 거치면 빛깔이 아주 고운 옥빛으로 바뀌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는 재료’로서 동의 중요성은 이 곳을 주위 환경과 어울리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어찌보면 갓 태어난 제주명품이라는 건축물이 ‘골동품’이라는 이름을 얻어도 충분할 듯하다.

“건축이란 삶을 구체화시켜 구상물로 만들어내는 것이죠.” 양건 대표에게 건축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이처럼 말한다.

양건 대표가 말하는 건축의 정의는 제주명품의 건축주인 황용대씨 생각과 맞아떨어진다. 제주명품은 도내에서 활동하는 금속공예·돌·도자기 등을 다루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예술성이 있으면서 지긋한 건축물이 이 곳에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위를 거스르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을 담으려는 건축가의 생각. 그런 생각을 가진 건축가에겐 ‘풍경’만큼 좋은 단어가 없는 듯하다. 풍경은 곧 자연 그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다. 집도 자연의 하나이라는 점에서 건축은 자연과 동떨어질 수 없고, 사람도 그 풍경 속의 작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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