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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르는 '기이한 현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르는 '기이한 현실'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8.11.30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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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제주도정 '도민과의 대화'에 대한 제언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등장한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 벌거벗은 임금은 벌건 대낮에 행차하고, 사람들은 그 임금을 저마다 칭송하지만, 유독 한 아이만이 임금을 보고 웃음을 날린다. 벌거벗더라도 모두들 자신을 칭송하고 존경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임금, 또 임금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 이 우화는 한 시대의 진리, 진실을 모두 거부할 때 어린 아이에게 시대의 진리를 위임하는 기이한 현실의 비극을 보여준다.

지난 11월27일 오후 김태환 제주지사가 '도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사무감사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개최된 이 '도민과의 대화'. 특별자치도 출범 후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해군기지 등 주요 핵심현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당면 제주도정이 안고 있는 최대과제가 갈등해소와 도민통합인 점을 감안할 때 '도민과의 대화'는 올 한해가 이제 한달 남짓한 상황에서 적절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김 지사는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할 때면, 제주의 주요현안이 도민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고, 일부는 사실과 다르게 알려지고 있다면서 안타까움을 자주 토로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간부공무원들에게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민들을 만나 도정에 대해 홍보하고 설득할 것을 주문하곤 했다. 또 언론 기고란을 통한 홍보의 강화도 주문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3년차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도정의 업무성과를 평가한다면, 어쩌면 김 지사의 말대로 '성과와 과제'가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점이 있을 수 있다. 실제 거시적 차원의 '틀'이라든지, 2조7000억원 규모의 국제자유도시 투자유치, 세계자연유산 등재 등은 분명 성과라 평가할 수 있다. 요즘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환율이 크게 상승한 환경적 변화를 놓고 볼 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해 6월 1997년 발행한 일본 사무라이증권의 해외채 203억2561만엔을 모두 상환한 일이다. 요즘같은 고환율시대에, 이 해외채마저 제때 상환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었다면 가만히 앉아서 300억원 가까운 돈을을 날려야 하는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이 또한 잘한 일 중의 하나다.

기초자치단체가 폐지되고 광역행정체제로 전환된 후, 초기 다소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고, 또한 현재까지 '역기능' 측면의 문제도 많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자치도의 광역자치단체체계도 민원처리 측면에서 상당부분 안정화된 것 또한 사실이다. 제주도정에 주어진 과제도 물론 많다. 김 지사가 '도민과의 대화'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를 확보하는 일, 또 전 지역 면세화라든가, 법인세율 인하 등 핵심적인 문제를 풀지 못한 점 등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지난 '도민과의 대화'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도민과 대화 정말 필요하다. 한번이 아니라, 한달 수십번을 해도 좋은 일이다. 도민들을 만나 도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의견을 듣겠다는 일, 그것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도민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하겠다는 그 의지는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아쉬움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대화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간략히 지난 토론회의 진행방법상 문제를 제기하자면, 우선 '지나친 형식'에 얽매인 나머지 '대화' 보다는 '이벤트'로 흐른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참석자들의 선정 문제와 사전홍보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진행 면에서도 사전에 배정된 질문패널들의 '매우 짧은' 질문에, 김 지사의 '아주 긴' 답변을 하는 형식이었다.

물론 김 지사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패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의례적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특별자치도의 성과'에 대한 질문만 하더라도 그렇다. 과연 정말 몰라서 원론적 질문을 짧게 한번 하고 말았을까. 최소 특별자치도를 바라보는 자신의 의견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설명한 특별자치도의 성과와 과제는, 지난 1단계 제도개선 때부터 현 4단계 제도개선 논의 과정 속에서 언론지상 혹은 여러가지 홍보루트를 통해 숱하게 나온 얘기들이다. 그 얘기를 듣고 추가질문도 없이 바로 다른 패널로 마이크를 넘기고 하면서 패널들은 준비된 '짧은 질문'을 이어갔다. 반론을 펴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4.3위원회 폐지 등 4.3과 관련한 문제와 경제 위기 속에서 중소기업인의 절박한 얘기 등 일부에 국한됐다.

대화의 주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지금 제주도정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과연 무엇인가. 해군기지 등으로 인한 '사회갈등'이 아닌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제외되다시피 했다. 첨예한 논란을 빚는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인사 1명을 패널로 선정해 '예상된' 질문과 답변이 고작이다.

결국 행사명은 '대화'였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이 한 반면, 들은 '의견'은 너무 적었던 대화의 자리였다. 제주도정의 주요시책 추진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하지만, 도민들로부터 들은 '의견'은 어느 정도였을까를 자문해 본다면, 아마 주최측인 제주도당국도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김 지사가 일단 도민과 적극적 대화를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거듭 높이 평가한다. 올 한해가 마무리되기 전에 도민과의 대화가 또다시 개최될 것이라고 한다. 다음 개최되는 도민과의 대화는 앞선 미흡한 점을 제대로 보완하길 기대해 본다. 도정의 시책을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장의 생생한 민심을 전해듣는 기회로 삼아야 함은 당연하다. 언론 등을 통해 일방향 도정시책 홍보의 '확성기'를 달 것을 기대하지 말고, 제대로운 대화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솔한 대화, 생생한 민생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는 '도민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또한 대화를 하는 소위 이 사회의 '유지'라는 '오피니언 리더'격 인사들의 좀더 진솔한 자세가 요구된다. 도민 대표로 패널에 참가했다면, 지금 제주도민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 특정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무엇인지,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도민과의 대화'는 한낱 이벤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최소 그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당당히 말할 줄 아는, 진실을 이야기 할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벌거벗은 임금님'을 칭송하는 이들과 다를 바 뭐가 있겠는가. <윤철수 대표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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