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2-27 17:36 (화)
“우리에겐 나무를 심고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나무를 심고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10.31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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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숲을 달라] <5> 기획을 마치며

광주는 시민들 노력으로 ‘푸른길공원’ 탄생
“주거지 500m내에 걸어서 갈 공원 있어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1816년 여름은 여름이 아니었다. 한 해 전 인도네시아 탐보라산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 여운은 전 지구적 재앙을 안겼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 하나가 지구 기온을 낮췄고, 이듬해 유럽은 ‘여름이 없는 해’를 맛봐야 했다. 그걸 지켜본 시인 바이런은 ‘어둠’이라는 시를 남겼다. 기후변화가 문학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바이런은 실증해줬다. 요즘은 ‘재난물’로 불리는 영화를 통해 기후변화를 읽곤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나, 문학 속 이야기로 등장하는 기후변화 이야기가 실제로 우리들의 삶 전체라면 어떨까. 스크린을 향하지 않더라도 눈에 나타나는 현상을 굳이 영화에 담을 이유는 없다. 비록 그런 날이 안 오길 바라야겠지만.

지구의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2050 거주불능 지구>라는 재난 보고서를 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마지막 문장은 뜨끔하다.

“당신은 당신이 보고 싶은 모습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싶은 행성은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중 누구도 지구 외에는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없다.”

웰즈는 지구라는 땅에 붙어서 사는 우리들이 살 곳은 바로 지구라고 말한다. 또 다른 지구를 찾지 않는 이상, 우리는 지구에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 남겨줘야 한다. 여기엔 아주 작은 행동이 요구된다. 바로 우리 곁에 나무를 심는 일이다. 그와 함께 할 일이 있다. 잘 조성된 숲을 없애지 않는 일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14세기 유럽에 대규모의 흑사병이 없었더라면 유럽은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염병 대유행은 유럽인들에겐 재앙이었지만, 당대 유럽의 숲에 가해진 무자비한 산림 파괴를 피할 수 있었다.

광주의 도심숲인 '푸른길공원'. 미디어제주
광주의 도심숲인 '푸른길공원'. ⓒ미디어제주
광주의 도심숲인 '푸른길공원'. ⓒ미디어제주
광주의 도심숲인 '푸른길공원'. ⓒ미디어제주

광주광역시의 사례만 들어보자. 경전선 광주 도심구간 이전으로 남게 된 폐선(廢線)을 공원으로 살린 ‘푸른길공원’이 있다. 폐선은 개발업자에겐 그야말로 황금이다. 개발업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철길과 그 주변의 개발요소는 어마어마했다. 그걸 막아선 건 시민이다. 광주 시민들은 철길을 옮긴다는 소식에 녹지조성을 행정에 제시했다. 광주 시민들이 1999년 ‘도심철도 푸른길가꾸기 시민회의’를 결성하며 움직이자 행정도 반응했다. 시민행동 1년 뒤인 2000년 광주시는 시민들의 바람대로 폐선 부지에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은 지켜졌고, 광주의 푸른길공원은 도심을 관통하는 아주 멋진 숲으로 환생했다. 어찌 보면 푸른길공원은 시민운동의 결정판이다.

푸른길공원은 광주 시민들에게 아주 많은 걸 선사한다. 우선 8km 넘는 길을 따라 걷는 재미를 준다. 나무 밑을 걷는 즐거움만 주는 건 아니다. 푸른길공원은 도심에 있기에, 곳곳에 문화요소를 숨겨뒀다. 걷다 보면 근대가옥도 만나고, 새벽시장도 만나고, 온갖 이야깃거리를 만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민들 ‘내 곁’에 있는 공원이어서 그렇다.

이른바 도심의 공원은 걸어서 가는 곳이다. ‘근린공원’이라고 부를 때, 주거지와 500m 거리를 말한다. 푸른길공원은 500m내에 무려 13개의 마을이 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이 찾을 수밖에 없다.

제주도는 어떨까. 도심공원 500m 내에 과연 몇 개의 마을이 있을까. 우선 글을 쓰고 있는 기자의 집 곁, 아니 500m 내엔 도심공원이 없다. 그러니 숲도 없다. 개발행위만 계속 이뤄진다. 문명은 자연과의 공존이 아닌, 파괴를 우선하는 점이 아쉽다.

그러고 보니 인류의 가장 오랜 문헌이라는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숲을 파괴하고 문명을 이룬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엔 광활한 시더 숲이 있었고,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가 있었다. 훔바바는 인간으로부터 숲을 지키는 수호신이었지만, 인간에겐 괴물이었을 뿐이다. 길가메시는 훔바바를 아랑곳하지 않고 시더 숲 전체를 없애는 데 성공한다. 결국 숲을 지키던 나무는 궁전이 되고 사원이 된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 혼자가 아닌,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잘 안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나무를 심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고, 숲을 없애지 않는 노력도 함께여야 한다. 길가메시처럼 숲을 없애고 멋진 도시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우리는 훔바바를 없애는 꼴이 된다. 인간에게 훔바바는 괴물로 보일 테지만, 훔바바에게 괴물은 바로 숲을 파괴하는 인간이다.

미국산림협회는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을 교육자료로 쓴다고 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 책 속에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부피에는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황무지는 숲이 된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자연을 되살릴 수 있음을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일깨운다. 어쩌면 우리에겐 멋진 도시를 지으려는 길가메시가 아니라, 자연을 회복하려는 부피에가 더 필요하다. <<끝>>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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