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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원도심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어요”
“제주시 원도심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0.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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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6> 제주북초등학교를 다시 보다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 부임 후 자존 교육 활발히 펼쳐


100년의 역사를 넘긴 학교는 많지 않다. 제주시 원도심에서는 대표적인 학교가 제주북초등학교이다. 그런데 전편에서 설명했듯이 제주북초등학교의 근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907년이 아니라, 더 올려 잡아도 무방하다.

제주북초의 연원을 일제식 교육이 도입된 1907년이 아니라, 조선정부가 소학교령을 공포한 이후에 만들어진 ‘제주목(濟州牧)공립소학교’를 근원으로 삼는다면 제주북초의 연원은 10년은 더 올라가게 된다.

# 제주 근대교육의 시작점인 곳

제주의 근대교육 시작은 바로 1896년이다. 이때 제주목공립소학교의 교원인사를 했다고 조선시대 <관보>는 밝히고 있다.

제주북초 역대 교장 명단. 미디어제주
제주북초 역대 교장 명단. ⓒ미디어제주

 

제주북초의 근원을 1896년으로 삼는다면 역사적인 의미도 더해진다. 일제의 압박이 담긴 교육 시스템보다는, 조선이 도입한 근대교육을 시작점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제 교육 시스템 도입이냐의 여부는 뒤로 하고, 지역내에서 학교가 차지하는, 특히 초등학교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살펴보려 한다.

제주시 원도심 답사팀은 예전 가장 큰 도로였던 한짓골을 돌다가 갑자기 제주북초로 발길을 돌렸다. 교육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제주북초 탐방은 기대이상의 것을 발견했다. 원도심의 활기를 줄 뭔가가 학교에 있음을 발견했다.

제주북초는 상징성을 지녔다. 지금으로 따진다면 최고의 학구였다. 제주북초가 있는 지역은 제주의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관청이 즐비했고, 금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제주도의 핵심이 다 모인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제주북초에 다니던 어린이들은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제주북초는 1960년대에도 2부제를 시행할 정도였다. 지금은 규모가 작은 학교였으나 예전은 그러지 않았다.

# 원도심 활성화 가능성은 ‘교육’

그렇다면 제주북초가 과연 원도심을 바꿀 영향력을 지녔을까. 그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가 그런 변화의 바탕을 마련할 수는 있다. 이 학교의 박희순 교장이 그런 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는 첫 부임지가 제주북초였기에 이 학교에 지닌 애정은 더 크다. 1987년 이 학교에 첫 발을 디뎠다.

“1963년 학구라는 게 만들어지기 전에는 제주 전체에서 이 학교에 오곤 했죠. 1시간을 걸어서 오기도 했다고 해요. 제가 근무할 때는 학교신문도 있을 정도였어요.”

제주북초 박희순 교장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북초 박희순 교장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학생수가 많을 때는 3000명에 달했다. 운동회도 한꺼번에 하지를 못했다. 학교도 ‘북초등학교’라고 부르지 않고 ‘대북교’라고 할 정도였다. 학구가 생기고 나서는 학구를 위반하면서까지 제주북초에 입학을 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학교에 부임한 여교사는 패션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북초 교사들이 패션도 이끌었죠. 교직 분위기도 달랐어요. 여교사들의 규율도 엄격했죠. 품위를 지켜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대북교 교사가…’라는 이런 말도 들었으니까요.”

교사들의 복장까지 관여를 했다고 하니,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유는 ‘대북교’에 다니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제주북초에서 시작을 하면 사건이 됐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다른 교사들이 제주북초에서 뭘 하는지 보러오기도 했다.

“민속반을 도내에서 만들었는데 방송에 나가기도 했어요. 교사들이 직접 와서 자신들의 학교에 파급합니다. 달리 말하면 교육청에서 해야 할 교사연수 기능을 제주북초에서 일부를 맡은 셈이랄까요.”

그런 긍지를 지닌 학교는 관광서가 떠나고, 금융도 이동하고, 덩달아 사람들도 이동을 하며 달라졌다. 그야말로 원도심이 돼 버렸다. 박희순 교장은 그런 점이 늘 아쉽단다. 그렇다고 기가 죽어서 살 일은 아니다.

# “긍지는 학교 규모가 아닌 역사성에”

“학생들에겐 긍지가 중요합니다. 예전엔 대북교로 불렸잖아요. 규모가 작다고 긍지가 작아지는 건 아닙니다. 북초등학교에 대한 긍지는 제주에 대한 긍지나 다름없죠. 아이들에겐 그런 교육을 강조해요.”

제주북초는 ‘제주알기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게 하고, 남에게도 설명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가동중이다.

제주북초 현관 입구에 내걸린 '제주교육의 발상지'라는 표석이다. 예전 학생수가 3천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작은 학교가 됐다. 미디어제주
제주북초 현관 입구에 내걸린 '제주교육의 발상지'라는 표석이다. 예전 학생수가 3천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작은 학교가 됐다. ⓒ미디어제주

 

“제주의 자존을 지키는 교육이 필요해요. 행정이 옮겨가면서 원도심이 공동화 됐는데, 그걸 되살리는 길은 교육이라고 봐요. 여기 주변을 둘러보면 마을사람들의 자존이나 의식 수준은 매우 높아요. 동네가 작아지다보니까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만 교육으로 모이라고 하면 마을사람들이 다들 와요. 교육이라는 건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아요. 정말 다 모인다니까요.”

# 교육이라면 다들 모이는 마을사람들

박희순 교장은 올해 이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마을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학교 일이라면 다들 모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육은 혼자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마을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 일대는 그런 걸 갖추고 있어요. 마을이 아이들을 길러내는 걸 해낼 것 같아요.”

마을과 학교는 끈끈한 공동체가 돼가고 있다. ‘성지골합창단’도 만들어졌다. 지난 7월 조직된 합창단은 8살 학생에서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있다. 여기에 학부모도 참가하고 있다. 세대가 공유하는 합창단이다.

박희순 교장은 원도심을 피부로 느낀다. 자신이 첫 부임할 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공간이 돼 있어서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교육이라는 끈만 있으면 원도심 활성화도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게 더 추가되면 원도심의 활성화를 이끌까.

“길 이름을 옛길 이름을 따서 만들면 좋겠어요. 간판문화도 바꾸고요. 문화특구를 만들어 주민생활도 하고, 공방도 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건 어떨까요. 그런데 여기에 빠지면 안될게 있어요. 바로 교육입니다. 바로 아이를 위한 교육이 빠지면 안되죠.”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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