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주체적 교육이 일제에 의해 묻혀버려”
“조선의 주체적 교육이 일제에 의해 묻혀버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0.30 15: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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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7> 1896년 관보가 가진 의미

1896년 학부령 제5호로 전국 38곳에 소학교 설치
제주목에도 공립소학교 만들고 곧바로 교원 인사
일제통감부 설치후 관보에서 제주교원 인사 사라져
광주·충주·원주 등은 1896년을 개교시점으로 명기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원도심 탐방을 하며 들른 제주북초. 제주근대교육의 발상지라고 하는 이곳의 시작은 정말 1907년일까. 아무래도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전편에도 밝혔듯이 1896년 조선시대 <관보>는 제주목공립소학교 교원인사를 했다고 돼 있다. 그럼 실제 원본을 확인하면 문제가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교육의 근원을 알 수 있는 원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뒤지며 찾은 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이다. 제주목공립소학교 교원인사를 했다는 원본을 찾는데 성공했다. 1896년 11월 18일자 <관보>에 제주도내 소학교와 관련된 첫 교원인사가 포함돼 있다. 당시는 고종 33년 때의 일로서, 건양이라는 연호를 쓸 때이다. 건양원년이 바로 1896년이다.

1896년 11월 18일자 <관보>는 제484호로, 전석규(田錫圭)라는 이름의 교원이 등장한다. <관보>는 인사시점을 11월 16일자임을 밝히고 있다. <관보>에 따르면 제주목공립소학교 교원에 임용된 전석규의 관등은 6등이었고, 급여는 2급에 봉한다고 나와 있다. 6등에 2급의 월급은 당시 14원이었다.

전석규가 임용된 1896년은 고종이 소학교령을 발표한 다음해이다. 조선은 1895년 소학교령을 발표하며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관립소학교를 두고, 1896년 지역별로도 공립소학교를 둘 곳을 지정하고 있다.

1896년 9월 21일자 관보 제424호. 학부령 제5호를 통해 전국 38개 지역에 소학교를 둔다고 나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1896년 9월 21일자 관보 제424호. 학부령 제5호를 통해 전국 38개 지역에 소학교를 둔다고 나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위 관보를 확대한 모습. 제주목이 뚜렷하게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
위 관보를 확대한 모습. 제주목이 뚜렷하게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

 

그렇다면 전석규를 임명하기 전에 소학교를 지정했다는 정보가 있지 않았을까. 그걸 다시 찾아 나섰다. 전석규를 임명했다는 <관보>보다 2개월 앞선 <관보>에서 정보를 확인했다. 1896년 9월 21일자 제424호 <관보>이다.

제424호 <관보>는 학부령 제5호에 따라 지방공립소학교 위치를 정한다고 나온다. 발표시점은 그 해 9월 17일이며, 지금의 교육부장관에 해당하는 학부대신 신기선이 발표했다. 전국 38개 지역이 공립소학교를 만들 곳이었다. 제주 지역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초등학교 가운데 한곳인 서울의 재동초등학교는 1895년 소학교령 발표로 등장한 그 시점을 잡고 있다.

그렇다면 각 지역 초등학교는 어떨까. 1896년 9월 21일자 관보에 등장하는 학교 가운데 몇 초등학교의 역사를 훑어봤다. 제주와 함께 등장하는 ‘충청북도관찰부 충주공립소학교(현 교현초)’는 1896년 9월 17일을 개교 일시로 잡고 있다. 강원도 원주의 원주초등학교도 같은날이다. ‘전라남도관찰부 광주공립소학교(현 서석초)’는 1896년 11월 6일을 개교 일시로 명기하고 있다.

1896년 <관보>는 제주목에도 소학교를 두도록 했다. 그래서 같은해에 교원도 임용해서 보냈다. 첫 교원인 전석규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인물이기도 했다. 제주목 교원 인사이동에 관한 자료는 광무9년(1905)까지 이어진다. 제주목 교원 인사에 대한 마지막 <관보> 기록은 광무9년 11월 13일자(관보 제1295호)에 나온다. 이렇게 보면 제주목공립소학교는 10년간 이어져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교원인사 기록이 사라진 건 1906년 이후이다. 일제는 1906년 2월 우리나라에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같은 해 8월 27일 보통학교령을 공포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1907년부터 역사가 시작됐다는 제주북초의 초대 교장은 당시 목사였던 윤원구이다. 이렇게 보면 1896년부터 등장하는 제주목공립소학교 교장 역시 당연히 제주목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목사가 당연직 교장이었다면 제주북초의 시작을 1907년이라고 할 이유 역시 사라진다.

1896년은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중요한 시점이 된다. 전국적으로 초등 교육을 확대한 시점이고, 조선의 의지대로 근대교육을 일으킨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1906년이후는 사정이 달라진다.

1896년일까, 1907년일까의 문제는 한 학교의 시기를 올려잡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이 주체가 된 교육이었는지, 일제가 주체가 된 교육이었는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주이외의 다른 지역의 학교는 1896년 학부령 제5호에 따라 만들어진 소학교의 역사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제주 근대교육의 시작시점도 분명히 조정할 필요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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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많았네요~~ 2017-10-30 16:35:53
기자님 의 자료 찾는데 고생많은 덕에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