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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어주고 손 잡고 걷다 보니 이제는 막내도 혼자 걸어요”
“업어주고 손 잡고 걷다 보니 이제는 막내도 혼자 걸어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7.08.0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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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첫날 서진에서 만난 춘천 3代 가족 이야기
재작년부터 3년째 생명평화대행진에 참가하고 있는 정재오군(왼쪽)과 동생 지오가 외할머니와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올해는 할머니도 함께 걸으면서 3代 가족이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 미디어제주

 

“막내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재작년에는 줄곧 업고 걸었고, 작년에는 손을 잡고 걸었는데 올해는 혼자서도 잘 걷네요. 아이들이 크는 걸 생명평화대행진에 와서 실감하고 있어요”

 

2017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첫날인 지난 7월 31일, 출범식과 기자회견이 있었던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만난 박은경씨 가족 얘기다.

 

춘천에서 온 박씨 가족의 생명평화대행진 참가는 올해로 3년째다.

 

큰아들 재민이는 어느덧 까칠한 중학교 2학년이 됐지만 대행진 기간 중 급식 당번을 맡고 있고, 둘째 재오는 작년에도 올해도 평화대행진에 꼭 가고 싶다고 엄마를 졸라서 가족들의 3년째 대행진 참가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막내 지오는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를 걷는 게 아직도 힘들지만, 업어달라고만 조르던 응석받이를 벗어나 엄마 손도 잡지 않고 혼자 걸을 정도가 됐다.

 

“처음엔 엄마가 제주도 여행 가자고 해서 온 게 평화대행진이었어요. 한 번 와보니까 재미있어서 또 가자고 졸랐어요. 행진 끝나고 저녁에 숙소에서 열리는 문화제를 보는 게 제일 좋아요. 볍씨학교 형들이랑 노는 것도 재미있고요”

 

출발하자마가 장대비를 맞고 뙤약볕을 걸어 점심식사 장소인 천제연에서 만난 재오군의 얘기다.

 

젖은 신발을 벗고 발을 말리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면서 말을 붙여봤다. 운동화 끈을 너무 꽉 조이게 묶어서 풀기 귀찮다고 한번 튕기더니 옆에 있던 외할머니가 한 마디를 더 거들자 순순히 신발과 양말을 벗고 쭈글쭈글해진 발을 말리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엄마와 3남매였지만 올해는 외할머니까지 3대(代)가 대행진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딸과 외손주들이 매번 같이 가자고 하는 걸 혹여 걷지 못하고 처지면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오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큰 맘 먹고 오게 됐다”는 외할머니 조경순씨(72). 인터뷰를 하면서도 손주들이 김밥과 옥수수를 챙겨 먹고 있는지, 마실 물이 모자라지 않은지 살펴보느라 편히 쉬지도 못하고 마음을 쏟기 바쁘다.

 

화가인 어머니 박씨는 “재작년에 포털에서 우연히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알게 됐다”면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그냥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왔는데 둘째 재오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여기가 좋다’고 해서 계속 오다 보니까 1년 중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원래 올해는 동진과 서진으로 나눠 걸은 뒤 제주시 탑동에서 극적인 상봉(?)을 해보자는게 가족들이 그린 ‘큰 그림’이었다. 하지만 재오가 친한 형들이랑 스태프들이 다 서진에 있다고 해서 결국 올해도 서진으로 다 함께 걷게 됐다.

 

“마지막날 문화제를 꼭 보고 싶은데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코엑스에서 열리는 건프라엑스포에도 가고 싶은데 대행진 끝나고 가면 마지막날이거든요. 인터넷에서 건담을 사면 3만원이 넘는데 거기 가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 마지막날 가면 살 게 없을 거에요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인 재오가 어느새 여느 또래 남자아이처럼 소박한 불만(?)을 스스럼없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멋진 건담보다 훨씬 더 값진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어머니 박씨의 ‘빅 픽처’는 조금씩 그 밑그림이 완성되고 있는 것 같았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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