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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민중의 상징에서 여신(女神)으로 둔갑하다”
“탐라 민중의 상징에서 여신(女神)으로 둔갑하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5.24 16: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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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2> 본론(本論) ①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이른바 신화론자들은 설문대할망이 당초 신화였으나 이야기가 파편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각조각 파편화된 이유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2. 탐라 민중(여인들)의 상징에서 여신(女神)으로 둔갑한 설문대할망 ① : 설문대할망은 본디는 ‘탐라 민중의 상징’이었데 오늘날은 터무니없게도 ‘여신’으로 취급되고 있다.

 

2.1. 전통적인 견해. 설문대할망 설화는 예로부터 1970년대까지는 전설(곧 ‘역사적 전설’)로 취급되었다. 그럼, 이때의 설문대할망 정체(正體)는 어떤 것일까?

 

돌이켜보면, 탐라국 몰락(1105년) 이후 탐라 땅은 외세의 혹독한 핍박에 시달렸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육짓놈 왐저 허민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쳣주!”라는 이 땅의 한 맺힌 속담이다. 그래서, 탐라 민중은 구원(곧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오매불망 염원했고, 그리고 그 와중에 이른바 ‘날개 달린 아기장수’를 학수고대했다. 사실, ‘날개’는 구원의 상징이다, 이를테면, 그리스도교에서도 ‘(날개 달린) 천사’가 구원의 복된 소식을 마리아(예수의 어머니)에게 전한다. 하지만 그 아기장수의 날개는 부모의 손에 의해 제거된다. 역모(逆謀)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니까.

 

이에, 민중은 이번에는 거인(巨人)을 원한다. 거인이라면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전설에서의 거인은 액면 그대로의 거인이 아니다. 전설은 진실성을 지향하는 반면, 거인은 비현실적인 존재이니까. 그러고 보면, 그 거인은 실은 흩어지면 모래 알갱이처럼 미약하나 뭉치면 사막처럼 장대해지는 민중 자신인 셈이다.

 

아무튼, 설문대할망은 본디 ‘탐라 민중(여인들)의 상징’이었다.

 

2.2. 19세기 말엽에 일본은 아시아 대륙을 침략했다. 아울러,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정치 구호를 내세웠다. 이는 동아시아 민족은 대동단결하여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공동번영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한편, 일본 학자들은 그 구호의 확립·확산에 공헌했다. 예컨대, 그들은 동아시아 거인 설화들은 궤를 같이하는 신화라고 주장했다. 물론 신화가 궤를 같이한다는 말은 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 무렵부터 일본은 설문대할망을 신(神) 취급했다. 이로써, 설문대할망 설화는 신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2.3. 1950년대 말엽. 한국 설화 연구가들이 위의 일본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모계중심사회(母系中心社會) 곧 석기시대(石器時代) 산물인 ‘거녀(巨女) 신화’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으리라. 그것은 당해 민족이 유서 깊은 민족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니까.

 

2.4. 그런데 설문대할망 설화 본문(本文)들은 하나같이 다 전설이다. 그래서, ‘설문대할망 설화를 신화라고 주장하는 자들’(이하 ‘신화론자들’이라 함)은 한결같이 말한다. “설문대할망 설화는 본디 신화였으나 지금은 파편화(破片化)되어 전설로 존재한다”라고. 하지만 이는 정설(定說)이 되기 위해서는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가설’(假說)에 불과하다.

 

2.5. 그러니, 신화론자들은 위 가설의 정설화(定說化)를 위해 아래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첫째, 본디 신화였음을 입증할 수 있는 본문이 있는가? 설화는 문학(구비문학)이고, 문학은 본문이 알파요 오메가다. 예컨대,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본문을 보면 시(詩)임이 판명나고, 김동인의 「감자」는 본문을 보면 단편소설임이 판명난다. 본문 이외의 것은 사족(蛇足)이다.

 

둘째, 왜 그리고 언제 파편화했나? 이는 파편화의 배경(역사적 상황)을 밝히라는 말이다.

 

셋째, 왜 그리고 언제 전설화(傳說化)했나? 이는 전설화의 배경을 밝히라는 말이다.

 

넷째, 신화가 파편화했는데 왜 신화 조각이 되지 않고 전설로 변했나?

 

다섯째, 설문대할망 설화가 신화(갓난이)에서 시작하여 전설(어른)로 자라났다면, 어떻게 어른이 갓난이 시절 배내옷을 입고 살 수 있나? 뱀도 벗어놓은 허물을 도로 입지는 않는다.

 

2.6. 하지만 신화론자들은 위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아니, 못하고 있다. 그 대신에 다음과 같은 항변, 아니, 궁색하기 짝없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첫째, “거인은 신화의 주인공이다”라고. 물론 이는 참[眞]이 아닌 명제이다. 논리학 이론에 ‘우연(偶然)의 오류(誤謬)’(fallacy of accident)가 있다. 이는 ‘어떤 명제는 그것이 일반적 타당성을 띤 것이라 해도 항상 무조건 타당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고로, 주인공이 거인이라 해서 당해 설화를 반드시 신화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아니, 설화의 신화·전설 여부는 ‘주인공’이 아니라 ‘본문’이 결정하는 것이다. 설화는 구비문학 곧 문학이니까.

 

둘째, “일본인들도 설문대할망을 신이라 한다”라고. 아직도 의식이 일제 치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있다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왜 주체적이고 자주적이지 못할까? 탐라 설화는 탐라 민중 공동체 삶의 소산이다. 어떻게 설화 파악에 일본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2.7. 여하튼, 왜 일본은 설문대할망 설화를 신화로 취급할까? 그것은 ‘일본 설화 체계’ 때문이다. 예컨대, 그 체계는 ‘국토 끌기, 국토 형성’은 신화로 취급한다. 따라서, ‘비양도 설화’(해녀들이 “섬이 떠내려 온다!”라고 외치자 표류하던 섬이 멈추어 비양도가 되었다는 내용)는 ‘국토 끌기’에, ‘설문대할망 설화’(오름을 만들었다는 내용)는 ‘국토 형성’에 해당되어 신화가 되는 것이다.

 

2.8. 한편, 탐라 설화 체계는 ‘무격(巫覡) 사회에서 구전하는’[곧 ‘굿에서 구송(口誦)되는’] 설화는 ‘본풀이’(신화)로, 일반 민중 사이에서 구전되는 설화는 ‘이야기’(전설·민담)로 취급한다. 따라서, 일반 민중 사이에서 구전하는 비양도 설화도 설문대할망 설화도 전설이 되는 것이다.

 

내친김에 말하면, 전설은 사람·사물(자연물·인공물) 등에 대한 설명을 위한 것이다. 참, 여기서의 사람·사물 등은 설화 용어로는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이라 한다. 그리고 ‘본풀이’는 ‘신(神)의 근본(根本)’에 대한 ‘풀이’(‘풀다’[解]의 전성명사)를 위한 것이다. 주로 ‘신(神)의 내력담(來歷譚)’ 형태를 띤다. 즉, 설화 주인공이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일정 직능을 지닌 신으로 좌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본풀이의 신은 축원사항 성취라는 공리적(功利的) 기능을 꼭 지닌다. 이는 일정 직능(職能)을 꼭 지닌다는 말이다. 그리고 죽지 않고(죽었으면 환생하여) 신으로 좌정하면 선신(善神)이고, 죽어서 신으로 좌정하면 악신(惡神)이다. 이 두 가지는 본풀이의 핵심 특징이다. 고로, 직능도 없고 신으로 좌정하지도 않은 설문대할망은 신일 수 없다.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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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줍서 2017-05-26 04:45:32
제주의 고양부 3성시조와 설문대할망과 누게가 먼제 제주땅에 살았수강
알민 고라줍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