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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스토리텔링?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5.21 15: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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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1> 서(序)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2017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팸플릿 표지. ⓒ 제주돌문화공원

 

「사업기간 : 2012년 ~ 2020년(9년 간) / 사업규모 : 설문대할망 전시관 신축 및 부대공사 1식 / 주요내용 : 신화·역사·민속관 및 부대시설(지하 2, 지상 1, 연면적 28,520㎡) / 총사업비 : 930억 원(국비 462억 + 지방비 468억)」

 

이상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돌문화공원에다 ‘설문대할망 전시관(실은 ’신화관‘임)’을 건립하겠다며 밝힌 사업개요이다.

 

1. 이 글의 취지는 위 사업이 ‘사회 정의에 반하는 것’, 부연 설명하면 허상(虛像)을 만들고 역사를 왜곡하고 종교적 갈등을 야기하고 공동체 분열을 조장하는 것임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1-1. 일설에 의하면, 지명 ‘제주’(濟州)는 치욕스럽게도 ‘고려의 구제(救濟)를 받아야 할 고을[州]’ 곧 ‘속지’(屬地)라는 뜻이고, 지명 ‘탐라’는 자랑스럽게도 ‘왕후지지’(王侯之地: 임금과 제후가 태어나는 땅)라는 뜻이다. 고로, 이 글에서는 가급적 ‘제주’를 피하고 ‘탐라’를 쓰려 했다.

 

내친김에 말하면, 오늘날 혹자는 ‘위대한 제주’ 건설을, 혹자는 ‘더 큰 제주’ 건설을 구호로 내건다. 기막힐 노릇이다. ‘위대한 구제해야 할 고을’, ‘더 큰 구제해야 할 고을’을 건설하겠다니 말이다. 아니, 일단 치욕스러운 이름부터 불식(拂拭)해야 하지 않을까?

 

1-2. 1105년(고려 숙종 10)에 탐라 국호가 고려 조정에 의해서 폐지되었다. 이로써, 탐라국은 아주 몰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는 탐라 땅의 ‘신화시대’(神話時代)가 막을 내렸다는 말이다. 망국(종속국)의 신화(곧 ‘선사시대의 역사’)는 종주국의 신화에 의해 축출되게 마련이니까. 아울러, 탐라 땅의 설화가 격변기를 맞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탐라의 전설(주로 ‘역사적 전설’)이 저항적인 색채를 짙게 띠었다. 이 땅의 역사는 탐라 국호 폐지 이래로 이른바 ‘육짓놈들’(외세)의 핍박과 토박이들의 저항으로 점철되었으니까. 어쨌든, 탐라국 몰락은 현존하는 탐라 설화 본문들 형성에 적잖은, 아니,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설화는 민중사(民衆史) 곧 ‘당해 민중 공동체 삶’의 소산이니 말이다.

 

1-3. 탐라 신화와 여타 신화는 상이점이 있다. 이를테면, 남신(男神)의 등장은 탐라 신화에서는 ‘용출종지(聳出從地)’로, 한반도 신화에서는 강림(降臨)이나 난생(卵生)으로 이루어진다. 또, 탐라 신화는 ‘축원 사항 성취라는 공리적(功利的) 기능’을 요하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렇지 않다. 물론 이런 차이는 ‘삶의 자리’(Sitz-im-Leben) 곧 ‘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이는 올바른 신화 파악에는 올바른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실, 역사적 상황을 도외시한 신화 해석은 신화 왜곡을, 나아가서 역사 왜곡을 초래한다.

 

1-4. 탐라 설화 낱낱은 탐라 설화 전체라는 하나의 염주를 이루는 일련의 모감주에 불과하다. 탐라 설화는 하나같이 다 ‘탐라 민중 삶의 산물’ 곧 ‘탐라인 삶의 단면(斷面)’이니까. 물론 설문대할망 설화도 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여하튼, 탐라 설화들은 모름지기 상호 상관관계(곧 ‘탐라 설화 체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1-5. 설화는 일정 공동체의 삶(좌절 · 꿈 · 의식 등)에서 형성되는 것, 즉 민중의 역사와 더불어 발아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이는 설화는 ‘정신·역사 등의 곳간’이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설화의 오늘날의 존재 의의는 그 이면(裏面)의 정신·역사 등인 셈이다.

 

첨언하면, 여기서의 정신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시의 적절한 것이거나 미래 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탐라 사회는 이런 정신을 디딤돌 또는 이정표 삼아 미래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미래로 순항할 수 있다.

 

참, 설화가 형성된다는 말은 ‘작금의 스토리텔링처럼 의식적(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조작 없는 여론처럼 무의식적(자연발생적)으로’ 생긴다는 뜻이다.

 

1-6. 문학(곧 구비문학) 이론에 의하면, 설화는 민담(民譚)·전설(傳說)·신화(神話)로 분류된다. 민담은 ‘골계미(滑稽美) 곧 희극미’(웃음)를, 전설은 ‘비장미(悲壯美) 곧 비극미’(좌절)를, 그리고 신화는 ‘장미(壯美) 곧 숭고미’(성스러움)를 추구한다. 그런데 제주에는 민담이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날 제주에서의 ‘삶의 자리’가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한편, 전설은 바로 그 참혹한 ‘삶의 자리’(역사적 환경) 때문에 도리어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골이 깊을수록 산은 높은 법이고, 역경이 심할수록 인생은 영그는 법이니까. 사실, 탐라 전설이야말로 가히 탐라의 뿌리요 꿈의 보고(寶庫)라 함 직한 것이다.

 

다른 한편, 신화는 탐라가 망국인 탓에 고려(곧 한반도)의 신화에 몰려 축출되었다. 본디 망국 언어 · 신화 등은 축출되게 마련이니까. 그러고 보면, 현존(現存)하는 제주 신화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탐라의 뿌리나 꿈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인 셈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걸핏하면 말한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요 ‘신들의 고향’이라고. 이는 탐라 토박이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내처 말하면, 현재의 제주 신화에는 역사가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이 땅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나 이정표로 삼을 만한 정신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시대착오적인 기복신앙(祈福信仰)과 운명론뿐이다. 지금은 기복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위한 이타주의(利他主義)’가, 그리고 운명론이 아니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는 현재의 제주 신화는 시대착오적이어서 탐라 땅의 진로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말이다.

 

1-7. 요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는 용어가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것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이야기하기’ 또는 ‘[구어(口語)] 거짓말하기’이다. 첨언하면, 스토리텔링은 ‘거짓말하기’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실을 이야기하기’여야 한다. 진실이야말로 제주 미래를 위한 가장 확고한 디딤돌이요 가장 정확한 이정표이니까. 여기서의 진실은 탐라의 참된(즉, 조작되지 않은) 뿌리요 꿈이다.

 

장성철씨 ⓒ 미디어제주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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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2017-05-22 10:24:32
좋은 기획 기대합니다....다음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