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가 민원 처리 과정 중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구색 맞추기식으로만 진행했던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1일 본 매체는 한 도민의 제보에 따라 전농로 교통약자 통행 위험(인도(人道)에 휠체어도 못 다니는데 '세계안전도시'?)을 취재 보도했다.
제주시 전농로 KT제주지사 앞길은 도로 중앙에 식재된 소나무 때문에 인도 폭이 50cm 내외로 좁아져 휠체어 및 유모차는 통행이 아예 불가하고, 비장애인에게도 통행 중 사고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다.
제보자 강모씨는 지난 2월 제주시 건설과에 “소나무 제거를 검토해달라”는 민원을 넣었고, 제주시 도시건설과(이하 도시건설과)로부터 지난 3월 8일 “주민 의견 수렴을 의뢰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이틀 뒤인 3월 10일 “주민 의견을 수렴했으나, 반대 의견이 있어 즉시 반영이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강씨는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는데 이 동네 사는 나도 (소나무 제거) 의견 수렴한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며 “도대체 누구 의견을 수렴했는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미디어제주>는 당시 주민 의견 수렴 절차와 구체적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일 제주시 도시건설과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지난달 20일 도시건설과로부터 답변을 받았으나, 이도1동 주민센터 측에 주민 의견 수렴 협조 요청을 했다는 내용뿐이었다. 관계자에게 전화로 자세한 내용을 문의하자 “도시건설과에서 주민센터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사실 말고는 구체적인 사항을 알지 못 한다”고 답변을 받았다.
이에 이도1동 주민센터에 같은 내용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지난 10일 주민센터로부터 답변 받은 내용을 확인해보니 “주민 의견 수렴”을 했다고 보기엔 힘든 점이 많았다.
주민센터는 3월 8일 오후 도시건설과로부터 의견 수렴 요청을 받고 다음날인 9일 주민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이도1동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마을회의였다. 이 날 참여한 통장 16명 중 9명이 소나무 제거에 반대를 했고, 7명은 의견이 없었다. 심지어 반대 의견 중엔 인도 중앙에 서있는 소나무가 차량의 인도 침입을 막아주기 때문에 오히려 보행자의 안전에 기여한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회의 전 소나무로 인한 통행 위험 및 불편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통장들이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통장 16명이 인구 8000명에 가까운 이도1동(2016년 8월 31일 현재 인구 7913명)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까? 확인한 바에 따르면 통장은 모두 비장애인이라 휠체어나 유모차 통행 불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도1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의견 수렴 과정이 미흡했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건설과에서 주민 의견을 최대한 빨리 수렴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빨리 좀 처리해달라는 전화까지 받아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시에서 기간을 여유 있게만 준다면 현수막을 걸거나 다양한 홍보를 통해 최대한 많은 주민들에게 사안을 알리고 다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도시건설과는 의견 수렴이 미흡했던 점에 대해 “당시 이 건을 맡았던 담당자가 바뀌어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다”면서도 “이도1동 주민센터가 의견 수렴을 담당했으니 그 절차나 내용이 미흡한 건 주민센터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시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재촉해서 급히 서두른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우리가 급하다고 재촉했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우리는 주민센터에 의견 수렴을 요청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민원에 답변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재검토 의사 여부를 묻자 “그건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건 아니고 주민센터에서 다시 수렴해온다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답했다.
제보자 강씨는 상황을 전해 듣고 “반대 의견이 아홉 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냐”며 “16명에게만 물어놓고 주민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마냥 답변을 한 것이 괘씸하다”고 말했다.
제주엔 현재 예산 3500여억 원이 책정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 800여억 원 규모의 시민복지타운 조성 등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는 현안이 쌓여 있다. 모두 사업 초기부터 주민과의 소통 및 공론화 과정 부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사안이다. 1개 동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조차 날림으로 이뤄지는데 막대한 도민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제대로 된 절차가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