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폭이 60센티미터도 안 돼...市 "소나무 가치가 높아서 제거 어려워"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07년 국내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안전도시'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관광객 증가에 따라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교통량 급증에 따른 보행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 과연 보행자의 안전도 세계적 수준일까? 교통약자의 시각으로 제주의 보행안전 실태를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강 모씨(남·40대·제주 삼도동)에겐 십수 년째 다닐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시 전농로 KT제주지사 앞 길. 전농로 차도를 넓히며 인도 폭은 좁아진데다 길 위 소나무 때문에 휠체어가 아예 지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강씨의 제보를 받고 기자는 1일 전농로를 찾았다. 직접 휠체어를 타고 통행을 시도했다. 한국토지공사 제주지점에서 KT지사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곧 휠체어를 포기해야만 했다. 나무를 둘러싼 화단이 튀어나와 도로 폭이 95센티미터로 좁아졌기 때문이다. 너비 70센티미터가 넘는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자니 인도 밖으로 떨어질까봐 진입할 엄두를 못냈다.
곧바로 이어지는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길 중앙에 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휠체어, 유모차는 물론이고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였다. 실제로 폭을 재어보니 60센티미터도 채 안됐다.
강 씨는 이 때문에 탑동으로 넘어가야할 때면 맞은편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식당 방문 차량과 공사 차량들이 인도 위를 점거하고 있어 이마저도 힘들다. 강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선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를 다니기가 어려워 할 수 없이 광양사거리까지 빙 둘러서 가곤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통행 불편을 알리면 개선이 있을 거라 믿고 지난 2월 도로관리 관련부서에 민원을 넣었다. 이에 건설과 관계자는 지난 3월 8일 "주민 의견을 수렴해 불편사항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으나, 그로부터 이틀뒤인 3월 10일 "의견 수렴 결과, 1940년에 식재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소나무를 제거하는데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 즉시 (민원을) 반영하는데엔 곤란하다"며 "이후 도로여건을 고려해 검토해 나가겠다"는 답변을 했다.
기자는 민원 이후 "검토" 진행상황이 궁금해, 당시 답변을 담당했던 제주시 도시건설국 건설과로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건설과 관계자는 “오래된 민원이라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확인하는대로 연락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
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 송창헌 팀장은 “전농로는 애초에 (차도를 넓히는) 도로 정비를 계획할 때부터 이동약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제주가 ‘세계안전도시’라는 명칭을 말하기에 앞서 도로시설 계획단계부터 이동약자 및 관광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