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채구석, 바위 뚫어 천제연 물로 논 일궈낸 개척자를 만나다
채구석, 바위 뚫어 천제연 물로 논 일궈낸 개척자를 만나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3.05.19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문천 탐사] ② 구한말 백성 편에 선 진정한 목민관(牧民官)의 숨결

단단한 암반을 뚫고 물이 흐르도록 한 천제연 도수로의 모습. 당시 대정군수였던 채구석 군수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 수 있다.

3단 폭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천제연 폭포는 제주도내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관광지다.

중문천 끝 자락에 있는 천제연 탐방로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구한말 제주 선인들의 개척정신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척박한 화산섬 제주에 관개수로를 뚫어 무려 5만평의 논밭을 일궈낸 채구석(蔡龜錫)이 그 주인공이다.

천제연 3단 폭포에 세워진 성천답관개유적비(星川沓灌漑遺跡碑) 뒷면을 보면 대정군수를 두 차례 지낸 그가 이 도수로(導水路) 공사에 지금으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과학적인 지혜를 동원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서 그는 애민정신이 투철하고 과학적인 사고와 개척정신이 뛰어난 선구자로 기려져 있다.

특히 당시 토목기술로는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1906년부터 1908년까지 3년 동안 공사 끝에 천제연 도수로 공사를 완공, 황무지를 옥답으로 바꿔 주민들이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도수로가 시작되는 부분은 단단한 조면암 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물길을 뚫으려면 이 바위를 뚫어야 했다. 장비라고는 곡괭이, 정 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과 장작불을 사용해 온도 차이를 이용하는 과학적인 공법을 동원했다.

암반 위에 장작불을 뜨겁게 지펴 바위를 달군 다음, 독한 소주를 부어 더욱 뜨겁게 한 뒤에 찬물을 부어 급속히 냉각시켜 폭발하도록 했다. 단단한 바위가 급격한 온도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균열되는 과학적인 방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제주 농업 역사에 획기적인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천제연 관개수로의 모습.

이 도수로로 물을 대 벼농사를 지었던 수답 유적들은 지난 1991년 중문관광단지 2차 개발지구로 편입됐다. 100여년 전에는 제주에서는 거의 드물게 벼농사가 지어졌던 옥답이었지만, 지금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등 각종 시설부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 채 군수의 다섯 번째 아들 채몽인(蔡夢印)이 애경유지 공업주식회사의 창업자이며, 또 그 손자 채형석(蔡亨錫)은 국내 소규모 항공사의 효시 격인 제주항공을 설립, 제주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중문천이 간직하고 있는 채구석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척박한 제주 땅을 일궈낸 제주인의 기개와 개척정신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진정한 목민관(牧民官)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몸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해도 결코 과도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천제연 3단폭포에 세워진 성천답관개유적비(星川沓灌漑遺跡碑).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