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시작된 강정평화대행진이 지난 4일 제주시 탑동광장에서의 평화 콘서트로 대미를 장식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기자는 5박6일의 전체 일정 가운데 고작 1박2일을 함께 걸었을 뿐이다. 모처럼의 휴가 기간이었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가족회의를 한 끝에 강정평화대행진에 함께 하기로 한 것이었다. 서진 일행과 함께 한 1박2일 동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도법 스님을 가까이에서 직접 만난 것은 이번 강정평화대행진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평화대행진 참가자들과 도법 스님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 것도 기가 막힌 우연 덕분이었다.
당초 서진 일행은 제주시 민속오일장에 마지막 숙소를 마련하기로 하고 대형 천막을 친 상태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3일 오후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제주시 민속오일장에 설치된 천막이 파손된 것이었다.
심지어 행사 지원팀이 촬영한 사진에는 천막 위에 다른 천막이 살포시 올라가 있는 ‘이층 천막’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결국 이 때문에 외도초등학교 체육관과 월대마을회관으로 급하게 숙소가 변경됐고, 행진 구간도 갑자기 단축됐다.
외도초등학교에 숙소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월대천에서 도법 스님과 대화의 시간이 마련된 것도 결국 이같은 돌발상황 덕분이었다.
# “생명을 탄생시키고 살아가게 하는 것보다 위대하고, 거룩하고, 신비한 일은 없다”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도법 스님이 평화대행진 참가자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생명, 평화, 공존, 밥, … 다양한 참가자들의 대답이 나왔다.
그는 “내 생명이 살아있지 않는 한 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한 목숨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살아가게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거룩하고,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 조건은 바로 자연이며, 먹거리”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화 시간에 한 참가자가 ‘귀농’의 좋은 점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그가 ‘농업의 가치’에 대한 해답으로 내놓은 이야기였다.
그는 “강정마을의 문제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 문제”라면서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게 해주는 농업을 무시하는 것은 부모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우리는 ‘후레자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 “경제성장, 민주화의 명분은 결국 ‘나와 내 편’만을 위한 명분 … 얼마나 야만적인가”
이어 그는 “20세기 100년 동안 퓰리처상 수상작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 발간된 책 제목이 ‘죽음으로 남긴 20세기 증언’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냐”면서 “물질적인 풍요와 경제성장, 민주화를 부르짖어 왔지만 결국 끊임없이 ‘국가’와 ‘민족’을 내세워 상대국의 자유와 정의, 평화를 파괴하는 일이 반복돼 왔을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100년 동안 경제성장과 민주화, 첨단과학 발전의 명분은 그럴 듯했지만 결국 ‘나와 내 편’만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얼마나 야만적인가”라고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그는 “말로는 ‘더불어 함께’를 외치면서 온통 패거리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패거리’ 문화를 꼬집었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장관을 맡아 정치를 한다면 제대로 하겠느냐”는 그의 한 마디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월대천에서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