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환대와 연대로 극복해야 할 위기 김중미의 『느티나무 수호대』 ①
환대와 연대로 극복해야 할 위기 김중미의 『느티나무 수호대』 ①
  • 정미주
  • 승인 2024.02.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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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도서관] <2>

이 글은 정미주 작가가 <소년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글이며, 50회 소년문학 신인문학상 작품입니다. 정미주 작가의 글감이 된 느티나무 수호대는 김중미 작가의 청소년소설로, 지난해 돌베개에서 펴냈습니다. 정미주 작가의 글을 두 차례로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주]

 

<목차>

1. 들어가며
2.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끌어내는 문제 인식
3. 초월적인 존재를 내세운 전래동화의 원용
4. 생태계와 관계의 위기

5. 춤으로 보여주는 문화·인간·자연의 통합
6. 환대와 연대로 만들어 갈 ‘기억의 숲’
7. 맺으며

1. 들어가며

시골길을 가다 보면 마을마다 굵고 웅장함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 어귀에서 이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느티나무는 우리 민족의 수호신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 사랑방 역할을 한다. 또한 옛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는 당산목으로 떠받들어 왔다.

이 작품 속의 느티나무도 대포읍에서 500년 동안 자라 높이 24m, 둘레가 10m가 넘는 마을의 당산목이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홍규목’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만큼 각별하다.

놀랍게도 이 느티나무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느티샘’이라 불렀다.

‘느티샘’이 이처럼 사람이 된 사연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느티샘’의 엄마 나무는 당시 700년 정도의 수령인 당산목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위험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숨겨주었고, 그로 인해 불태워졌다. 그러나 엄마 나무는 10년 정도 더 살면서 후계목 ‘느티샘’에게 목생(木栍)의 지혜를 전수한다.

이 작품의 배경인 대포읍은 수도권 변두리 도시로 여러나라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신도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세상과 단절되자 ‘느티샘’은 이들을 직접 돌본다. 그런데 대포읍에 브랜드 아파트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렸고 ‘느티샘’이 자리한 느티 언덕도 잘려 나갈 위기에 처한다.

‘느티샘’의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그들의 정신적인 버팀목이자 마을의 당산목인 느티나무를 지키는 방법을 고민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현대인들에게 처한 위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또, 인간과 자연의 통합이라는 조화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대포마을 사람들을 통해, 결국은 상호 연대로써 당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끌어내는 문제 인식

이 작품은 각 인물에 대한 서술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두드러진다. 중심인물은 댄스 대회 출연을 위해 결성된 '레인보우크루 2기' 아이들이다. 이들의 태생, 가정환경, 현재 상황 등을 자세히 서술한다.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세세한 서술이 자칫 불필요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표면적 이해가 아닌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이것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작중 인물들은 우리 주변 ‘이웃’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중미 작가는 1987년 인천 만석동에서 ‘기찻길 옆 공부방’을 열었고, 2001년 강화로 이주하여 두 곳을 오가며 소외된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작가가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표현한 인물들은 실제 인물을 작품 속에 구현한 경우가 많다. 『꽃섬고개 친구들』에서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한 ‘오태양’을 모델로 했는데, 근육이 점차 마비되는 근이영양증을 앓았던 영호를 모델로 한 「조커와 나」, 미술에 재능이 있는 민우를 모델로 한 「꿈을 지키는 카메라」, 다운증후군 동생을 둔 영욱이를 모델로 한 『내 동생 아영이』 등이 있다.

실제 인물들을 통해 일상에 뿌리박힌 폭력, 재개발로 내몰린 사람들과 한발 물러선 방관적 폭력, 장애인의 돌봄 등 사회에 가려진 문제를 꺼내 작품들을 꾸준히 써왔다. 이 작품의 인물들 또한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느티언덕'을 지키려는 대포읍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이 모아지는 과정이 흥미롭다. 각 인물들은 태어난 곳도 다르고 가정환경도 가지각색이다. 마치 각각 다른 수원지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그 강줄기가 점차 넓어지며 큰 강을 이루어 바다로 나아가는 형상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대포읍은 토박이들보다 이주민이 더 많은 ‘강’ 같은 곳이다. 작중 인물들은 '느티언덕'을 지키고 단절된 관계 회복을 위해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결집한다. 이 거대한 변화는 도훈이가 레인보우크루 2기 멤버를 모으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도훈이는 5학년 때 다문화 캠프에서 이들과 ‘레인보우 크루’를 꾸려 춤을 춘 것을 계기로 ‘뭔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훈이 엄마는 베트남에서 와, 외가에 돈을 보내기 위해 일을 하느라 할머니와 갈등이 생겨서 이혼한다. 도훈이는 엄마 부재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나이지리아 아빠에서 태어나 피부가 검다고 놀림 받는 니카, 중국 지안에서 살다 대포읍으로 이사 왔지만 ‘코로나’로 놀림 받으며 마라탕 가게까지 문을 닫게 된 금란이네, 베트남에서 태어나 엄마의 결혼으로 대포읍에 온 ‘동남아 울보’라는 별명의 민용이….

이 아이들의 서사를 세밀하게 다루면서 ‘다문화’라는 명목으로 뭉뚱그려졌던 실타래를 한 가닥씩 해체 시킨다. 그럼으로써 다문화 가정의 고충을 표면으로 드러내고 구체화한다.

대포읍의 다양한 구성원 중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은 또 있다. 엄마의 폭력과 방임으로 대포읍에 사는 외할머니를 찾아온 예은이. 엄마는 공인중개사고, 아빠는 서점 운영을 하신다. 그런데 바쁜 부모님 때문에 거의 혼자 저녁을 먹는 새봄이.

이렇게 가정마다의 개인사를 드러내며 아픔과 결핍이 있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통해 독자의 문제 인식을 일깨운다.
 

3. 초월적 존재를 내세운 전래동화의 원용

신화나 전설을 통해 본 나무는 하나의 세계이자 초월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수’로 통하는 위그드라실을 통해 나무가 세상의 근원이라는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 나무는 거대한 물푸레나무인데 신 오딘이 세계 창조 후 심었단다. 울창하여 잔가지는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를 뒤덮었다.

세 줄기에 거대한 뿌리가 있어, 그중 하나는 지하의 나라 또는 안개의 나라 니플헤임으로, 또 하나는 인간 세계인 미드가르드로,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로 뻗었다고 한다.

김은아의 논문 「물질적 전회를 통해 본 나무와 인간의 얽힘, 그리고 상황적 지식」에서 ‘나무는 현현(顯現) 세계 전체’이자 ‘세계상인 동시에 우주 축이며 하늘과 땅과 물 세 가지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이라고 했다. 즉, 나무는 온 세계를 교류,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본다.

이 작품에서 느티나무인 ‘느티샘’은 나무의 정체성과 인간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초월적 존재다. 이 초월적인 존재인 ‘느티샘’은 대포읍의 자연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과거의 온전한 생태계를 유지했던 ‘기억의 숲’ 복원으로 생명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주체가 된다.

가공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거나 초현실적인 존재 또는 사건을 다루는 문학 장르. 판타지(fantasy)는 현실 세계의 법칙을 깨뜨리는 이야기이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람의 일에 관여하게 된 건 한 100년 전쯤이다. 그즈음을 '일제강점기'라고 한다는 것을 책을 읽고 알았다. 1919년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느티언덕'에도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멀리 하남면, 서포면, 양촌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 일본 헌병에 쫓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엄마는 그들을 자신의 품으로 숨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일본 헌병이 와서 엄마 나무에 불을 질렀다. 엄마 나무가 불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몸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가 사람의 몸을 하고 밖으로 나간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느티나무 수호대』 10쪽 )

이처럼 '느티샘'은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서 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의 아이들을 돌본다. '느티샘'을 눈여겨보았던 새봄은 '느티샘'의 존재에 의문을 갖는다. 고모가 보여준 어릴 때 사진 속 '느티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변함없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마을 사람들은 '느티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이 경계 없이 혼재한다. 이처럼 전래 동화는 판타지와 다르게 현실과 환상이 사이 좋게 섞여 있다.

북유럽 신화에서 최고의 신 오딘, 헤니르, 로두르 삼 형제가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를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그리스ˑ로마 신화에서 아폴론이 다프네에게 사랑을 구애하다가 다프네가 월계수 나무로 변해버린 신화는 많이 알려졌다. 우리 나라의 당산목에도 각각의 고유한 전설이 있기도 하다.

이처럼 나무가 사람이, 사람이 나무로 변한다는 신화나 전설을 통해, 느티나무가 사람이 된 표상은 전래 동화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래동화 속 세계는 상식과 논리가 근거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무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고, '느티샘'이 나이 들지 않는 설정은 판타지 요소를 접목했다기보다는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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