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기후위기와 재난 시대에 다시 보는 제주의 해안사구
기후위기와 재난 시대에 다시 보는 제주의 해안사구
  •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
  • 승인 2024.01.07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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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남의 생태적 시선 <12> 1. 왜 해안사구 보전과 복원이 필요한가?

해안사구는 여러 기능과 가치가 높지만 국내에서는 저평가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 해안사구는 훼손율이 80% 이상으로, 국내 최대의 훼손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해안사구는 바다의 거센 파도로부터 육지를 보호해주는 완충역할로 인간의 거주지와 농지를 보호해주는 재난 예방 역할을 한다. 또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시대에 블루카본의 핵심 지대인 염생식물(연안 식물 생태계가 저장·격리하는 탄소)의 군락지이기도 하다. 이번 연재에서는 왜 재난 예방과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 해안사구 보전과 복원이 필요한지 3회에 걸쳐 모색해보고자 한다.

도내 생태계 중에서 해안사구만큼 저평가된 곳이 있을까? 그러다보니 제주도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훼손율이 가장 높다. 무려 80% 이상의 훼손율이다. 일례로 김녕 해안사구는 국내 해안사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훼손으로 인해 현재는 소형사구로 전락했고 국내 최대 자리를 충남 태안 신두리 사구에 뺏겼다.

문제는 단순한 훼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안사구 훼손으로 인해 앞으로 바다로부터 닥치는 재난에 대응할 보루가 없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 흡수 능력이 큰 거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장에서는 이 2가지 관점에서 제주 해안사구를 바라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왜 해안사구의 보전과 복원이 필요한지 들여다보려고 한다.

# 해안사구는 재해로부터 인간의 거주지와 농경지를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

해안사구는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폭풍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그 피해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해안사구는 바다에서 기인하는 자연재해에 대한 1차 저지선이다.

해안사구의 자연 방파제 기능 /자료 출처=국립환경과학원
해안사구의 자연 방파제 기능 /자료 출처=국립환경과학원

모래는 바위나 콘크리트보다도 파도에너지의 충격이 가해질 때 흡수와 완충 기능이 더 강력하다. 그래서 콘크리트와 같은 딱딱한 방파제는 파도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해서 방파제를 받치고 있는 모래층이 파헤쳐진다.

이처럼 해안에 대한 방어력은 딱딱한 경성 호안보다 물렁물렁한 연성 호안이 훨씬 우수하다. 그 중에서도 모래로 이뤄진 해안사구는 오늘날 가장 효율이 좋은 연성 호안이다

하지만 해안사구가 아닌 인공구조물인 방파제는 파도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결국 무너지게 된다. 해안은 방파제의 잔해물로 뒤덮이고 배후지역은 침수 피해를 보게 된다. 이에 비해 사구로 이루어진 해안은 사구가 파도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충격을 흡수하는 자연방파제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경관을 유지하면서도 더 안전하다.

이처럼 모래는 암석보다 파도에너지를 감싸서 상쇄하는 기능이 더 크기 때문에 암석해안보다 해안사구가 있는 곳이 바다로부터 육지를 보호해주는 완충 역할이 더 크다.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 해안도로와 주차장, 건물을 해안사구 위에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다. 해안가의 침식은 곧 해안지형과 해안생태계의 파괴로 연결된다.

특히 해안사구는 복원력이 강하다. 인공 방파제가 파괴되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복구해야 하고 복구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해안사구가 있는 곳은 스스로 원지형으로 복원하는 특성을 지녔다. 즉, 모래 해안은 폭풍이나 해일로 인해 침식피해를 겪더라도 해안사구가 잘 보전돼 있으면 해안사구의 모래가 사빈에 모래를 보충해 줘 다시 자연스러운 해안 경관으로 복원되는 것이다.

해안사구의 복원 기능과 모래 보충 기능. /자료 출처=국립환경과학원
해안사구의 복원 기능과 모래 보충 기능. /자료 출처=국립환경과학원

# 해안사구가 지켜주는 마을

해안사구가 있는 마을은 바람과 염분이 적게 날아들기 때문에 깨끗한 지하수를 얻기 쉽다. 특히, 해일이나 폭풍 때 마을을 보호해주는 역할이 크기 때문에 해안사구가 잘 발달한 지역의 배후에는 마을이 들어서기에 적당하다. 실제로 도내외에서 해안사구의 방파제 기능으로 보호받는 곳은 상당히 많다.

강원도 고성군의 동호 해안사구는 동해로부터 불어오는 파도와 폭풍으로부터 동호리 마을과 농경지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지역은 수심이 깊고 개방돼 있어 파도에너지와 바람이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하다. 특히 1968년과 1936년 해일에 마을과 농경지의 상당수가 침수된 적도 있어, 해안사구를 필수적으로 보호해줘야 한다.

인천시 옹진국 대청도 남쪽에 있는 사탄동사구도 마찬가지다. 약 700m의 해안선을 따라 높이 30m에 이르는 사구마루에 10m 이상의 소나무들이 있어 해안사구가 높은 방벽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해안사구 뒤쪽에는 사탄동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인천시 덕적도 서포리 마을의 서포리 해안사구도 마찬가지이다. 높이 10 m에 이르는, 여러 개의 열로 이뤄진 해안사구 지대가 배후에 위치한 서포리마을을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의 동호 해안사구(왼쪽 사진)와 인천시 덕적도 서포리마을의 서포리 해안사구(오른쪽)는 배후지역의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해주고 있다. /사진 출처=국립환경과학원
강원도 고성군의 동호 해안사구(왼쪽 사진)와 인천시 덕적도 서포리마을의 서포리 해안사구(오른쪽)는 배후지역의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해주고 있다. /사진 출처=국립환경과학원
짙은 녹색의 사계 해안사구 뒤편의 농경지. /사진 출처=네이버 지도
짙은 녹색의 사계 해안사구 뒤편의 농경지. /사진 출처=네이버 지도

해안가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도내 해안사구 배후에는 마을과 농경지가 자리잡고 있다. 해안사구가 있는 마을은 모두 해안사구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몇 마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귀포시 대정읍의 사계리의 사계 해안사구는 나지막한 언덕 같은 2차 사구에 곰솔림이 울창하게 있어서 배후의 농경지를 보호해 주고 있다. 왼쪽 인공위성 사진을 봐도 사계 해안사구 뒤편에는 농경지가 많음을 볼 수 있다. 용머리해안 옆에 있는 설쿰바당 해안사구도 마찬가지다. 해안사구 뒤편으로 마을이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신양 해안사구는 사구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구마루가 높아서 마치 알오름이 능선을 이루듯이 구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길게 띠처럼 이룬 신양 해안사구 뒤에는 신양리 마을과 농경지가 들어서 있다. 마치 오름 같은 신양 해안사구가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폭풍과 거센 파도로부터 신양리를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양 해안사구는 마치 키가 작은 오름처럼 있어서 배후의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다.
신양 해안사구는 마치 키가 작은 오름처럼 있어서 배후의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다.

신양 해안사구는 다른 해안사구와 달리 사구마루에도 키가 큰 교목이 없고 순비기나무, 갯메꽃 등 키가 작은 염생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서 경관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제주시 이호동의 이호 해안사구도 골솔림이 폭풍과 파도에너지로부터 거주지를 보호해주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의 김녕과 월정에 있는, 예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였던 김녕 해안사구와 월정 해안사구도 나지막한 언덕처럼 해안에 길게 띠를 이루면서 배후의 농경지를 보호해주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의 평대리는 마을 자체가 평대 해안사구 안에 자리잡고 있다. 마치 작은 알오름처럼 내륙 안으로 퍼져있는 평대 해안사구에는 평대리의 집들이 해안사구를 방패막이 삼아 들어서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이다.

평대리. 해안사구를 의지해 올망졸망 집들이 들어서 있다.
평대리. 해안사구를 의지해 올망졸망 집들이 들어서 있다.

이처럼 해안사구는 재난이 일상화된 인류에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게다가 해안사구는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블루카본

블루카본(blue carbon) 또는 푸른 탄소는 세계의 해안가의 해양 생태계, 대부분 맹그로브 숲, 염생습지, 해초류 그리고 해조류에 의해 흡수되는 탄소를 뜻한다. 주로 육상 산림, 초원을 뜻하는 ‘그린카본’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블루카본은 2009년 유엔(UN) 보고서 <블루카본-건강한 해양의 탄소 포집 역할>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흡수 속도가 육상 생태계보다 최대 50배 이상 빠르고 수천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현재 크게 주목받고 있다. 즉, 블루카본을 ‘연안 식물 생태계가 저장·격리하는 탄소’로 정의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연안 또는 연안 습지에 분포하는 식물과 퇴적물을 포함하는 생태계가 격리 및 저장하고 있는 탄소를 ‘블루카본’이라고 한다. 여기서 연안은 강이나 호수, 바다를 따라 잇닿아 있는 육지를 말하며, 식물과 퇴적물에는 어패류, 잘피, 염생식물 등 바닷가에 서식하는 해양생물과 맹그로브 숲, 염습지와 잘피림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지속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 블루카본의 거점, 제주의 해안사구

현재 블루카본에 대한 과학적 연구 및 정책은 육상 탄소흡수원에 비해 초기 단계이지만 국제사회는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블루카본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2022년 8월, 제주연구원은 ‘탄소중립을 위한 제주형 블루카본 사업 모델 모색’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는 우리나라 육상 면적의 단 1.8%에 불과하지만 해양과 연안의 면적은 25%를 차지하고 있어 블루카본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게 제주연구원의 분석이다.

실제 제주연구원의 연구 결과 ‘제주형 블루카본’의 대상인 해초류(잘피)와 염습지, 해안사구(염생식물), 해조류, 패류에 의해 고정된 탄소량은 연간 7만9351t으로 추정됐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약 16억 원 규모이며, 산림 조성 효과로는 최소 31만6000여 그루에서 최대 71만6000여그루를 심는 효과와 같다.

이 같은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5월 기준 탄소 배출권 거래 가격(t당 2만6000원)으로 경제성을 평가하면 16억 원 가량으로 파악된다. 이는 일반 승용차 3만3000여 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하는 수준이고 연간 최대 71만6500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보고서는 △수중의 잘피 △조간대의 염생식물 △해안가의 황근 및 갯대추 등을 하나로 연결하는 ‘제주형 맹그로브 블루카본 숲’을 조성해 탄소 저감은 물론이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연구 결과를 보듯이, 제주 해안사구는 블루카본의 대표적 식물인 염생식물이 중점적으로 자라는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 위기 대응 측면에서 해안사구의 염생식물은 더욱 중요한 것이고 훼손된 해안사구의 경우 복원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와 같은 해안사구의 기능 때문에 미국 뉴저지 주에서는 사구 울타리와 사구식물 식재를 이용한 인공 사구 조성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제주도의 해안사구는 그동안 전국에서 가장 높은 훼손율을 기록하고 있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확산되는 제주도도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해안사구를 필수적으로 보전하고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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