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고목낭에 꽃이 피었구나" 그림으로 삶 바꾸는 제주의 할망들
"고목낭에 꽃이 피었구나" 그림으로 삶 바꾸는 제주의 할망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12.13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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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리서 2021년부터 할머니들 그림 그리고 전시회
그림 통해 일상에 새로운 활력 ... "마음이 막 즐겁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전시회를 연 할머니들. 전시에 참여한 할머니들은 강희선·고순자·강옥순·김인자·박경일·박인수·부희순·오가자·윤춘자·조수용·홍태옥·허계생 등 열 두 분이다. 사진 속엔 최소연 미술가도 함께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전시회를 연 할머니들. 전시에 참여한 할머니들은 강희선·고순자·강옥순·김인자·박경일·박인수·부희순·오가자·윤춘자·조수용·홍태옥·허계생 등 열 두 분이다. 사진 속엔 최소연 미술가와 장문경 큐레이터도 함께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우리의 삶은 여행을 닮아 있다. 여행지로 떠난 우리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풍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걸으며, 보고 놀라워하고 감탄하며 무수히 많은 장면을 눈에 담는다.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웃음을 나누고, 이전까진 없었던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를 이전까지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만 먹고 찾으려고만 한다면 일상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상 안에서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길을 걸어볼 수 있다. 반복되는 것만 같은 일상 속에서도 새로움은 늘 존재하고, 이전에 없던 경험과 풍경은 주변에 스며들어 있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 가능성들에 두근거릴 수 있다. 보고, 놀라고, 또 놀라워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삶은 여행을 닮아 있다. 아니, 삶은 여행이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살아가던 12명의 할머니들에게도 삶은 여행이었다. 제주 중산간에서 입에 풀칠할 방법이라곤 농사밖에 없던 시절, 이 마을에 들어와 평생을 손에 흙을 묻혀가며 살았던 할머니들은, 무수히 많은 굴곡진 삶을 살아오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믿었다. 자신들의 주름진 손에서도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눈부신 경험을 새로 시도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을 믿었다. 할머니들은 믿음대로 일상 속에서 새로움으로 나아갔다.

“함덕 서우봉 앞 동네에 살다가 아홉살에 시국(제주4.3)을 만난. 공부도 못하고 이녁(자신) 이름 쓸 줄도 몰라서 선흘로 시집을 왔는데,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그렇게 산다고 살았지. 나중에 물이 들어왔을 때는 방송에도 나왔어.”

김인자 할머니(84)는 깨끗한 물 구하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의 선흘리를 기억했다. 이런 선흘리의 기억은 다른 할머니들의 공통된 기억이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물도 구하기 힘든 선흘리에서 말과 소를 키우고, 밭을 일궜다. 때론 동네 남쪽으로 보이는 웃밤오름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밭에 물을 주고, 마실물로 쓰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살던 곳에서 웃밤오름까지는 4km가 넘는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던 시절, 할머니들은 무겁기만 했을 물통을 짊어지고 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 내렸고, 그렇게 삶을 지켜냈다.

박인수 할머니는 “태어나긴 선흘에서 태어났는데, 3살 때 4.3사건이 터져서 마을이 타버리고, 함덕에서 3년쯤 살았지. 그 후에 다시 선흘로 돌아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어. 그런데 너무 고생이 많았지. 선흘에는 물이 안나와서 곶자왈에 비라도 내리면 그걸 길어다 먹고, 가까운데 길어 먹다가 없으면 또 먼 데 가서 길어다 먹고 웃밤오름에 올라간다고 올라가서 거기서까지 물을 길어왔어”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진=미디어제주.
/사진=미디어제주.

물 구하는 것만 힘들었을까? 홍태옥 할머니(86)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에서 태어나 31살에 선흘로 시집을 왔고, 그 이후에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허다하게 안고 살아왔다. 그 아픔에 할머니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홍태옥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수줍고 밝게 웃어보였다. 스스로는 아들부자라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선흘에서의 삶이 쉽지 않았던 허계생 할머니(73)는 병을 얻기도 했다. “저는 구좌읍 송당에서 왔어요. 20살에 결혼을 하고 시집을 왔는데. 신랑은 군대를 가버렸지. 군대에서 나오기 전에 아기 둘을 낳았어. 그리곤 일만 하면서 살았죠. 시어머님도 (제가) 25살에 돌아가버리시고, 엄청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게 고생을 하는데 남편도 너무 말을 안들어, 그래서 화병이 났어요. 가슴에 콱 막히는 게 있는데, 처음에는 그게 암인 줄 알았지. 그래서 육지 병원까지 갔는데 병원에선 병이 하나도 없데. 그러다가 나중에 한의원에서 화병이라고 하더라고.” 허 할머니는 이렇게 전했다.

이렇게 어려운 삶을 이어가면서도 할머니들은 지금도 일을 놓지 못한다. 마을의 역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조수용 할머니(93)는 남들이 잠들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밭에 일이 생기면 꼿꼿하고 힘찬 걸음으로 밭을 향해 나아가 밭을 정리하곤 했다. 캄캄한 밤에 앞도 보이지 않는 밭에서 조수용 할머니는 삶을 이어갔다.

이처럼 흙으로 주름진 손에 붓이 들렸다. 선흘리에 자리잡아 그림을 그리던 최소연 미술가가 하루는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자고 할머니들의 손을 잡았다.

2021년 선흘리에 터를 잡은 최소연 미술가는 마을을 돌아보던 중 할머니들의 집집마다 있는 창고에 시선을 두었다. 창고마다 할머니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들은 낮 동안 밭에서 흙을 일구며 갖은 먹거리를 만들어냈고, 저녁이면 자신들의 도구와 수확한 것들을 창고에 가지런히 정리해두었다. 창고는 할머니들의 노동과 삶의 이야기를 쌓아둔 작지만 커다란 공간이었다. 그네들만의 작업실이었다.

그림이 전시돼 있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부희순 할머니(88)의 창고. /사진=미디어제주.
그림이 전시돼 있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부희순 할머니(88)의 창고. /사진=미디어제주.

최소연 미술가는 이 공간에 매료됐다. 홍태옥 할머니의 허락을 얻어 홍 할머니의 창고에서 인근 학교의 청소년들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홍 할머니도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목탄을 집어 허공에 보이지 않는 그림을 그리다, 마침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 위에 그 목탄을 찍었다. 이를 시작으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소연 미술가는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자고 말을 건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들은 “내가 무슨 그림을 그려”라며 손을 흔들었지만, 어느 사이엔게 흙대신 물감을 손에 묻히기 시작했다. 지금껏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처럼, 할머니들은 새로운 여행길에 접어들었다. 이 그림으로 채워진 여행길은 할머니들의 삶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넣었을까? 할머니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순자 할머니(84)는 처음 그림을 그려보자는 최소연 미술가의 제안에 “아이고, 나 그림 그릴 줄 모르는디”라고 하면서도 붓을 잡았고, 이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림을 그리게 됐다. 시간가는 것도 모르고 그림을 그린다. 매일 그림을 그리다보니 내년에는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푼 마음에 품게 됐다. “마음이 막 즐겁주게(즐겁지).” 고 할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림을 그리던 할머니는 더욱 즐거운 내일을 그리게 됐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윤춘자 할머니(88). 할머니의 소망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 /사진=미디어제주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윤춘자 할머니(88). 할머니의 소망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 /사진=미디어제주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은 일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밭일과 집, 마당의 나무, 자신의 물건 등 주변의 것들을 그려내던 할머니들에게는 낮에 하는 밭일도 그림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로 승화된다. 강희선 할머니(86)는 밭일을 하는 동안 자신의 손에 잡히는 밭과 흙, 각종 작물이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라 그림의 피사체가 됐고, 더 가까이 다가게 됐다. 일도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됐다.

이뿐일까? 그림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강희선 할머니는 함께 일을 하던 ‘소’의 그림을 더 잘 그려보고 싶어서 ‘황소’의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자 10년만에 서귀포로 나들이까지 갔다. 돌아와선 이젤을 펴고 자신의 소를 그렸다.

그림은 아픔도 이겨낸다. 할머니들에겐 아픔보다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컸다. 박인수 할머니는 오른손을 다쳐 제대로 쓸 수 없었지만 남은 왼손으로 그림을 그러낸다. 불편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붓을 들어 하나하나 점을 찍어가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담아낸 ‘점묘화’를 만들어냈다.

박경일 할머니는 기억이 사라지는 ‘치매’ 증상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러낸다. 자신이 사용하던 농기구부터 자신의 얼굴까지 그려내며 그림을 그려내는 자신이 “막(매우) 좋다”고 표현한다. 주변에선 박경일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치매 증상이 완화되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이런 삶의 변화를 ‘꽃’으로 나타낸다. 커다란 나무에 화사한 꽃이 피어난 그림을 그린 김인자 할머니는 “엄뜩 생각하난 자다 일어난 잠은 안들고, 아 이거 고목낭(고목)에 꽃도 피었구나 했지. 경핸(그래서) 이걸 또 그린거라”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그림을 통해 글도 배웠고, 이전에 읽을 수 없었던 버스정류소의 지명도 알게 됐다. 버스를 탈 때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랐던 김 할머니는 이제 마음껏 버스도 탈 수 있게 됐다.

“아맹이도(아무래도) 그림을 그려가난 공부도 배울 수 있고, 우리 버스도 못 타난(못 탔었지). 버스 어디 가는 거 몰랑(버스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경헌디(그랬는데)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선흘 오는 버스도 아랑(알아서) 이젠 막(많이) 좋습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오가자 할머니(83)가 그린 그림들. 오가자 할머니는 자신이 '그림 집에 산다'고 표현한다. /사진=미디어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오가자 할머니(83)가 그린 그림들. 오가자 할머니는 자신이 '그림 집에 산다'고 표현한다. /사진=미디어제주.

그림을 통해 할머니들의 세상은 이렇게 넓어졌다. 하루하루 밭에서의 노동이라는 틀에 한정돼 있던 삶이 그림을 통해 '해방'됐고, 할머니들은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됐다. 그림을 통해 할머니들의 여행은 새로운 전환을 맞은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들의 앞에 새롭게 놓인 길은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즐거움으로 가득 차고 있다. 아직 뭔가를 하기엔 전혀 늦지 않았고, 자신들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내기도 했다.

'해방'을 맞은 할머니들의 하루는 이제 날마다 새롭다. 하루하루를 그져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그려낼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기대하고, 이전까지 없던 두근거림을 마음에 품는다. 그런 두근거림은 활기를 만들어낸다. 할머니들의 활기는 마을에 아름아름 퍼져 나간다. 붓을 들었던 할머니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마을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더 나아가 제주에 지금보다 더 큰 활기를 던져줄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를 통해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선흘리에서 자신의 창고와 마을 체육관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과, 그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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