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까망초가집에 어르신 그림이 가득하네요”
“까망초가집에 어르신 그림이 가득하네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12.0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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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 ‘삶이 잘도 맛나’展
12월1일부터 시작해 6일까지 만날 수 있어
가끔 갤러리로 변신하는 까망초가집. 미디어제주
가끔 갤러리로 변신하는 까망초가집.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산방산에 구름이 걸리면, 이 집에 반드시 머물고 간다. 구름도 잠시 쉬어가는 그 집. 바로 한운재(閑雲齋)다. 한운재는 검은 망을 잔뜩 얹었다. 때문에 ‘까망초가집’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에 있는 까망초가집은 낮은 제주집이다.

제주집은 옴팡진 곳에 자리를 튼다. 올망졸망 구부러진 작은 올레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게 제주초가였다. 까망초가집도 그렇다. 애초엔 상방(마루)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큰구들과 고팡, 오른쪽은 정지와 족은구들을 뒀으리라. 지금은 내부를 살짝 바꾸고, 2년마다 얹는 새(표준어로는 ‘띠’라고 함) 대신 검은 망이 지붕을 차지한다.

까망초가집은 제주에서 흔한 세칸집이지만 요즘은 만나기 어렵다. 다들 새로운 집을 짓겠다며 없애고, 개발에 사라져서다. 그걸 버틴 까망초가집은 이웃을 향해 열리는 갤러리가 되기도 한다. 지난 1일부터다.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 주관으로 어르신그림책 초청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삶이 잘도 맛나’라는 주제를 단 이번 기획전은 아쉽게도 6일이면 마감한다. 그렇더라도 까망초가집에 들르면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책을 마주할 수 있다. 열의를 지닌 이들이라면 까망초가집에 있는 그림책을 사서 볼 수도 있다.

‘삶이 잘도 맛나’ 기획전은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책에 담긴 그림 50여 점을 펼쳐두었다. 어떤 그림일까?

제주의 어르신, 특히 여성들의 삶은 혹독했다. 가슴에 담아만 두던 응어리를 그림으로 녹여내 책을 만들었다. 그림책엔 응어리만 남긴 건 아니다. 어느 누군가의 삶에 화려한 꽃이 활짝 피던 ‘화양연화’가 있지 않았던가. 그림책엔 ‘화양연화’를 펼치던 환한 즐거움도 가득 담았다. 그런 그림에 담긴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으면 이번 기획전 이름이 ‘삶이 잘도 맛나’이겠는가.

까망초가집 마당도 갤러리다. 미디어제주
까망초가집 마당도 갤러리다. ⓒ미디어제주
어르신 그림은 집안 곳곳에 있다. 미디어제주
어르신 그림은 집안 곳곳에 있다. ⓒ미디어제주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는 밭일도 늘상이다. 열 살에 아버지가 준 골갱이(호미)로 밭을 매던 이야기, 말꼬리로 탕건을 만들던 이야기. 우영팟과 통시가 있던 옛집의 풍경. 지금 세대의 기억엔 없지만, 어르신 기억의 거의 모든 걸 지배하던 이야기가 까망초가집에 펼쳐진다.

작은 갤러리가 된 까망초가집은 온갖 곳이 전지장소다. 마당에도, 텃밭에도, 집안에도 어르신 그림으로 차 있다.

까망초가집이 이런 기획전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실 오래 전이다. 2012년부터였으니 만 10년을 넘겼다. 제주올레길을 걷던 이들도 들어와 인사하고, 그림을 본다.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그림책 전시는 모두 3차례다.

까망초가집엔 그림책을 설명해 줄 안내자도 있다. 따뜻한 구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구들장 도슨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그림책연구회를 만들고,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도 이끌고 있는 이현미씨가 바로 ‘구들장 도슨트’다. 까망초가집에 오는 이들은 반드시 ‘구들장 도슨트’의 이야기를 들은 뒤, 그림책을 감상하길 권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고구마도 먹고, 집주인장이 손수 내려주는 맛난 커피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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