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관덕정 유감
관덕정 유감
  • 하주홍 기자
  • 승인 2023.06.23 1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주홍의 눈 <2>

어느 도시에나 자리한 오래된 곳, 건물·시설 등은 소중한 ‘미래유산’이다.

비록 문화재나 기념물로 지정·등록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래됐다는 그 자체로 역사적 자산으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산들은 단순히 오래되고 낡아서, 편의를 위해, 복원이란 핑계로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나 시설 등을 걷어치워 버리거나 없애면서 새로 짓거나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없애지 않고 고쳐 되살리거나 보전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미미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전주시 등 일부 도시는 오래된 건물이나 시설을 미래유산으로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철거·복원이란 수단을 쓰지 않고 호텔·역사관·문화예술 공간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지역은 어떤가.

지역에서 가장 중심지이었던 제주시 원도심 지역을 훑어보면 짓거나 만든 지 100년 이상을 넘긴 건물이나 시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해당 건물·시설이 수적으로 워낙 적었고, 도시발전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다는 점 등도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보전할 가치가 있던 건물·시설을 보존·수리 등이 아닌 철거 위주로 깡그리 지워버리기 일쑤였다.

과거 수산물검역소 건물이나 고 김중업 건축가 작품인 옛 제주대 용담캠퍼스 헬리콥터 모습 건물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동안 관련 기관은 지역주민이나 단체들이 외치는 보전 목소리는 거의 무시하고 효율성 등을 내세우면서 마구잡이로 없애버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제주 원도심 중심에 자리한 관덕정.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 건물이다

그나마 관덕정(觀德亭)만이 제주 옛 건축물 가운데 나름대로 원형 보존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곳은 세종 30년(1448년) 신숙청 목사가 병사들 활쏘기 훈련 장소로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지난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이곳은 단순한 활터가 아닌 제주인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관덕정 앞 광장은 멀리 탐라국 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제주역사·지역 중심지였다.

예부터 관덕정을 비롯한 조선시대(朝鮮時代) 제주지역 중심지였던 ‘제주목(濟州牧) 관아’ 등 이른바 주민을 다스렸던 주요 관청이 모두 여기에 자리했다.

이곳에선 각종 정치행사를 통해관이 주민을 직접 만나 위엄을 과시했고 조금이나마 소통이 이뤄졌던 광장이었다.

1980년대 제주 행정관청이 모두 연동 등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담아냈던 심장부였다.

관덕정 앞은 광장으로선 그다지 넓다곤 할 수 없지만 굵직한 격동의 제주 역사가 펼쳐졌던 곳이다.

특히 1900년대 들어 이재수의 난과 제주 4.3등 격동의 제주민 삶과 사연이 연관된 제주역사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재수가 천주교도를 직접 처형했던, ‘제주 4.3’의 도화선이 됐던 1947년 ‘3.1사건’이 시작됐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민이 겪었던 격동의 역사적 흔적을 알려주는 어떤 표지나 안내문은 관덕정과 그 주변엔 아예 없다. 하루빨리 만드는 게 당연하다.

관덕정 옆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내내 중·개축이 이뤄졌지만, 일제(日帝)강점기 땐 집중적으로 헐어서 치워버려 관덕정을 빼곤 그 흔적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1993년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사적(史蹟)으로 지정됐고, 1999년 9월에 시작한 복원작업은 2002년 12월에 마쳤다.

제주목 관아 복원은 일제 이후 이곳에 고스란히 자리 잡았던 모든 건물·시설 등은 자연스레 없어졌다.

결국 조선시대 관청을 복원하면서, 그 자리에 100여 년 동안 지녀왔던 각종 흔적은 지워버린 셈이다.

올 들어 제주도가 제주목 관아 옆 제주우체국 건물을 사들여, 옛 탐라성주가 행정업무를 보던 관청인 ‘성주청’을 복원해 제주목 관아 완전 복원에 나설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이 자리는 대한제국 때인 1902년 8월15일 제주우체사가 설치돼 제주에서 본격적인 우정업무을 시작한 제주 우정사(郵政史)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현 건물은 1988년 새로 지어져 34년째 쓰고 있지만 120년 동안 우정업무가 이어져 온 곳이다.

만일 이 같은 제주도계획대로라면 다시 120년 흔적은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다. 깊이 생각하고 결정할 사안이다.

역사 흔적은 어느 선에서 보존, 보전, 복원해야 최선인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를 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 흔적은 되도록 없애기 보다는 작은 공간이나마 남겨두는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특히 흔적을 없애거나 되살리는 작업을 하기 전에 적절한 검토나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없애기는 쉽지만 보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