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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재판부, "국민의 혈세가 '눈먼 돈'인가?"
단호한 재판부, "국민의 혈세가 '눈먼 돈'인가?"
  • 윤철수 기자
  • 승인 2010.08.12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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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재난기금 횡령 공무원, 재판부는 왜 강경했을까?
"공직사회에 '경종'...공무원직 유지 요청 받아들일 수 없어"

2007년 제주에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해 모두가 울부짓고 있을 때, 공직사회 한켠에서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벌어졌다. 막대한 태풍 피해에 긴급히 투입되는 재난관리기금이 제멋대로 집행되고, 돈을 빼돌린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으로 수십명의 공무원들이 줄줄이 기소됐다.

그 중 서귀포시 재난관리과에서 행해졌던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이 12일 이뤄졌다.

법원은 단호했다. 당시 서귀포시 재난안전과리과장(5급) 이모씨(55)와 하천담당이었던 6급 공무원 현모씨(48), 그리고 서귀포시 환경도시건설국장이었던 강모씨(59) 등 3명에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법정구속은 매우 엄중한 선고로 볼 수 있다.

공무원과 건설업자 등 연루된 또다른 8명에 대해서는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정구속된 이들이 받고 있던 혐의는 업무상 횡령과 업무상 배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뇌물수수 등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나?

구체적 혐의를 보면 재난상황 대비 공공용 방한복 32점을 구입하는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민 후, 1296만원을 들여 등산용 재킷을 구매해 재난안전관리과 직원 27명에게 1점씩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지출금액을 부풀린 후 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적용됐다.

2008년 2월12일 태풍 나리 내습에 따른 하천 지장물 제거 인부임 지출이란 명목으로 1642만원을 지출했다. 실제 인부임은 471만원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해 2월28일까지 4차례에 걸쳐 총 4887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자들과 공모해 공사대금을 부풀려 결재한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2007년 12월13일 하천응급복구 임차료 명목으로 2943만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실제 임차비는 1300만원이었다. 부풀려진 임차비는 업자의 계좌로 송금됐다.

이러한 방법으로 8회에 걸쳐 총 8748만원이 지출됐다. 업자 7명은 이득을 본 반면, 공적자금은 허무하게 사라진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뇌물도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모 건설업체 대표가 하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장비 임차비도 실제보다 많이 지급해줘 고맙다는 뜻으로 재난안전관리과장 이씨에게 100만원을 건넸다. 이 업자는 같은 부서 현씨에게는 50만원을 건넸다.

일련의 사안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숱한 공문서들은 허위로 작성됐다.

이들 4명의 공무원들은 이번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의 가담정도가 경미하다며, 모두 서로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며 선처를 호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의 양형 사유는?

그러나 법원은 단호했다.

법원의 판결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자신들의 가담정도가 낮고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이유를 들며 선처를 구하고 있지만, 만일 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각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오히려 그 책임을 물을 자가 없게 되거나 그 누구도 이 사건 결과에 상응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공무원 한 사람의 개인적인 비리에 그친 것이 아니라 특정 부서의 결제선상에 있는 공무원들이 조직적,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점에서 그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법정구속을 하게 된 양형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이 재난관리기금을 소위 '눈먼 돈'으로 인식해 혈세를 낭비한 점에 대해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한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예산은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소중한 재원이므로 그 용도는 엄정하게 사용돼야 하며, 이는 오히려 국민의 공된 자에게 요구되는 당연한 요청"이라며 "그런데 피고인인 공무원들은 이같은 요청을 망각한 채 재난관리기금을 소위 '눈먼 돈'으로 인식하고 집행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방한복을 빙자해 등산복을 구입해 나누어 가지거나, 일부 업체와 마을에 적정 수준 이상의 대가를 지급하는 등으로 특혜를 주어 제주특별자치도에 손해를 끼치고, 그 과정에서 공문서를 적극적으로 허위로 작성, 행사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으면, 그 특혜의 대가로 일부는 뇌물까지 수수한 것은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법정구속을 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서는, "이 사건으로 공직사회 전체에 큰 불신을 야기한 피고인들에게 공직을 유지하게 하거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은 오히려 일반인의 건전한 법 감정에도 반한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직이라도 유지하게 해 달라는 피고인들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재난관리기금 횡령 사건. 그리고 공무원들의 잇따른 연루.

이번 서귀포시 공무원에 대한 1심 재판이 이뤄진 가운데, '눈먼 돈'의 세태를 꼬집은 재판부의 양형 사유는 말 그대로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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