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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사라졌지만, 멍울로 남은 '61년의 기억'
흔적은 사라졌지만, 멍울로 남은 '61년의 기억'
  • 김두영 기자
  • 승인 2009.12.20 10: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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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1) 안동형무소에 드리워진 4.3의 상처

전국적으로 한파가 맹위를 떨친 12월 19일, 4.3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의해 억울하게 안동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4.3 수형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이 고초를 겪었던 유적지를 순례하는 의미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이날 오전 9시 제주국제공항 출발대합실에는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공동대표 김평담, 김용범, 윤춘광, 양동윤, 이하 4.3도민연대)가 제주 4.3 61주년을 맞이해 1박 2일 일정으로 준비한 '2009 전국 4.3 유적지 순례'에 참여하기 위한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4.3도민연대 회원들을 비롯해 이성찬 4.3평화재단 상임이사, 김군선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부회장, 노래패 청춘 등도 참여했다.

4.3당시 수형희생자들이 복역했던 안동형무소 터를 돌아보고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순례는 진행됐다.

1948년 4.3 당시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영문도 모른채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 이름만 불리는 차마 재판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불법 군사재판을 통해 억울한 형을 살아야 했던 4.3 수형희생자들. 순례단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이 모진 고생을 한 옛 안동형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안동형무소

안동형무소는 당시 수감됐다 살아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으로 4.3과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4.3도민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형인 명부에는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던 132명의 4.3 수형인 중 72명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것만 나와있으나 수형자들의 진술해 의해 수형인들의 일부가 안동형무소로 이감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안동형무소에 수감됐던 4.3 수형인들은 모두 여자였으며 3년 이하의 형량이 가벼운 수형인들이 주로 수감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까지는 안동형무소에서 수형자에 대한 학살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4.3도민연대 측은 보다 정확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날 강한 추위와 함께 많은 눈이 휘날리던 제주공항을 출발해 충청북도 소재 청주공항에 도착한 4.3 순례단은 제주와는 달리 햇빛이 비치는 맑은날씨 속에서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옛 안동형무소 터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4시간에 걸쳐 이동한 끝에 도착한 옛 안동형무소터는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주거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4.3당시 안동형무소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곳에는 수많은 집들과 상점들이 들어서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었고 당시 안동형무소의 정문이 위치했던 자리에는 5층높이의 건물 한채가 자리잡고 있었다.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옛날 안동형무소의 모습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자리에는 당시 4.3희생자들의 모진 고생을 지켜보던 영남산만이 그 자리를 아무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옛 안동형무소 터에 도착한 4.3 유적지 순례단은 제주에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꺼내 상을 차리고 4.3당시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하며 모진 고초를 겪은 4.3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제를 가졌다.

#. "너무 오래됐어...너무 변했어..."

이날 진혼제에는 4.3당시 안동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송순희 할머니(85)가 순례단과 함께 했다.

현재 인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있는 송 할머니는 이날 4.3순례단이 옛 안동형무소 터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당시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까 하는 기대감에서 가족들과 함께 옛 안동형무소를 찾아온 것이다.

이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옛 안동형무소 터 앞에선 송 할머니는 "너무 변해서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당시의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9살에 2살위의 남편과 결혼해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서 시댁식구들과 함께 살던 송 할머니는 25살이 되던 해 4.3사건이 터지면서 평생을 안고가야할 고통을 겪었다.

4.3당시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거주하는 친정식구들과 함께 있던 송 할머니는 4.3사건으로 인해 주민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망가던 중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잡혀 모진 폭행을 당했다.

당시 송 할머니는 임신을 한 상태로 어린 딸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는데 경찰이 휘두른 몽둥이에 등을 맞으면서 등에 업고있던 딸아이까지 함께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죽는다는 소리에 친정식구들과 인근에 있던 냇가의 동굴에 숨어 꼬박 하루를 보냈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주변에서 계속 총쏘는 소리가 들려 다들 겁에 질려 있는데 어느새 경찰들이 우리를 찾아낸거야. 경찰들이 우리보고 나오라고 해서 동굴 밖으로 나가니까 그때부터 총칼로 마구 때리는데 내가 등에 업고있던 우리아이도 그때 같이 맞았어."

당시 경찰에 잡혀간 송 할머니는 실종된 남편을 숨겼다는 누명을 쓰고 남편이 있는 곳을 말하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렇게 서귀포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던 송 할머니는 제주경찰서로 이송돼 제주시에 있던 법원의 강당에서 군사재판을 받고 1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을 받을 때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냥 '김 누구누구'하고 이름 부르고 몇년 하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됐어. 무슨 죄인지 말도 안해주고 그냥 부르는거야 거기서 그냥 '예'하고 대답하면 처벌을 받는 거였지."

그렇게 송 할머니는 1948년 12월, 1년형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를 겨쳐 이듬해 3월 안동형무소로 옮겨져 1년간의 수감생활을 거쳤다.

#. "수감생활하며 두딸을 가슴에 묻어..."

모진 고문과 억울한 재판으로 1년간의 수감생활을 하게된 송 할머니, 그러나 송 할머니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송 할머니가 전주형무소로 이송된지 한달도 되지않아 딸아이가 결국 형무소에서 그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서귀포에서 송 할머니가 경찰에 폭행당할때 함께 폭행당한 딸이 그 상처로 인해 다리가 썩어들어가면서 결국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딸아이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그해 3월 안동형무소로 이송된 후 그 곳에서 둘째 딸아이를 출산했다. 모진 고난 속에서 젖먹이 딸아이와 함께 수감생활을 견딘 송 할머니는 1949년 12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 제주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주도로 돌아온 송 할머니는 당시 제주시 화북에 거주하던 고모의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고모들이 제사를 보기 위해 외출하면서 딸아이와 함께 집에 남아있던 송 할머니는 피곤에 지쳐 깜빡 잠이들었다 깨었을 때 자신의 품에서 싸늘하게 식어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자신과 함께 모진 고난을 겪다가 결국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등진 아이를 보면서 송할머니는 말로 할 수 없는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그때 내 품에서 죽은 아이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래서 눈이 펑펑오는 집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걷던 중 당시 길가에 많은 아이들이 묻혀있는 장소를 보고 내손으로 내 아이를 파묻었지. 당시 심정이 어떠하겠느냐...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오지, 당시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꽉 막혀있는 것 같아."

송 할머니는 당시 인천에 거주하던 남편과 재혼하면서 지금은 3명의 딸을 두고 있지만 지금도 그때 잃은 딸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온다고 한다.

매서운 추위와 강한 바람 속에서 진혼제를 진행한 4.3 순례단은 송 할머니의 헌화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마지막으로 이날 진혼제와 함께 4.3순례의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4.3순례단은 순례 이틀째인 20일에는 한국전쟁 당시 수백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노근리 현장과 청주형무소 터를 돌아봤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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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동생 2009-12-21 01:01:54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있다
새의 삶은 그런 것
훗날 미디어제주를 그릴 날이 오길 바라며
또 다시 날아오른다
곧 살아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