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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어둔 문학의 큰 대문 두드렸는데"
"가슴에 묻어둔 문학의 큰 대문 두드렸는데"
  • 원성심 기자
  • 승인 2009.07.17 11: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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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씨 격월간 '수필시대' 신인상 당선

"오랫동안 제 가슴에 묻어두었던 꿈을 꺼내어 펼쳐보려고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문학'이라는 큰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꿈많던 소녀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전덕순(45)씨. 어른이 되고, 주부가 되고 그리고 지금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잠깐 여유가 생길때면 여지없이 글을 끄적이곤 했다.

어느날 그와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가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함께 글쓰기를 권유해 오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했다.

그후 아무리 바빠도 셋째주 토요일만 되면 세탁소 일도 다 내팽개치고 '수필공부'를 한다는 그는 이런 노력때문일까? 격월간지인 '수필시대' 7~8월호(통권27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히 수필가로 등단했다.

당선작인 '주머니 속의 로또번호'는 일상의 모습속에 삶의 진실이 담겨있는 수필문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을 통해 "구성단계에서 전환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기법이 아무나 쓸 수 있는 평범함을 벗어나고 있다"며 "작가 정신이 잘 드러나며 삶의 진실이 담겨있다"고 평했다.

세탁소 운영을 5년째 하고 있는 전씨는 아침 저녁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단다. 하지만 "글을 쓸때만큼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자신만의 글을 모아 한권의 수필집을 펴내는 것이 꿈이라고 소원했다.

#다음은 전덕순 씨 신인상 당선작  원문

주머니 속의 로또번호
검정색 돼지가 내 눈에서 자꾸만 아른거린다. 어제 꿈에서 돼지 두 마리를 본 것이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에 로또 복권을 사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편의점은 로또복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검정색 사인펜으로 로또복권 용지에 숫자를 표시하고, 오천 원 권 두 장을 주인에게 내밀자,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요?” 하고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일주일에 천 원 한 장만 사던 나였다. 인사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른 척해주기를 내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로또복권을 사서 주머니 속에 넣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추첨 일까지는 아직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기분은 벌써 당첨된 것처럼 입가에 웃음꽂이 만발하니 웬 일일까.

아침부터 가게일이 분주하다. 맡긴 지 몇 개월이 지난 옷을 찾아가는 손님, 밀려있던 외상값도 지불해서 가는 손님, 세탁을 해달라고 가져오는 옷가지며, 오늘 따라 분주하다. 비워 있던 금고에 돈이 모인다. 돼지꿈을 꿔서일까?

돼지 꿈 꾸면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금전이 들어온다는 옛 속담 이야기를 어른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돼지가 꿈에 나타나면 뜻밖에 횡재하는 것으로 전해 내려왔다. 실제로 복권 1등 당첨자들의 꿈을 분석한 결과 돼지꿈을 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당첨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몇 년 전 일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배달 간 남편이 도착할 시간이 넘었는데도 늦겠다는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한참을 지났을까.

오토바이사고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병원으로 향하던 중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을 뿐인데 병원에 도착해 보니, 친정 부모님과 언니 형부까지 총출동해 있지 않은가.

생각보다 큰 사고는 아니어서 모두들 안도했고 곧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 순간 내 얼굴을 스치고 간 부모님 얼굴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이 토요일 저녁이라 때마침 로또추첨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는 게 아닌가. 왜냐고 물었더니 로또 복권을 사려고 호주머니에 메모해 둔 6개의 번호가 텔레비전 화면 속에 그 번호들과 나란히 나열돼 있다는 것이었다.

흥분한 식구들은 ‘미리 사놓지.’ 그랬느냐고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의외로 침착한 남편의 한 마디가 오히려 들떠 있는 우리를 몹시 겸연쩍게 했다.

“내가 로또를 산 것은 1등 하려고 산 게 아니야. 정신적 즐거움으로 사려고 했었던 거야.”
순간, 내 자신이 미안했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애들에게도 한마디 해 주었다.

“네 아빠는 돈으로 환할 수 없는 몸이잖니.”
모두들 아쉬움을 숨긴 저녁이었지만, 돈보다는 우리 식구들이 아프지 않고 서로 다독여 주면서 행복하게 살자며 웃음 속에 저녁시간을 보냈던 일이 떠올랐다.

잠시 후면 로또추첨 발표 시간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산 복권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남편과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남편에게 복권이 당첨되면 무엇에 쓸까 물었다. 제일 먼저 독거노인복지시설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편안한 잠자리와 휴식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남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잔잔히 파문을 일으켰다.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주위를 살펴보니 폐휴지 모으는 노인들이 많아서라는 답변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왠지 부끄러워졌다.

로또복권이 당첨되면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이며, 나 자신을 위해 쓸 생각만 하지 않았던가. 가슴이 쿵쾅거리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래, 흔히 쓰는 ‘인생역전’이란 말도 있지 아니한가. 나에게도 혹 대박이라는 행운이 올지 누가 알랴.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공이 나오는 대로 번호를 맞춰 봤다. 역시 꽝이다.

꿈에 본 돼지 두 마리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오늘 따라 분주했던 가게에 금전이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에 행운이란 사람에게는 두 가지 행운은 주지 않는 것 같다.

아쉽지만 내가 복권을 구입하면서 가졌던 기대와 설렘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앞으로는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한 번쯤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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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2009-07-18 16:50:19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짝. 짝. 짝..
오늘 처음으로 문학도로서의 한 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