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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와 학기 중 학교공사
조삼모사와 학기 중 학교공사
  • 송창권
  • 승인 2009.04.17 10: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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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송창권 제주자치분권연구소 소장

키우고 있는 원숭이들에게 도토리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준다”니깐 화를 내기에, 그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준다”기에 좋아하는 ‘원숭이의 어리석음과 남을 속여 농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빗대서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에게, 지금은 아내에게 자주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하루 퍼질나게 잔다고 내일 안 잘 수도 없는 거고, 오늘 잔뜩 먹는다고 내일 안 먹을 것도 아니니, 조절 잘 하고 자제 좀 하라는 잔소리(?)입니다.

요즘 중앙정부는 현 국내경기 침체를 두고 세계경제 위기 탓하며 둘러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짜낸 정부 경제 대책 중 하나가 ‘정부예산의 조기 집행’입니다. 정부 발주의 개발공사나 여러 사업들을 상반기에 몰아치고 있는 것이 경기회복의 능사인 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후반기에는 어떻게 할런지......

우리가 월급을 받으면 한 달 내에 어떻게 안분해서 쓸 것인지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면서 가계를 꾸려 갑니다. 이렇게 예산을 안분해야 하는 이유는 하루에 밥을 잔뜩 먹는다고 해서 내일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입니다. 정부예산도 월급처럼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어도 심사숙고하여 미루기도하고 당기기도하고 그러는 것이겠지요.

일 년 안분된 예산을 강제적으로라도 조기집행을 통하여 경기를 살려보려고 애쓰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담당공무원을 몰아붙이고, 조기집행 부서에 인센티브를 주고 집행이 저조한 부서는 문책이 뒤따르니, 한꺼번에 쳐 먹어대서 소화불량도 있고, 퍼질나게 잔 것 때문에 몸이 더 찌뿌듯하게 되는 것은 짐작이 되어 그래도 이해할만 합니다.

뜨거운 여름날에 ‘복지 포인트’로 선글라스를 장만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복지 포인트’ 조기 사용이라는 엄명 때문에, 좀 더 그리운 햇살인데도 그 부드러운 햇살을 천덕꾸러기로 몰아가는 것은 그래도 참을만 합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연말 세계잉여금이 발생하여 국고로 귀속될 걸 염려하여 혹은 내년 예산 확보에 설득력이 떨어질까 봐서 한꺼번에 도로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지 않는 대신,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공사하여 거추장스럽게 해도 시기만 다르니 그러려니 해 줄만 합니다.

그러나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학기 중 공사 입니다. 한창 신나게 학교생활을 해야 할 학기 초인데, 공사의 소음으로 아이들 공부에 지장을 주고 안전 위험이 있고 심지어 두통을 호소하기까지 합니다.

“공사 중지나 연기를 해 달라”는 학부모와 “소음 때문에 가르치지 못하겠다”는 교사의 항의에 시공업자도 하소연을 합니다. “20년 이상을 학교 시공을 맡아보았지만, 올해처럼 ‘학기 중에 발주를 하여 7월 이전에 준공을 하라’는 엄포성 계약 조건을 달아 놓는 것은 저희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심지어 학교운영위원회조차 무슨 영문의 공사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시공업자가 무슨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수업 중에 드릴로 벽을 뚫어대고 포크레인으로 운동장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교육감이 강행하라고 하여 그러는 건지, 도지사가 그리 안하면 예산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기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아마도 짐작 가는 것처럼, 경기회복을 빌미로 아예 드러내 놓고 하는 이명박 정권의 엄포에 담당자들이 주눅이 들었는지. 여하튼 참 걱정스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기 중 공사로 인해, 소음과 주위 산만으로 정해진 시간에 배워야 할 학과를 소홀히 하게 되어 학습권이 침해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르쳐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데 교권이 뭉개지고 있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혹시나 안전사고가 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모두 좋을 텐데, 그걸 갖고 난리인 양 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에게 잔뜩 실력 향상을 외치며 경쟁 제일주의로 몰아가면서 왜 모순되게 공부를 제대로 못하게 하는 것인지요?

전국이 다 똑같은 조기집행과 그로인한 부작용의 현상이라고 하지만, 교육 관련한 부분만큼은 좀 더 디테일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설혹 학기 중 학교 공사가 불가피하더라도 소음이 크게 날 수밖에 없는 것은 공기를 늘려 주어 방과 후에 공사가 진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도저히 소음방지가 불가능한 공사라면 과감히 방학 중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도의회에서는 도정질의를 하고 있습니다. 도의회에서도 도내 학교 관련 공사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여 개선을 하도록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진퇴양난에 있는 단위 학교 관계자들인 교장, 교사, 행정실장, 학부모, 시공업자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고충을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해야 할 일 많은 이들입니다.

그래도 원숭이는 조삼모사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먹는 자율적 판단을 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나름의 효용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숭이에게도 그랬는데, 하물며 우리들에게랴. <미디어제주>

<송창권 제주자치분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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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란 2009-04-18 21:41:51
그러면 학교공사를 수업중에도 계속 진행하라고 누가 업체에게 지시했나요?

고영진 2009-04-17 23:19:06
학교에서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 것은 학습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공부하라고 보냈지, 소음과 먼지 속에서 지내라고 보낸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이래서 아이들의 공부를 사교육에 맡기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학원에서는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공사를 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을 것이니까요. 선생님들도 학원 수업에 아이들의 학력증진을 의지하시고 계신가요?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