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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문장이 왜 이리 길어요?" 투덜^투덜^
"영어문장이 왜 이리 길어요?" 투덜^투덜^
  • 현시홍
  • 승인 2009.04.16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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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빛과 소금 지역아동센터' 영어수업의 일상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빛과 소금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수업을 시작한 지 벌써 넉달이 되어 가고 있다.

아는 선배의 소개로 애들 수업을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달 중순을 향해 시간은 멈추지 않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시계바늘을 움직인다.

아이들 수업 준비하고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 하루가 정말로 24시간이 맞는가 하는 의심을 자주 하면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날 줄이야” 하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평소에 중학생들을 과외 하던 방식으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때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기존에 고수하던 티칭 스타일을 바꾸고 다양한 수업방식을 고안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 스트레스가 점점 쌓였다. 중학생들을 상대로 과외경험이 많았지만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했고 아이들과 상대하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다행히도 복지센터 원장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양한 방식들을 시도함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가 있었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색한 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감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이유로 복지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밝고 활기찼다. 장난도 잘치고 서슴없이 대하고 거침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어느새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으로 상처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문득 나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낯가림이 심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서 말 한마디도 못했던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니 나도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비록 일주일에 2번 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왠지 모를 기대감과 알 수 없는 설렘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맴돈다.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토크쇼로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나 마이크로소프트 창시자 빌 게이츠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데 힘을 보탤 수 있는 작은 촛불들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가끔 수업하다가 아이들이 내 말을 잘 안듣고 수업 안하겠다고 반항(?)할 때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숨겨둔 성격을 드러내고 언청을 높이기도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열심히 영어문장을 배우고 바로 즉석으로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한다.

어제(14일)는 반팔 입어도 더웠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아침부터 흐리더니 오전 11시 넘어서부터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오늘은 아픈 애들이 좀 있어서 몇 명이 수업에 빠졌다. 저번 수업에도 적었는데 오늘도 적으니 조용하다. 조용하니 어색하다.

한두달 전만 해도 8~9명의 애들이 왁자지껄 하면서 조용히 시키고 수업하느라 정신 없었는데 해연이와 채운은 육지로 이사 가고 동호와 대경이는 아파서 안왔다.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웠지만 내 수업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한 슈퍼 개구쟁이 경욱이는 함덕으로 전학간지 오래다

게다가 날씨까지 좋지 않으니 분위기가 썰렁하고 조용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수업은 원장님께 미리 제출한 1년 계획서대로 나아가야지 뭐. 얼마 만에 조용히 수업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아예 없는 것 같다. 센터 내에서 한 가닥(?) 하는 아이들이 빠지지 않고 몰려왔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적어야 할 영어 문장이 너무 긴다고 투덜댄다.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면 이것보다 어려운 거 배울텐데 지금 연습해 두라고 한소리한다.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수업 때 아니면 가까이 할 일이 없으니 쓰기를 많이 시킨다. 얘들아. 지금 당장은 너희들한테 별로 도움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나한테 감사할 날이 올거다.

“낫 에브리 싱글 데이 노~(Not every single day no~) 뷰리 컴스 마이 웨이 소~(Beauty comes my way~ so~) 두 유 빌리빈~ 러배 펄 사이~(Do you believe in ~ love at first sight~”) 컴퓨터를 키고 Blue가 부른 ‘Love at first sight’를 틀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노래인데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 꼭 소개시켜주고 싶어서 수업시간 때 시켜본다. 가사 번역본과 함께 힘들게 한글로 발음 하나하나 타이핑한 파일을 보여주면서 아이들과 같이 외웠다. 그런데 이게 왠일? 지영이가 열심히 한다. 평소에 잘 까부는 아이인데 발음 보면서 따라 부른다.

왠지 내 수업을 잘 안들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열심히 하니 뿌듯하다. 올해 중학생이 되니 철이 좀 들어나 보다. 최근 윤지도 매우 열심히 한다. 센터 내에서 영어 실력이 상위권이다. 월말평가를 치르면 최소 3등이었고 이번 달은 1등을 했다. 기본기가 있고 시키면 투정을 부려도 할 거 다 한다.

책읽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공부를 잘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가끔 모범생답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지만(말로 굳이 표현하기 힘들지만) 밝고 리더쉽이 있어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된다. 벌써 밤 8시 30분이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윤지와 지영은 계속 가사 보면서 팝송을 읊조리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간식 먹으러 나갔는데도 둘이는 최후에 자리를 지켜 다른 선생님이 와서 그만하라고 해서야 멈췄다. 둘이 열심히 하는 것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열의 포스가 어느 때보다 넘치는 것 같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윤지, 지영아 매번 수업 때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 수업 때마 보여주면 안될까??

수업이 끝나도 밖은 비가 멈출 줄 모른다. 낮보다 더 많이 내린다. 우산을 챙기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칠판을 지우고 마무리 정리를 한다.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에 모여 간식을 먹는다. 우산을 쓰고 밖에 나갔는데 허리 밑으로 왠 불청객들이(?) 달라붙는다.

머리에 비 맞으면 집에 가서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수빈과 우리만 우산 쓸 거라고 자리를 지키는 수연이. 쉬는 시간 때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악동(?)들이다. 여자 답지 않는 씩씩함과 기개를 보이는 아이들을 볼 때 살짝 겁이(?) 나기도 하다. 나중에 잘 대해줘서 이쁨을 많이 받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벌써 하루가 다갔다. 빨리 씻고 다시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단단히 준비를 해볼까나. 

<현시홍 /  '빛과 소금 지역아동센터' 영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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