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7:02 (일)
'독수독과(毒樹毒果)' 평가보고서, "이를 어쩌나~"
'독수독과(毒樹毒果)' 평가보고서, "이를 어쩌나~"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8.11.06 1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논단] 환경평가 비리 사후조치 '딜레마'

제주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환경영향평가 관련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결국 2명에 대해 구속기소, 나머지 14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 등 16명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무수한 설이 나돌았던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검찰이 일단 사정의 칼을 들이댄 것이다.

16명의 사법처리가 된 것만을 놓고는 파헤칠 것은 다 파헤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산의 일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비등한 실정이다. 그만큼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도민사회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았다. 설마하니, 덕망있는 학계인사 등으로 구성된 환경영향평가심의 위원들이 그럴리 있겠느냐 하며 한 도의원의 의혹제기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사람이 오랫동안 심의위원으로 있으면서 '로비' 혹은 '청탁' 한번 안받고 청렴결백할 수 있겠느냐 하며 강한 심증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후자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 검찰수사 결과는 제주사회에 뿌리깊은 '나쁜 관례'가 상존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비록 16명, 이들은 혹 '재수없어 걸렸다'고 할지 모르지만, 가장 공정해야 할 환경관련 업무를 '돈거래'에 의해 행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지적한대로, 현재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러한 '로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소지는 크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우려하는 바이다.

검찰에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크게 3가지, 즉 환경영향평가제도와 관련한 문제, 사후관리조사단 운영과 관련한 문제, 그리고 문화재청 협의와 관련한 동굴조사 문제를 지적했다. 검찰이 단순히 범법자를 가려내어 사법처리하는 것 이상으로, 제도적 혹은 시스템적인 문제로 인해 범죄발생 우려를 높게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상당히 높게 평가된다.

#문제 1> 소수 위원을 장기간 재위촉하면서 '로비대상'으로 노출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환경영향평가위원회 운영과 관련해서는, 제주도는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15명 내외의 전문가로 구성된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를 통해 심의하고 도의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등 엄격한 절차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과 사업자들과의 유착관계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사업자들은 심의위원이 환경영향평가서 검토과정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개발사업의 장기간 지연 및 대출이자 등 금융비용이 급증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하므로, 심의위원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로비를 시도할 개연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전문인력 부족을 이유로 수년간 반복해 위촉함으로써, 결국 소수의 심의위원에게 권한이 집중되었고, 이는 사업자들의 로비대상이 된 것이다.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사업자들로부터 용역을 받은 심의위원이 조례에 따라 심의에서 제척되거나 회피하면 환경영향평가서의 해당항목을 제대로 심의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점도 이번 사건을 통해 발견됐다.

이에따라 제주지검은 심의위원 풀(Pool)제 운영, 도외 환경전문가 영입 확대 등 충실한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위한 제도개선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문제 2> 사후영향조사 보고서 허위작성 검증 한계

두번째, 환경영향평가 사후관리와 관련해서도 문제점은 많았다.

제주도는 환경전문가, 환경단체, 주민 공모 등을 통해 구성된 환경영향평가 사후관리조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조사단은 환경영향평가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 2회 사후관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제주도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이행 여부 확인을 위해 사업자들로 하여금 매년 1회 사후환경영향조사 보고서를 작성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보고서 내용을 검증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사후환경영향조사 보고서의 허위작성 사실을 적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 부분에 있어 검찰은 "사후환경영향조사 대행 전문업체가 사업자들로부터 용역비를 받고 조사업무를 수행하는 현 시스템 하에서는 부실한 조사를 방지하기 어려우며, 전문성이 부족한 사후감시단원들이 보고서의 허위여부를 적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따라서 객관적이고 신뢰 가능한 기관에 사후환경영향조사와 분석을 의룋는 등의 방안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 3> 문화재 위원 심의하지 않더라도 방지할 제도적 장치 미흡

세번째, 문화재청 협의와 관련한 동굴조사도 허점 투성이다. 사업자들은 개발사업지 내에서 천연동굴이 발견될 경우 사업기간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사업시행승인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바로 이점을 우려해 문화재청 심의에서 천연 용암동굴 분야를 담당하던 손모씨에게 접근해 금품로비를 벌인 것이라는게 검찰측의 설명이다.

국내에 용암동굴 전문가가 거의 없어 사업자와 유착된 문화재 위원이 제대로 심의하지 않더라도 이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아니한 문제도 확인했다. 사업자들이 문화재청 보완명령을 무시하고 대규모 굴착공사시 동굴전문가를 참여케 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함으로써 천연동굴이 멸실, 훼손되는 사례도 우려된다.

이 때문에 검찰은 문화재청의 보완명령시 시민단체, 관계전문가 등이 참여토록 함으로써 유사 비리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독수독과(毒樹毒果)'의 보고서들, 어떻게 할 것인가

이같이 이번 검찰의 수사로 인해 그동안 공직사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던 제주특별자치도 당국은 할말을 잃게 됐다. 비록 범죄는 민간 심의위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하나, 검찰이 지적한 것처럼 허점 투성이의 시스템을 운영해온 제주도당국의 책임은 어떠한 변명으로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후 조치다. 그러나 제도적인 결함이나 허점은 점차 보완해 가면 될 것이다. 당장이라도 관련 조례 등을 개정해 더 이상 심의위원들이 로비대상이 될 수 없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보다 큰 문제가 있다. '돈'을 받고 적당히 써준 수많은 보고서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미흡한 제도야 지금이라도 고치면 그만이겠지만, 청탁을 받고 써준 환경영향평가 관련 보고서, 특히 도의회 동의까지 받은 평가자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물론 제도적 절차를 모두 거쳤기에 되돌릴 수 없다는게 제주도당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독이 있는 나무에는 그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의미를 생각할 때, 앞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의 환경정책에 대해 도민들이 얼마만큼 신뢰하고 따를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잇따른 고층빌딩 허용계획 등으로 논란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환경관련 결과물의 신뢰성마저 곤두박질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윤철수 대표기자>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