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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출동 소방관에, '장바구니' 강요하더니...
현장출동 소방관에, '장바구니' 강요하더니...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8.08.22 14: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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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소방간부 비리의혹, 그리고 잘못된 조직문화

올해 제주특별자치도가 화두를 '신경제혁명'으로 삼자, 각 부서별로 충성경쟁을 하듯 갖가지 시책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소방방재본부의 '신경제혁명' 계획이었다.

지난해 태풍 '나리'로 인한 방재시스템 구축, 그리고 잇따른 대형 가스폭발사고 등으로 그 어느 부서보다도 재난관리 대응시스템 구축에 열정을 기해야 하고, 도민의 안전을 위해 항시 비상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소방방재본부에서 '신경제혁명'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소방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재래시장 상품권 구매 마일리제를 운영하면서 개인별로 목표액을 제시해 운영하는 것을 첫째로 제시했다. 또 재래시장의 각 점포와 소방공무원이 결연을 추진하고, 제주특산품 업체와의 협약도 추진키로 했다. 매주 수요일은 '소방안전 점검의 날'이 아니라 경제살리기를 위한 '재래시장 이용의 날'로 지정해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뿐만이 아니다. 개인별 관광객 유치목표제를 추진하겠다며 소방공무원 한명당 10명이상의 개별관광객을 유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래시장 경제바구니를 제작해 보급하는 운동도 전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무리 지역경제가 어려워 신경제혁명을 한다고는 하나, 본연의 역할이 분명한 소방공무원들에게 이러한 과제를 제시해 추진토록 하겠다는 것은 '과잉충성' 내지는 본분을 망각한 '오버'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방방재본부의 주업무가 무엇이 '주(主)'이고 무엇이 '부(附)'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편승하는 가지수 늘리기식 시책을 쏟아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소방공무원들은 소방방재본부에서 마련한 이 부서시책에 얼마나 수긍할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 손에 소화기가 아니라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도록 하는 것은 소방공무원들의 자발적인 착안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이 부서 간부들이 김태환 제주지사의 환심을 사기 위한 분위기 편승차원의 시책발표라는 인상이 그것이다.

사실 소방방재본부장이 도지사 임명체계로 바뀐 후부터, 소방공무원의 위상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전에 없이 도지사에 눈치보고, 툭하면 감귤원 열매솎기나 간벌작업에 동원되고, 그러면서 가스폭발사고와 같은 대형사고가 한번 터지면 허둥지둥대고 하는 식의 일상이 반복이었다. 지난해 태풍 '나리'에서는 제주의 재난시스템의 허술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국제안전도시로 인정된 제주의 위상에 걸맞게 소방방재본부의 역할을 다시 각인하고, 체계적인 대응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할 때인데,  실제 소방공무원들의 조직분위기는 그렇지 못한 듯 하다.

최근 제주소방방재본부 고위간부들의 비리의혹을 제기한 소방발전협의회 송인웅 운영위원장이 제주도소방방재본부 홈페이지에 올린 비리내용은 조직내부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다.

"제주지역 소방은 고위간부들의 사용화, 고위간부들의 왕국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비번 중인 소방공무원을 동원 감귤 간벌작업, 열매솎기, 비상품감귤 단속, 감귤판촉활동 실적을 제출하게 하는 등 열거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소방업무 외의 업무를 당연한 듯이 하는 것은 권한남용의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홈페이지 게재 글 中)

더욱 문제인 것은, 소방방재본부가 이러한 '비리의혹' 파문에 대해 반성하거나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일련의 상황을 '경미한 사안'으로 덮어두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데 있다.

소방방재청이 접수한 일부 간부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 제주도 소방본부는 주의 등의 조치를 내렸다고 보고했다. 소방본부 자체조사 결과 이미 감사위원회가 주의 조치를 내렸거나 업무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잘못이라는게 그 이유였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위원회가 특별감찰을 실시하고 있는 사안인데, 감사위원회의 조사와는 무관하게 소방본부의 자체조사로 '경미한 사안'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소방본부가 접수한 민원 내용과 관련 서류 일체를 넘겨받아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감사위원회의 특별감찰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방당국이 이 문제를 성급히 마무리하려는 것은 감사위원회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에 다름없다.

소방당국은 더 이상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재난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방공무원들의 사기를 꺽지 말아야 한다. 소방방재본부의 '특유의 권위주의적 문화'와 '인기 영합주의'가 이번 소방 간부공무원의 비리의혹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이번 참에 그 근원을 찾아내어 잘못된 조직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

더 이상 소화기를 들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가야 할 소방공무원들에게 '장바구니'를 들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 소방공무원들에게 비번 중에 호출해 사적인 용무를 시키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신경제혁명에서 소방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은 관광객 유치나 장바니구 들기가 아니라, 본연의 재난대응업무를 완벽히 해내는 일이다.

개인적 욕심에 사로잡히고, '눈치 보기'를 하는 몇몇 소방 간부공무원들이 전체 소방공무원들의 사기를 꺽어놓은 것은 아닌지, 간부공무원들의 냉철한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윤철수 대표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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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2008-09-04 09:53:59
행정공무원들이 소방공무원을 자기들 딱가리(?)로 보는 시선이 바뀌지 않은 한 힘이 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