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우리 아이는 최고의 스승"
“편견 가득한 사회 안타까울 뿐...”
"우리 아이는 최고의 스승"
“편견 가득한 사회 안타까울 뿐...”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8.04.22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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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특집]<3>장애아동주말학교 풍물반 현애란씨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제주영지학교에는 풍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풍물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체육관에서 장애아동과 함께 풍물놀이를 하고 있는 현애란(43)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풍물수업에 한창이었다. 장구, 북, 징, 꽹과리를 들고 치는 아이들. 아이들의 모습은 즐거워보였다. 아이들 중에는 곧잘 따라하는 녀석도 있었고 아예 수업에 관심 없는 녀석도 있었다. 또, 자기 맘대로 장단을 만들어 치는 녀석도 있는 참 특이한 ‘풍물반’이었다. 

"이번엔 너영나영 노래에 맞춰 해볼까요? 너영 나영 두리둥실 놀구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상사랑이로구나..."

모두 함께 '너영나영'민요를 부르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 돌발행동을 하자 수업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었고 아이의 눈을 보며 ‘그러면 안돼지. 잘못된 행동이야’라며 엄하게 야단을 친다.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다 싶더니, 또 다시 말썽을 부렸다. 그는 다시 아이를 꼭 껴안아 주며 이렇게 말했다. "많이 울고 싶었구나...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니..." 그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위로를 했고 그의 모습을 보며 ‘엄마’가 떠올랐다. 그는 아이를 다루는 능력이 대단했다. 아이의 눈빛만 보고도 그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 정말 놀랄만한 능력이 아닐까.

아이를 진정시키고, 마지막으로 다함께 연주하며 풍물놀이시간을 마무리했다. 교실로 이동한 아이들은 둥글게 모여 손을 잡고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술래잡기를 하느라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토요일 2시간의 짧은 수업을 마쳤다. 그때서야 현애란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조금 까무잡잡한 얼굴색을 갖고 있었고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지난 18일 제주종합경기장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제 28회 장애인의 날'기념식에서 장애자녀를 둔 부모로 장애자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2007년 장애아동주말학교 풍물반 강사'로 자원봉사한 공로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상 표창을 받았다.

그는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해서 그런지 약간은 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목이 아프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풍물소리보다 목소리가 켜야 아이들이 들을 수 있어요. 수업이 끝나면 항상 목이 쉬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지요..."

#풍물반 수업이 생활에 '1순위'...토요일 마다 풍물로 아이들과 호흡...

그에게 풍물반 자원봉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연극인이다. 현재 놀이패 민요패 소리왓이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지적장애를 안고 있는 아들이 있어 자연스럽게 장애아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제주도장애인부모회에 가입을 했고 활동을 하던 중, 일반학교에서 하는 특기적성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됐다. 일반학교에서 하는 특기적성은 장애아동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장애아동을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장애인부모회에서는 미술, 음악 등 장애아동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또, 그는 예술활동을 하다보니 어린이집 강사경험이 있어 자연스럽게 풍물반을 맡게 됐다.

"처음 우려했던 것 보다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고 강한 집중력을 보여줘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미술에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있는 반면에 음악에 감각이 있는 아이가 있어요. 아이들의 놀라운 집중력을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은 체험학습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의 유대감과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풍물, 전래놀이 등을 체험학습으로 정했다. 일반아이들처럼 완벽하게 소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아이들과의 호흡 속에서 같이 이뤄나가는 것이 바로 풍물수업의 핵심포인트라고 했다.

"사람은 직접 체험을 해야 비로소 느낄 수 있죠. 표현을 안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아이들도 보고 듣고 느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하는 동안은 우리아이들이 서로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토요일은 그에게 힘든 하루이다. 주말에 공연이 많기 때문이다. 공연과 풍물반강의가 같은 시간에 있을 경우에 그는 고민에 빠진다. "풍물반 수업이 제 생활에 1순위가 되어버렸죠. 공연이 있을 경우에도 일단 아이들과 강습을 하고 공연연습을 해요.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요. 내 마음을 이해해줘서 지금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아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자 '최고의 스승'

풍물반 수업에서 그의 아들 창용이를 볼 수 있었다. 그와 닮은 창용이는 기자가 싫지 않은가 보다. 씨익 웃고 지나가는 창용이는 귀엽고 순수한 미소를 갖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태어나고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힘든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 때문에 좋아하던 연극도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국악리듬에 감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연극을 그만두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만 이런 상황에 놓인 것 같고 힘든 줄 알았는데...아이가 국악리듬에 반응이 뛰어난 걸 알고 예술활동과 풍물강의를 포기할 수가 없었죠."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옆에 있던 창용이는 박수를 치면서 환한 미소를 보이며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아이들의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사고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창용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자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을 남기며 그와 마무리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아이의 세계를 몰랐다면 인생의 단면만 보고 살지 않았을까요? 창용이는 최고의 스승이에요. 창용이를 통해 누구도 볼 수 없는 세계를 볼 수 있어 늘 고맙고 매일 스스로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많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노는 걸 좋아하는 그 모습이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문득, 지금까지 그들을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동정과 연민으로서만 바라본 건 아닌지...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편견이 온통 휩싸인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아이들의 마음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기자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기자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사람들은 연민을 갖고 아이들을 바라봐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부족하다고만 보죠. 그렇게 바라보면 안돼요. 아이들을 통해 많은 걸 배워요.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서로 부족한 면을 도와주면서 조금씩 채워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죠..."<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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