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치워도 다시 쌓이는 제주바다의 쓰레기, 하지만 '절망'은 없다
치워도 다시 쌓이는 제주바다의 쓰레기, 하지만 '절망'은 없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8.03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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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 쓰레기 수거기③]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치워도 순식간에 다시 쌓이는 쓰레기 ... 대정읍 심각"
지난 2일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에서 수거된 해양쓰레기./사진=디프다 제주.
지난 2일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에서 수거된 해양쓰레기./사진=디프다 제주.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먼바다는 잔잔해 보였지만, 파도는 해안가 까이서 높게 일었다. 구름은 여름의 하늘답게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햇빛은 바다를 짙은 파랑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기온은 30도를 넘어 땅 위에서는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난 2일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서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노을해안로’에서 바라본 풍경은 이렇듯 짙은 여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계의 바늘은 오전 8시도 가리키지 않은 시점에 몇몇의 사람들이 이 해안도로의 중간에 모여들었다. 해양쓰레기 수거단체 ‘디프다 제주’에서 진행하는 해양쓰레기 수거 활동에 함께하기 위한 이들이었다. 이날의 만조시간은 오전 9시40분, 얼마 없으면 해안이 바다에 잠길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한낮의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시간부터 이들은 구슬땀을 흘리기로 결정하고 모였다. 기자도 이 날 이 자리에 함께 했다.

해안도로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가팔랐다. 이 때문에 해안도로에서 해안쪽으로 바짝 다가서지 않으면, 해안의 상황이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해안도로를 차를 이용해 지나치는 이들의 눈에는 해안에 쌓인 것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안도로의 가장자리에 서면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해안도로의 가장자리에 서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남쪽 해안이,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북쪽 해안이 보인다. 시야가 닿는 북쪽 끝에서부터 남쪽 끝까지, 쓰레기는 해안을 따라 무수히 쌓여있었다.

지난 2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 해안에 쌓여 있는 해양쓰레기./사진=미디어제주.
지난 2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 해안에 쌓여 있는 해양쓰레기./사진=미디어제주.

이 쓰레기를 줍기 위해 해안도로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던 길, 그 무수히 많이 쌓인 쓰레기 앞에서 ‘아이고’라는 탄식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날 모인 이들은 안타까운 탄식만 내뱉으며 눈 앞에 펼쳐질 현실에 주저앉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각자가 하나씩 포대자루를 움켜쥐고 쓰레기를 주워담기 시작했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쓰레기의 종류는 대부분이 페트병과 스티로폼 및 부표, 그물 등의 어구다. 이외에 어선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폐목재의 양도 상당하다. 이들 중 작은 크기의 쓰레기들을 줍는데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양이 상당히 많을 뿐이다.

페트병과 같은 작은 쓰레기들을 줍다보니 포대자루는 순식간에 가득찼다. 가득 찬 자루의 수만 33개였다. 이외에도 해안에서 주워올린 플라스틱 박스가 80개가 넘었다. 하지만 이렇게 쓰레기를 주우면서도 해안가 바위에에 뒤엉킨 그물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어느 누가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크기의 해양쓰레기였다. 

지난 2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 해안에 쌓여 있는 해양쓰레기./사진=미디어제주.
지난 2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 해안에 쌓여 있는 해양쓰레기./사진=미디어제주.

해안에 뒤엉킨 그물만 놔둔 채 그렇게 수많은 쓰레기를 주운 이들은, 마지막으로 그물에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는 바위에 뒤엉킨 그물을 풀고 들어올려보려 했지만 그물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닷물을 머금은 그물은 예상보다 더욱 무거웠다. 2명이 그물에 매달렸지만 역시 그물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명이 더 붙고, 거기에 또 한 명이 붙고, 한 명이 더 붙어서야 겨우 그 그물을 옮길 수 있었다. 그물 덩어리 하나에만 5명의 인원이 달라붙였다.

그물은 옮길 수 있었지만, 5명의 손으로도 그물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리 잡아당기고 저리 잡아당기면서 겨우 끌어올 수 있을 뿐이었다. 10여m를 옮기는데 하나같이 땀을 비 오듯 쏟아냈고, 숨을 턱끝까지 몰아 쉬었다. ‘힘내요’라는 말과 함께 기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그물을 끌어올리며 가파른 경사까지 넘어섰을 때, 함께 그물을 끌어올린 이들은 쉽사리 표현 못할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취감에 겨워 고개를 들고 허리를 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미쳐 수거하지 못한 남은 수많은 쓰레기들. 한 구간의 쓰레기는 모두 수거했지만, 바다에서 밀려온 쓰레기는 여전히 남쪽 해안 끝에서 북쪽 해안 끝까지 이어지며 쌓여 있었다. 그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에는 또 다른 쓰레기가 떠밀려 오고 있기도 했다.

‘디프다 제주’는 이날 활동을 나서기 전인 지난 1일 오전 7시30분부터 사계리 해안가에서도 쓰레기를 수거했다. 모은 쓰레기의 무게만 223kg 이었다. 하지만 오후 다시 쓰레기를 주웠던 현장을 둘러봤을 때 목격한 장면은, 오전에 수거한 쓰레기가 무색할 정도로 해변을 가득 매운 새로운 쓰레기였다. 파도는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쓰레기를 토해냈다. 

“쓰레기를 줍고 1시간 뒤에 다시 주웠던 장소에 가보면, 주웠던 만큼 쓰레기가 다시 몰려와 있어요.” 쓰레기를 주웠던 이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시야가 닿는 곳까지 쌓여 있는 해양쓰레기. 주워도 주워도 몇 시간만에 다시 쌓이는 쓰레기. 여름철 대정읍 앞바다의 현실은 이렇다.

대정읍 앞바다는 제주도내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100여마리의 남방큰돌고래 서식지이기도 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쓰레기는 그 바다로 떠밀려오고, 그 와중에 돌고래를 비롯한 수많은 해양생물이 그 수많은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헤엄친다. 

하지만 이날 쓰레기 수거에 나섰던 이들 중 이와 같은 사실에 ‘절망’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도, 멈춰서지 않고 다시금 쓰레기를 줍기 위해 움직인다.

이날 쓰레기를 주웠던 이들 중 몇명은 그 다음날인 3일 오전에도 사계리에 모여 이틀전 깨끗하게 청소했던 곳에 새롭게 쌓인 쓰레기를 주웠다. 다시 한 번 해안을 깨끗하게 만들어냈다. 다시 한 번 쓰레기가 쌓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은 이처럼 눈 앞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해야할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의 손일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의 손은 쓰레기를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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