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부표 등에 조개삿갓과 산호 등 붙어 자라나
여름철 제주 남쪽 해안으로 상당수 떠밀려 오기도
"앞으로 더 떠밀려 올 것 ... 수거 위해 많은 도움 필요"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한 낮의 열기가 뜨거워지는 여름이다. 햇빛은 바다를 비추고, 윤슬은 눈부시게 반짝이며, 수면은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풍경은 제주의 바다를 국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든다. 이 풍경은 더욱 많은 이들을 바다로 끌어모으기도 한다. 바다에 모인 이들은 즐거움과 여유를 품는다. 그 안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추억을 쌓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여름 바다풍경 안에 이처럼 아름다운 장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제주에 남풍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때론 강하게 제주를 감싸 안기도 한다. 불어오는 남풍에 바다의 흐름도 몸을 맡긴다. 물결은 드넓은 남쪽바다에서 북쪽을 향해 올라온다. 그 흐름 안에 사람들이 바다에 버린 수많은 것들을 함께 밀려온다. 제주의 남쪽 해안에는 그렇게 온갖 쓰레기가 쌓이게 된다.
그렇게 제주해안으로 밀려드는 쓰레기는 대부분이 어업활동의 부산물이다. 바다에 던진 그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부표, 그물 조각, 어업 활동에 따른 수확물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을 스티로폼 박스 조각, 사람의 팔뚝보다 두꺼운 밧줄, 온갖 종류의 페트병, 낚시줄, 그 외 다양한 쓰레기들.
11일 기자가 마주한 대정읍 일과리 해안에도 그와 같은 쓰레기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이날 오전부터 일과리의 앞바다에는 밀려드는 쓰레기들을 그냥 밀려든다고 놔둘 수 없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해양 환경단체 ‘디프다제주’의 인원들은 며칠 전부터 일과리의 해안가에서 쓰레기 수거 작업에 대한 일정을 짜고, 이날 약 1시간에 걸쳐 수거 작업에 돌입했다.
모인 이들은 각자 장갑을 끼고 포대자루 하나씩을 받아들고 파도가 밀려드는 해안으로 나아갔다. 검은 현무암이 멀리까지 늘어선 해안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돌 틈이나 가시덤굴 사이에서 멀리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일과리 앞바다에 밀려든 쓰레기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조개삿갓’이었다. 조개삿갓은 우리나라 남해 연안에 떠다니는 온갖 것에 붙어 자라는 따개비의 한 종류다. 부유물은 물론 배의 밑에도 붙어 자란다. 다양한 부유물에 붙어 조개껍질 사이로 다리를 쉴 새 없이 넣고 꺼내며 물 속의 플랑크톤 등을 걸러 먹는다.
동물도감에는 조개삿갓이 3~6cm 정도까지 자란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일과리의 해안가에서 발견한 부표에는 얼핏 봐도 이보다는 더욱 길게 자라난 조개삿갓이 빈틈없이 붙어 자라나 있었다. 물 밖으로 나왔어도 조개껍질 사이로 다리를 수시로 넣고 꺼내고 있었다.



부표가 얼마나 오랜 시간 바다 위를 떠다녔는지 쉽사리 짐작도 되지 않았다. 부표에 묶여 있던 밧줄에는 산호까지 들러붙어 사람의 주먹만한 크기로 자라나 있었다. 물 위로 뜨기 위해 속이 텅 비어 무게도 가벼웠을 부표는, 온갖 것이 붙어 한 손으로 겨우 들어올릴 정도로 무거워져 있었다. 바다의 생명들은 이처럼 사람들이 언제 버렸는지도 모를 쓰레기 위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조개삿갓이 붙어 자라난 것은 부표만이 아니다. 해안가로 떠밀려 와 있던 신발은 그 형태도 겨우 알아볼 정도로 조개삿갓이 빈틈없이 자라나 있었다. 수십 수백 시간을 바다 위를 떠돌아다녔을 페트병도 그러했다. 파도에 떠밀려와 해안가의 바위 위에 걸린 밧줄에서도 다양한 생명이 꿈틀거렸다. 깨진 유리병 조각은 따개비 등으로 바위와 이어져, 아무리 힘을 주어도 바위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버려졌고, 수많은 생물이 자연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과 각종 화학물에 붙어, 그곳이 집인 듯 하고 있었다.
앞으로 제주의 바다에는 이와 같은 쓰레기들이 더욱 많이 떠밀려 오게 된다. 남풍은 이 계절 내내 불어오면서 제주의 해안으로 많은 것을 밀어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바다에 버려왔는지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바다의 다른 생명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도 보게될 것이다.
‘내가 버린 것이 아니다’라고 다른 이들을 탓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오늘 치워도 내일이면 다시 쓰레기가 떠밀려와 제주의 해안을 뒤덮을지도 모를 일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제주의 해안에서 쓰레기를 걷어내는 일이 모이고 모여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날 쓰레기 수거에 나섰던 디프다제주의 변수빈 대표는 “앞으로 쓰레기가 더욱 많이 떠밀려오는 시기가 됐다”며 더욱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욱 많은 손과 마음이 모여야할 때다.
제주의 바다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렇게 모인 ‘행동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 이렇게 모인 마음이 여름 바다를 지켜내며 수면에서 빛나는 윤슬보다 좀더 빛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