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타령’하며 없앴다가 30년 후 ‘신축 타령’
제주대는 당시 건축계 보존 노력에 눈귀 닫아
“신축에 앞서서 진정성 있는 반성이 우선이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반성을 합니까?
잘못을 했다면 반성이 뒤따라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 경우가 숱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바로 내일(7일) 열릴 귀중한 토론회 때문입니다. 내일 토론회는 ‘제주대학교 옛 본관 복원·재현 공개토론회’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그게 반성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을 텐데, 반성과 매우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 제주대 본관은 지난 1970년 제주시 용담동 터에 세워집니다. 1964년 설계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얼굴을 내밀었죠. 너무 아름다운 건축물이었습니다. 설계는 르 코르뷔지에 제자인 김중업 선생이 맡았습니다. 나선형의 옥외계단, 수많은 곡선…. 상상으로만 가능할 건축물인데, 그게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던 겁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김중업 선생이 목수들을 일일이 훈련을 시켜서 만들어낸 건축물이라잖아요.
세상에 ‘영생’이라는 건 없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인간도 그렇고, 건축물도 그런 운명을 맞습니다. 하지만 김중업 선생의 작품인 옛 제주대 본관은 너무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중업 선생 스스로가 “21세기 건축물”이라고 말했던 옛 제주대 본관은 21세기를 맞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합니다. 그때가 1995년입니다. 한창 젊음을 누렸어야 할 나이에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옛 제주대 본관의 주인이던 제주대학교는 한 줌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 철거해 버립니다. 그러던 제주대가 이젠 본관을 다시 짓겠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허물어놓고서는 짓겠다고요?
딱 30년 전입니다. 옛 제주대 본관을 없애겠다고 하자, 우리나라 건축계가 들고 일어섭니다.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제주대에 대한 반발이었죠. 1993년 2월 5일 제주대본관 보전을 위한 세미나가 열립니다. 한국건축가협회 주최였습니다. 건축인들의 노력이 더해졌으나, 사라지는 걸 막지는 못했습니다.
김중업 선생은 1950년에 ‘신건축가협단’을 만듭니다. 그건 대한건축학회에 대한 반기였습니다. 대한건축학회는 공무원과 교수들이 중심이 된 집단으로, 옛 제주대 본관을 허물게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대한건축학회가 만든 보고서는 옛 제주대 본관을 없애게 만든 결정적인 서류였던 겁니다.
이야기를 더 풀어보죠. 제주대 본관을 ‘허물 결심’이던 제주대는 대한건축학회에 안전용역을 맡깁니다. 1992년 용역을 맡겼을 때는 보수보강 공사비로 7억9200만원이 든다고 나왔습니다. 제주대는 돈이 없다면서 ‘예산 타령’을 합니다. 이후 건축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제주대는 때를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옛 제주대 본관은 삭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허물 결심’이 굳어지자, 제주대는 다시 대한건축학회에 용역을 맡깁니다. 그때가 1994년 11월입니다. 결과는 이듬해인 1995년 1월에 나옵니다. 3층과 4층은 붕괴가 있다는 판단이었고, 1층과 2층 및 기초는 보수·보강하면 보존을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언뜻 “보존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보고서였지만, 대한건축학회는 “기초 보강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공사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철거 후 재건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시합니다. 그걸로 옛 제주대 본관은 생을 마감합니다. 결국 김중업 선생이 반기를 들었던 대한건축학회에 의해 그의 작품이 사라지는 꼴이 되어버렸어요.
30년 전, 그렇게 예산 타령하면서 옛 제주대 본관을 없앤 주인공들이 사라진 건축물을 살리겠다고 하네요. 아니, 살리는 게 아니군요. 새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악한 얼굴’을 하고 건축물을 없앤 장본인이 30년 만에 ‘선한 얼굴’로 변신해서 나타났습니다. 사라진 건축물을 다시 만들겠다면서요. 새로 만들어질 건 분명해 보입니다. 공개토론회라는 이름을 내걸었으니, 새로 등장하는 건 기정사실화된 느낌이니까요.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반성’입니다.
우리는 반성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옛 제주대 본관도 그런 경우입니다. 옛 제주대 본관 신축에 앞서 제대로 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성 있는 반성이 우선입니다. 제주대는 당시 건축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자 대한건축학회에 의뢰해서 철거를 했던 당사자가 바로 제주대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일을 반성하는 게 먼저입니다. 과거는 잊고, “옛 제주대 본관을 다시 짓겠습니다”고 말하면 안 되지 않겠어요? 내일 봅시다. 제대로 된 반성을 하는지.
그때 당시 제주도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누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