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1세기 들어서야 숲 유치원 관심
자연과 교감 통해 면역력 키우는 기회를 제공
“제대로 된 놀이 즐기려면 ‘매일형’ 숲이어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숲은 인간의 출발점이다. 아주 오래전, 수백만 년 전 ‘인류’라는 존재의 출발은 숲과 함께였다. 숲은 그런 존재였으나 산업혁명이 가져온 도시화는 숲의 존재를 잊게 만들었다. 인간은 숲이라는 존재를 잊은 건 물론, 파괴하는 일을 저지른다. 숲에서 출발한 인류는 자신의 고향이던 숲을 없애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지금도 그런 행위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도시의 탄생. 자연을 없앤 도시의 탄생은 ‘편리’는 주지만 딱딱한 빌딩 숲이 ‘편안’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다시 숲을 찾는다. 최근 들어서는 더 숲에 끌린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숲 유치원’도 그런 맥락이다.
숲 유치원의 출발은 유럽이다. 그 중에도 북유럽을 꼽는다. 1946년 덴마크의 엘라 플라타우 부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숲에서 놀도록 한 게 숲 유치원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보다 앞서 스웨덴에서는 19세기 말에 자연 친화 교육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후리루프트프램얀데트’라고 불리는 국민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후리루프트프램얀데트’를 우리말로 옮기면 ‘자유로운 공기를 지원한다’는 뜻이다. 자연과 함께 삶을 사는 생활은 왜 중요할까. ‘후리루프트프램얀데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고, 개개인의 조화로운 발달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는 일은, 인간의 영혼도 자유롭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21세기에 들어와서야 숲 유치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학술지에 숲 유치원이 등장한 건 2003년이다. 우리나라 첫 숲 유치원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가락본동어린이집으로, 2010년 숲 유치원반을 운영했다. 유럽에 비해 늦은 출발을 보였으나, 현재 곳곳에서 숲 유치원이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멀기만 하다. 숲 유치원 교실은 일반적으로 3개의 형태로 나눈다. 매일 숲으로 향하는 ‘매일형’이 있고, 하루 중 절반은 숲에서 생활하고 나머지는 실내 활동을 하는 ‘접목형’, 일주일이나 한달에 일정한 날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숲 활동을 하는 ‘체험형’이 있다. 이들 3가지 형태 가운데 전형적인 숲 유치원은 매일형이다.
유럽에 비해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나라는 다양한 숲을 지닌 나라로 꼽힌다. 산림도 많아서 숲 유치원이 늘어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지녔다. 그렇다면 왜 숲 유치원이어야 할까.
숲 유치원은 자연과의 교감이다. 우리는 자연과 늘 교유를 해왔다. 만일 자연과의 교감이 아니라 ‘자연과 격리’라면 어떻게 될까. 인공환경은 아토피와 면역력 결핍 등 갖은 병리현상을 낳게 된다. ‘위생가설’이라는 게 있다. 너무 깨끗한 환경은 면역성을 키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게 ‘위생가설’이다. 즉 ‘위생가설’은 몸에 병을 일으킬 정도의 ‘불결’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더러움’을 허용하는 걸 말한다. 쉽게 말하면 흙을 만지면서 놀다가 노출되는 정도의 더러움은 몸의 면역력을 길러준다는 뜻이 된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행위는 실내가 아닌, 실내 놀이에서 얻는다. 숲은 더욱 좋다.
숲을 비롯한 자연이 어린이들에게 주는 장점은 충분히 몸놀림을 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특정된 ‘장소’에서 노는 게 아니라, 숲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놀게 된다. 그럴 경우 아이들은 쉼없이 움직인다. 땅을 파는 아이도 있고, 나무에 오르는 아이도 있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곤충에 마음을 주는 아이도 있으며, 꽃향기에 잔뜩 매료되는 아이도 생긴다.
미국의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토포필리아’는 그리스어의 장소를 말하는 토포스(topos)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를 합친 말이다. 우리말로 풀어쓴다면 ‘장소에 대한 사랑’이나 ‘장소애(場所愛)’로 변환이 가능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가 숲이라면 그 장소는 사랑 가득한 ‘토포필리아’가 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숲 유치원. 아이들 개개인에게 숲이 ‘토포필리아’ 기능을 하려면 매일 숲에 가는 일이 필요하다. 매일형 숲 유치원은 비가 와도 숲으로, 눈이 와도 숲으로 향한다. 숲이 곧 유치원이고, 숲이 놀이터이며, 숲이 스스로를 일깨워주는 교육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숲 유치원이 대세이지만, 우리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가뜩이나 매일형 숲을 운영하는 건 힘들다. 갖가지 제약이 많아서다. 인가를 받아서 진행하는 숲 유치원은 안전 문제 때문에 재미가 결여된다. 그래서인지 뜻있는 이들은 비인가 숲 유치원을 운영하곤 한다. 인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숲 유치원을 고집 하는 이유는, 그런 숲 유치원이 제대로 된 숲을 즐기고 놀이를 즐길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