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야 맡아지는 제주 내음이 있어"
"천천히 걸어야 맡아지는 제주 내음이 있어"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10.24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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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시민강좌 - 제주시 원도심, 영화로 말 걸다 제7~8강

'파괴' 없는 '지킴의 개발'을 일궈낸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
지금 제주, 개발에 대한 인식변화 필요해... "느림의 미학 알아야"
세계의 물 부족 문제, 이상기후로 인한 가뭄 문제를 표현한 이미지.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개발’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 산을 깎고, 다리를 만들고, 높은 고층 빌딩이나 각종 테마파크, 신축 건물과 아파트를 건설하는 행위를 떠올릴 이들이 많을 테다.

그래서인지 현대 사회에서 ‘개발’이란, 흔히 ‘파괴’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개발) 사업. 이는 폭 35m, 왕복 6차로, 예산 1237억원의 대규모 도로 ’개발’ 사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발’은 도로 예정지에 자리해온 것들과의 이별을 뜻한다. 자리해온 것들과의 이별이란, 어제와 오늘, 내일을 잇는 누군가의 ‘추억’과의 이별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도 그렇다. 공사가 시작되면, 아이들이 뛰놀던 서귀포학생문화원 앞 잔디광장과 소나무숲은 파괴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개발은 늘 ‘파괴’를 수반해왔고, 지금도 수반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

이쯤에서 질문 하나. 물리적인 ‘파괴’ 없는 ‘개발’이 존재할 수 있을까.

“혹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지킴의 개발’을 현실에서 이뤄낸 곳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입니다. 1989년 ‘슬로시티’를 선언하며, 외지인의 지역 부동산 소유를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며 현재도 이를 고수하고 있는데요. 덕분에 옛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가 되어, 세계 여행객들이 짧게는 2~3일, 길게는 2~3주 이상 머무는 곳이 되었답니다.”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

10월 24일 토요일 오후 2시, 시민들의 목소리로 철거 위기에서 살아나, 지금은 ‘제주사랑방’으로 거듭난 옛 고씨주택 건물에서. ‘2020 제주시 원도심 시민강좌 – 제주시 원도심, 영화로 말 걸다’ 7~8회차 강연이 열렸다.

3회차부터 6회차까지, 모든 강연을 맡아온 이는 제주대 김태일 교수. 그는 마지막 강연인 7~8회차 행사의 주제로 ‘관덕정 광장과 시장’을 택하며, 이탈리아 사례를 들었다.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는 자그마한 농촌 마을이다. 과거에는 매우 가난한 마을로, 화려한 볼거리 없이 포도와 올리브 농사가 소득원인 곳이었다. 이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떠난 토박이들이 많았단다.

“지금의 그레베 인 키안티는 세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난한 농촌도시가 어떻게 성공적인 관광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전통을 고수하는 ‘느림의 전략’이 있었습니다.” /제주대 김태일 교수

2012년 그레베 인 키안티 도시의 광장. 10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레베 인 키안티는 외지인의 부동산 소유를 극도로 제한한다. 부동산 광풍에 따른 개발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주택이나 건물 신축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주민의 증가로 인구수가 증가했지만, 제한은 여전하다.

지역의 전통시장을 살리려 대형마트 입점도 막았다. 지역 식당에서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식자재를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따라온 변화. 지역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경제 활성화가 시작된 것이다.

관광객도 몰렸다.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고유의 음식과 생활방식, 문화가 있기에, '슬로시티' 그레베 인 키안티를 찾게 된 것이다.

“이는 노형동과 연동을 개발하며 보인 정책과는 다른 형태의 모습이죠. 노형동, 연동 등 도시의 현재 모습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을 개발하며 우리는 과연 충분히 고민했노라 자신할 수 있을까요. ‘지켜야 할 가치’를 도시에 담아내려 노력을 했다 볼 수 있을까요.” /김태일 교수

김 교수는 우리가 ‘물리적 개발’에 쏟아온 관심에 비해, ‘옛것의 가치를 보전하려는’ 노력에는 소홀했음을 지적했다. ‘부수고, 파괴하는 개발’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지킴의 개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대동여지도 속 제주도의 모습.

“최근 제주다움, 특별한 제주. 이런 것들을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그러려면 제주에 대해 더 많이, 깊이 알아야 합니다. 제주를 이해하고 나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지킴과 개발 행위가 상존할 수 있거든요. 개발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김태일 교수

김 교수는 파괴하지 않는, 전통을 보전하는, ‘지킴의 개발’이야말로, 제주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발’이 곧, ‘파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거다. 전통을 보전하기 위한 ‘지킴의 개발’도 존재할 수 있다.

‘지킬 것을 지키자’라는 전제가 깔린 상태에서 진행되는 개발. 이것이 ‘개발’의 이미지로 자리할 수 있도록, 모두의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미디어제주> 시민강좌 - 제주시 원도심, 영화로 말 걸다 8강 시간에는 영화 '국제시장'을 감상했다.

강연이 끝난 뒤, 이어 함께 보는 영화감상 시간. 이날의 영화는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이 부산 사람들에게 의미했던 바는 무엇이었을지. 대한민국의 역사와 직결되는 부산 국제시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을 수 있었을지. 영화 속 이야기는 제주 전통시장의 발자취와도 연결된다.

과거 북적북적했던 관덕정 앞 광장이 지금은 텅 비어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전통시장 대신, 대형마트를 즐겨 찾게 된 이유는 뭘까.

현대화에 따른 '개발'이라는 이유로, '느림의 미학'을 잃어버린 듯한 지금의 제주. 옛것의 가치를 잃은 제주의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론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주변 풍경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걸어보자. 제주의 바닷내음, 곶자왈의 콤콤한 돌 냄새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한 제주 사람이 될 테니까.

천천히 걸어야 맡아지는, 제주 내음이 있다. 그 향기야말로, 제주가 특별한 까닭이다.

제주 사려니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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