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에스오디에이건축사사무소의 백승헌 대표이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 출신으로, 지금은 영평동에 사무실을 차려서 활동중이다. 애착이 있는 땅은 어릴 때 놀던 기억이 있는 곳이며, 그가 소개한 책은 김광현 교수가 쓴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이다.
# 우리 옛 공간 –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던 곳
제주사람들이 살던 집. 누구나 거기엔 제주전통이 살아있다고 강조하면서 제주사람들이 살던 집을 이야기한다. 참 쉽게 그런 말을 꺼낸다. 그걸 잘 알면서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에스오디에이 백승헌 대표는 학부시절 ‘제주성(濟州性)’을 지겹게 들었다. 학부 시절 누누이 들었던 ‘제주성’은 그만 듣고 싶어질 정도였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제주성’은 그의 가슴에 “팍!”하며 박히고 만다. 왜 그럴까.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그는 제주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주사람들은 드러낼 줄 모른다. 자기가 어떤 공간에 살아왔으며, 지금 밟고 있는 땅이 어디인지에 대해 자랑하기를 꺼린다. 속내는 자랑하고 싶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고, 하나를 덧붙인다면 늘 가지고 있던 것이기에 자랑할만한 것인지에 대한 느낌 자체가 없다. 그러면서 제주사람들은 ‘우리 것’이라고 불리던 온갖 물질을 잃어버렸다. 그게 아쉽다.
몸에 배면 특별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풍광이 좋아도 모른다. 남들이 제아무리 좋다고 얘기하더라도 잘 모른다. 나중에야 그걸 인식하는데, 그때는 사라지고 난 뒤인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던 곳, 그 자식 세대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던 곳을 언젠가는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향을 등지고 나와서 산다. 고향을 떠나서 사는 이들이 지니고 있는 건 ‘순간의 기억’이다.
굽이굽이 올레가 있던 곳. 올렛길을 이리저리 오간 기억들. 가다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길의 끝임을 알리는 막은창. 올렛길보다 낮게 자리를 잡은 마당. 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안거리와 밖거리. 각각의 집은 높이도 달랐다. 돌무더기인 빌레에 집을 앉혀야 할 때는 바위 가득한 땅 위에 집을 놓기도 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집이 그랬다.
이젠 올렛길도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올렛길’은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억지로 만들어낸 그 올레가 아니다. 바로 제주의 집을 말한다. 제주의 집은 초가라는 건축물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초가로 구성된 각각의 세대가 있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골목을 말하는 올렛길을 포함해야 제주의 집이 된다. 때문에 제주의 집은 공동체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요즘은 차량에 밀리면서 제주의 전통을 이어온 공간은 뒤로 밀리고 있다. 그 세태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허무는 게 완벽한 정답일까라는 고민을 해볼 만하다. 옛 멋을 살리고, 그 공간을 지키는 이들도 흡족할 뭔가는 분명 있을게다.
‘신촌미로’라는 말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미로는 가로·세로 격자를 만드는 그리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리드가 군주통치를 위한 최고의 도구였다면, 미로는 천연발생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드는 기존의 것을 없애야 가능하지만, 미로는 있는 그대로를 살리는 방식이다. 길이 굽어서 나쁠 건 없다. 자연 냄새가 나고, 인간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우리가 아끼던 미로였다.
[대담] 건축가 백승헌을 만나다
그의 건축사사무소는 제주시 영평동에 있다. 사무소 풀 네임은 ‘에스오디에이 건축사사무소’이다. 에스오디에이(SODA)의 영문을 표기하면 ‘Social Oriented Design & Architecture’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만 살 수 없다. 때문에 사회는 구성 개개인의 욕망을 우선하지 않는, 모두가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에스오디에이’엔 이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중심을 형성하는 사회를 위한 건축을 하겠다는 의지가 다분하다. 최근엔 ‘SODA’ 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바뀐 로고는 건축을 통해 마음껏 놀고 싶은 의지가 보인다.
-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건축가의 꿈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건축과를 갔으니 건축가가 됐다는 사람도 있다. 언제부터 건축가의 꿈을 지녔나.
휩쓸려왔다고 해야 할까. 건축과를 나오고, 건축사사무소를 들어갔는데 내 길이 아닌 줄 알았고,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몰랐다. (그가 처음 들어간 건축사사무소는 ‘가우건축’이었다.) 건축사사무소를 들어간 첫해부터 원고를 정리하고, 전시회가 있으면 판넬을 만들고, 내가 설계를 하지 않은 것도 판넬로 만드는 그런 작업을 했다.
- 그래서 뭐를 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빨리 도면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런 건 시키지 않더라. 나중에는 그게 자양분이 됐다. 첫 실시설계는 5년차에 할 수 있었다. 설계를 진행하고, 건물이 지어지고, 준공해서 사람들이 들어가는 과정을 진행하고 싶었다. 건물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쌓으면, 아무리 큰 건물이 맡겨져도 겁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학생 때와 같은 생각이다. 건물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사는 모습은 감격적이다. 지구는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니라 영원한데 지구상에 내 생각을 올릴 수 있는 그것이 영광이다.
- 가우건축에서 배웠던 게 자양분이 된 셈인데,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어떤 친구는 오자마자 실시설계부터 시작하고, 어떤 친구는 디자인을 했다. 가우건축 양건 소장이 내게 집중적으로 시킨 것은 기획업무였다. 이젠 그때 같이했던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한다. (기획업무를 한 덕분에) 설계를 받아오면 뭘 따질지, 단순한 법규검토가 아니라 땅에서 어떤 건축을 해야 하는지, 어떤 걸 더 살펴보는지, 어떤 걸 더 참조해야 하는지, 이런 것에 대한 시작점은 연습해봐서 할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은 도면이 주어지면 실시설계는 멋들어지게 만들어낼 수 있는데 설계를 해달라고 하면 머리를 긁적이곤 한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법규검토는 하겠는데, 설계를 할 집의 컨셥에 뭐냐고 물어보면 할말이 없다고 한다.
- 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내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릴 때 겅혐이다. 조천읍 신촌의 우리집과 할머니집,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초가지붕에 올라가서 작업하는 것도 봤다. 구좌읍 평대의 외할머니집도 초가였다. 제주도의 집은 재밌다. 집은 도로보다 낮았고, 마당도 평평한 곳은 없다. 동산이 있고, 어릴 때는 무척 재밌는 공간이 됐다. 동산에 오르면 초가지붕이 다 보였다. 그래서인지 입체공간을 좋아한다. 왠만하면 단차를 살려서 집을 지으려고 한다. (2019년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인 ‘송당리 오름품은 집’도 집 내부에 단차를 살려만든 집이다.)
- 그렇다면 땅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가.
맞다. 가우건축 양건 소장은 “제주도는 평평한 지형이 하나도 없고 옆 땅, 옆 땅, 옆 땅이 붙어있어도 똑같은 레벨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게 제주의 땅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건축은 땅 안에 건물을 올리는 게 아니라 땅 전체를 만져야 한다. (그가 몸담았던 가우건축은 4.3그룹의 영향을 받아 땅의 존재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 어릴 때 살던 모습을 떠올리면 안거리와 밖거리의 단차가 컸다. 안거리는 매우 높았는데 지형을 그대로 활용했다.
요즘 그런 것에 많이 꽂혀 있다. 어떻게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다들 지형을 살린 공간을 좋아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층은 상가가 들어가야 하고, 의원을 해야 하고…. 건축주들은 아쉽다면서 나중에 꼭 짓고 싶다고 한다. 그냥 하는 빈말은 아니다.
- 넓은 땅이 있으면 단지로 개발하고 분양한다. 그런 방식은 제주도와 맞을까.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땅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땅은 주변도 같이 본다. 남의 땅의 관계까지 생각해야 한다. 딱 잘라서 평평하게 만들고, 담쌓고 끝내면 되는데 이런 게 잘 겠지만 땅과의 관계가 잘 이어지게끔 하는 게 건축가들이 해야 할 역할 아닌가.
더 추가하자면 어릴 때 놀던 골목 중 올렛길이 많았다. 양건 소장이 어느날 “신촌미로라는 얘기가 있다”고 해다. 신촌 출신인데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 운동을 겸해서 신촌을 돌아보는데 ‘신촌미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면 저기로 나오고, 우리집 근처에 그런 곳이 있었다. 신촌은 그래도 보존이 돼 있다.
- 미로 얘기는 전통 얘기와 같다. 옛날은 다 미로였다. 미로가 끝나는 곳은 막은창이다. 중간은 소통이 다 되는 구조인데, 그런 게 얼마 남지 않았다.
신촌은 많다. 청소년건축학교를 할 때 신촌을 보여주더라. 요새는 자부심이 생긴다. 어릴 때는 신촌에 사는 게 창피했는데, 요즘은 대한민국 건축가들이 주목하는 지역이다. (웃음)
- 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김광현 교수의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을 읽으며 루이스 칸을 더 들여다보게 됐다. 아울러 공동성도 알게 되었는데, 왜 이 책을 추천했는가.
루이스 칸은 50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 어떤 건축설계가 들어와도 사례조사를 하지 않아도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건축을 볼만큼 봤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위치까지 올라온, 그러니까 뭔가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설계를 하면서 관습화된 설계를 어떻게 하면 안할까 고민한다. 교회를 설계하더라도 위치나 거기 오는 사람들의 성향이 다르다. 우리가 해왔던 관습적인 걸 의심하다 보면 왜 이런 공간이 만들어졌고, 필요해졌는지 알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앞부분보다 뒷부분에 공감이 간다. 거기에 건축 현실이 나온다. 우리 세대는 과연 대한민국에서 최상인가 질문을 던져본다. 365일 중에 350일 이상 출근하고, 90% 이상을 야근과 철야를 한 경험이 있다. 그러다 떠난다. 정말 좋은 환경이 주어지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남아야 한다.
- 건축을 하는 이들은 너무 어렵게 설명하려 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엄태웅이 한가인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어떻고, 이래저래 설명을 한다. 한가인이 끝까지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한 말이 “음 좋은데, 너 영어학원 다니니?” 이런 말을 했다. 우린 너무 자연스럽고 건축가라면 그런 어휘들을 쓰는데, 이게 사실은 시민과 멀어져 있음을 말한다. (백승헌 건축가는 이어서 건축가와 건축사를 가르는 문제점도 이야기를 했다.)
사실 건축가들은 똑같은 노력을 한다. 물론 설계를 좀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법규 검토를 다 하고, 자기 아이디어 심고, 건축주와 교감이 되면 설계를 한다. 어느 선에 올라왔다고 ‘나는 예술가입네’라고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시민들이랑 교감이 돼야 한다.
- 건축계가 3개 단체이다 보니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단체가 하나라면 하나의 목소리가 나올 것 아닌가.
갈라지고 하다 보니 한곳에서 목소리 내면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오히려 김광현 교수와 같은 분이 설계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니 고맙다. 우리는 공사비의 5%를 설계비로 줘도 잘줬다고 하는데, 외국은 공사비의 절반까지 주기도 한다. 대학원 수업을 받을 때 어느 교수는 우리 설계를 외국과 비교하며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건축공부만큼 중요한 게 설계비다.
-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오픈하우스라는 게 있다. 건축물이 준공되면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서 소개를 하는데, 서울은 많이 한다. 현상설계로 진행된 공공건축물은 시민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인에게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준공이 되면 시민들, 즉 집주인을 초대해서 건축사용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런 자리가 만들어지면 시민은 시민의 권리를 찾는 것이고, 건축가와 시민과의 사이가 까가워지는 계기가 된다. 스마트폰을 사더라도 사용설명서가 따라오는데, 몇십억 건물을 지으면서 그런 걸 집주인들에게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집주인을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건축사용설명서’를 만들어서 해당 건축물이 어떤 의도로 기획되고 사용하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 제주도는 땅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서울은 빌딩에 둘러싸여 있고, 그래서 자기 공간에 대한 얘기가 많겠지만 제주도는 어떤 면에서 허허벌판에 주택이 들어갈 수도 있다. 때문에 제주도는 땅 얘기가 많은 것 아닌가.
땅은 똑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할 때인데, TV를 통해 다큐 프로그램을 봤던 것같다. 마을 풍경을 보여주고, 어느 지역인지 맞추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제주도와 제주도가 아닌 게 눈에 들어왔다. 대학원을 가기 전까지는 건축을 얘기하면 교수들은 제주성(濟州性)을 얘기하는데, 실체도 없는 제주성은 몇 년간 우려먹을까 생각했다. 그런 얘기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TV를 보는 순간, 아! 제주도랑 육지랑 다른 게 이거구나 느꼈다.
- 제주에 맞는 건축은 제주에 어울리는 건축은 뭘까.
딜레마다. 건축주들은 바다와 오름을 보고 싶어 하고, 2층임에도 3층같은 집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딜레마가 생긴다. 모던으로 가려면 뭔가 고개를 내민다. 자기를 뽐내기 위해서도 고개를 내미는데, 뭔가를 보기 위해서도 고개를 내민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높을 필요가 없다. 마당 자체로도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굳이 너머에 있는 오름이나 한라산, 바다를 보려 하지 않아도 됐다. 어떻게 보면 가치의 차이일 수도 있다.
환경에 대응하는 건축까지는 고민을 하지 않았지만, 1층 바닥이 전부 잔디이며, 벽하고 지붕만 씌운 곳에 사람이 산다면 어떨까. (송당리 건축물을 말하면서) 생화를 실내에 끌어들였다. 밖과 연결되는 구조로 만들었고 집주인은 개미나 벌레가 들어오면 어떡하느냐는 고민을 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건축주에게 최근 들은 말이 있다. ‘내가 실내에서 검질을 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더라. 너무 기분이 좋았다.
- 건축가와 건축주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이나, 미스 반 데 로에의 ‘판스워스’ 주택을 보라.
경우에 따라 다르다. 절충안을 찾는 게 건축가 역할이다. 건축주는 건축가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찾아오기에, 건축가는 절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건축가의 생각을 고집할 건 아니다. 많은 사례를 보여주고 장단점을 설명하고, 결정은 건축주가 하도록 한다. 서툰 형태로 작품이 나오더라도 건축주 생활을 담는 공간이고, 충분히 설명드린 상태에서 그런 결정을 건축주가 했다면 어쩔 수 없다.
- 마구 선택해도 창고 닮은 걸 지어달라고 하고, 100% 기능만 담는다면.
그땐 많은 사람을 개입시킨다. 결정권자를 설득시킨다. (특히 여성 집주인이 힘을 지녔다.) 옛날 타일로 시공을 하고 싶다는 분이 있었다. 사모님이 오더니 “촌스러워~” 한마디에 바뀐 경우도 있다.
- 제주도에서 건축가가 해야 할 역할을 정리해준다면.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어떤 분들은 건축학도를 위해 출강을 하기도, 아니면 동네의 조그마한 민원 해결을 위해 애쓰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민들과 접촉을 많이 하면 좋다. 교수와의 연구용역도 거절하지 못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교수의 부탁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용역을 하면 제주도가 더 좋아질 것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돈은 안된다. 청소년건축학교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 통해서 건축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건축에 대한 더 좋은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김광현 지음
공동성(共同性). 뭔가 싶다. 함께한다는 뜻일텐데, 과연 무엇이 공동성일까. 공동체는 아닐까? 책은 공동성과 공동체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간을 만들거나, 어떤 공간에 들어온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 때, 그걸 공동체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공동성은? 공동성은 좀 더 원초적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생각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가려는 그런 의지를 공동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좀 어려운가?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을 잘 들여다보면 공동성이 눈에 들어온다.
쉽게 설명해본다. 절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을 놓고 보자. 절은 하나의 울타리를 형성한 공동체이다. 거기엔 스님이 있고, 불교 신자들이 있다. ‘절’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에 관계된 사람들이 어울리면 그게 공동체가 된다. 공동성은 이와 다르다. 누구나 산속에 있는 절에 가게 되면 심신이 달래지리라 느낀다. 스님이나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느낀다. 그걸 건축으로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동성을 담은 건축물’이 된다. 그러지 않고 스님과 불교 신자만 들어가게끔 만든 건축물은 ‘공동체만을 담은 건축물’이 된다. 저자는 책에서 공동성을 중시하는 이유를 다음처럼 들었다.
“공동성이라 하면 어떤 공동체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해 온 성질로 이해하기 쉽다. 공동체에도 ‘공동’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고, 공동성에도 ‘공동’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어서 이 두 단어가 비슷하게 들리고, 또 굳이 구별하려 들지 않는 이상 얼핏 뉘앙스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공동성을 중시하는 이유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꾸 닫혀 있으려 하고 한정된 ‘우리’라는 생각에 갇힌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앞서 절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자. 공동체는 ‘그들만의 사회적인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건축을 공동체에 맞추게 되면 공공성에 취약하게 된다. 공공성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저자가 공동성을 외치는 이유 역시 건축물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가진 생각을 정리해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우리가 어떤 건축물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공동성’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며, ‘건물’이라는 단 하나의 오브제만 매달리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물론 혼자만 즐기고 싶은 극히 개인적인 건물엔 공동성이 애초에 스며들 여지가 없긴 하다.
저자는 루이스 칸에 심취해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칸은 자신이 아닌 타자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려 했고, 그 안에서 대답하고자 한 훌륭한 건축의 스승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는 칸의 생각을 빌어서 공동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동성은 생각을 나누는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장소와 공간에 대해서 무언가 분명하게 공동으로 이해하는 힘을 지녔다. 때문에 사람들은 학교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든다. 그리고 미술관과 극장도 그런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다. 그게 모두 공동성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면서 건축은 인간의 희망이 땅 위에 번역되고, 땅은 건축과 함께 ‘사회화’된 풍경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땅 위에 지어질 건축은 어때야 하는지 저자의 말을 옮긴다.
“올바른 건축은 땅에서 얻어진다.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집이 얹히는 땅이요, 집을 둘러싼 하늘이요 나무들이다. 이러한 건축은 땅의 높이와 펼쳐짐 속에 인간이 바라는 바를 비추어낸다. 집을 짓기 전까지는 건물이라는 형태가, 눈에 띄는 모양이 주인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지어지고 나면 땅과 하늘과 나무와 공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잘난 줄 알았던 건축의 모양은 실제의 땅 위에서 위약해지고, 초라해 보일 것만 같던 건물이 반대로 조형된 땅 위에서 인간의 실존적 희망을 그려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