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관아가 없어질 뻔한 사정, 당신은 아나요”
“제주목관아가 없어질 뻔한 사정, 당신은 아나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11.04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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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주택, 원도심의 아이콘이다] <2>

11월 1일, 강문규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 강연
“제주목관아 살리기 위해 6차례 기사 작성했다”
강문규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이 제주목관아에 얽힌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 원도심에 사라질 뻔한 소중한 문화유산. <미디어제주>가 진행하는 ‘도시재생, 고씨주택에 말을 걸다’ 첫 강좌에서는 고씨주택과 산지천갤러리 등 시민들이 나서서 지킨 건축물 이야기가 김형훈 편집국장에 의해 소개됐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는가. ‘제주목관아’ 또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11월 1일 오후 5시 진행된 두 번째 강좌에서는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이자 ‘일곱 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을 저술한 강문규 씨가 제주목관아에 얽힌 이야기를 공개했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도 행정의 중심이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제주도청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해방 후 1949년 화재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제주도청은 광양으로 신축 이전되었는데, 1980년경 신제주 지역에 도청 건물을 다시 지으며 지금의 모습이 된 겁니다."

제주목관아가 화재로 불타 사라지자 도청은 원도심을 떠나 지금의 신제주 지역에 자리하게 된다. 결국 제주목관아가 있던 자리는 휑하니 터만 남게 되는데, 수십 년 방치된 탓에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무관심'이었다.

그러던 중 제주시는 엄청난 계획을 발표한다. 제주목관아 터에 지하주차장과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제주시는 1990년 모 그룹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제주목관아 자리에 공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힙니다. 사업 내용은 관덕공원 일대 5천여 평에 39억원을 투입, 350대 수용 규모의 지하 2층 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었죠.”

제주목관아터에 지하 2층 주차장과 공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1990년 제주시의회 심의를 통과, 1991년 본격 추진을 앞두게 된다.
제주목관아 유적이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강 씨에 의하면, 제주목관아터를 주차장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이 계획은 1990년 말, 제주시의회 심의를 쉽게 통과했고, 1991년부터 본격 추진을 앞두게 된다.

그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반문화적 발상이며 행태였다”라고 말했다. 지하주차장과 지상 공원 조성 계획은 제주 행정의 중심이었던 목관아 유적을 파괴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저는 당시 제주시청 출입기자로, 시청 관계부서와 의회 의원 등을 만나 지하주차장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예산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이미 늦었으며, 버스는 이미 출발해 버렸다’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죠.”

강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느 언론에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다양한 내부 사정이 있었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 사업을 추진하는 모 그룹과 관계있는 언론이 존재했었고, 해당 언론은 이 사안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제주 사회에도 문화를 애호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데. 지금 제주역사문화의 핵심 공간을 완전히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요.”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자마자 즉시 “문화적 만행에 저항하는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1991년 6월, 한라일보 1면에 ‘관덕공원 조성 문제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 것이다.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제대로 된 발굴조사 없이 지하주차장 시설 공사가 예정되며, 문화재보호법 위반에 따른 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저는 '관덕공원 조성 문제있다' 시리즈를 6회에 걸쳐 보도했습니다. 문화유적 보호에 앞장서야 할 행정기관이 오히려 문화재보호법을 위배하며 공사를 진행하려는 행위. 이 지적은 결국 제주시장이 기자실을 방문해 ‘예산 3000만원을 들여 사전조사를 하겠다’라고 밝히는 성과로 이어지죠.”

1991년 6월, 한라일보 1면 톱에 배치된 강문규 당시 기자의 기사.

발굴조사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먼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진행된 1~3차 발굴조사에서는 제주목관아 중심 시설인 동 헌지와 내아 건물, 중심도로 등이 밝혀졌다.

문화재 흔적이 하나둘 발견되자 시당국은 당혹스러운 입장이었다. 세월이 워낙 흘렀기 때문에 목관아터가 모두 훼손되어 흔적이 사라졌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래서 당당히 ‘발굴조사’를 시작한 것인데. 막상 발굴을 시작하니 1천여 년 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특히 제주시논인회관 북쪽 지점에서 탐라국시대의 주춧돌이 발견되었을 땐, 제주 사회의 엄청난 관심이 주목됐다. 그런데 강 씨에 의하면, 문화재당국은 발굴을 멈추고 덮어버리라는 지시를 내렸단다. 이때의 야만적인 당국의 행태는 지금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다.

탐라국시대의 주춧돌이 발견되던 현장의 모습.

계속된 발굴조사에서 옛 흔적은 꾸준히 발견되었다. 1998년 4차 조사에서 외대문과 중대문지, 홍화각, 애매헌, 호고, 호적고, 우련당 등 18세기 관아 건물의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됐고, 행정도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제주목관아 복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1993년 3월 30일, 제주목관아지 일대가 국가사적 제301호로 지정되며, 본격적인 제주목관아 복원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탐라순력도와 탐라 방영총람 등 당대의 문헌과 전문가 고증을 거쳐 관아지 복원 기본설계가 완성되었고, 복원사업에 필요한 기와 5만여 장을 모두 제주 시민이 기증하며 2002년 12월 복원이 완료되었죠.”

그는 목관아가 복원된 지금,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복원된 제주목관아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 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탐라순력도에 따르면, 목관아 정문인 ‘진해루’ 누각에는 종과 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새벽과 저녁에 종과 북을 쳐서 성문을 여닫았다고 하는데요. 아마 주요 행사 때도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종과 북이 현재 진해루(외대문)에는 복원되어 있지 않아요. 이를 복원해 연말, 혹은 주요 행사 때 활용한다면. 제주목관아를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고, 원도심 일대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탐라순력도에 나온 진해루의 모습. 종과 북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날 자리에서 진해루에 종과 북을 복원해 일반 시민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미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제주목관아가 관광객 뿐만 아니라 도민들도 즐겨 찾는 곳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안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산지천갤러리가 개관한 뒤,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과 비슷하다 하겠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것을 짓는 일은 쉽다. 반면, 낡았지만 소중한 옛 흔적을 지키고, 새로이 활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제주가 해낼 수 있도록. <미디어제주>는 다음 시민강좌에서도 원도심의 도시재생 이야기를 이어보려 한다.

다음 강좌는 11월 6일 수요일 오후 5시. 고씨주택에서, 고씨주택의 이야기를 한다. 사단법인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고영림 회장이 강연자로 나서며, ‘고씨주택이 있기까지’라는 제목으로 고씨주택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만의 이야기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강좌를 통해 도시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들은 미디어제주로 직접 전화(☎ 064-725-3456)를 해서 수강 신청을 하거나 메일(mediajeju@mediajeju.com)로 접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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