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남편·형을 대신해 3일 제주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 제출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제주4.3 당시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망하거나 행방을 알 수 없는 '행불인수형자'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행방불명인(행불인)유족협의회(회장 김필문)는 3일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인수형자에 대한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청구인은 현경아(97) 할머니 등 10명의 행불인수형자 유족들이다.
10명의 행불인수형자는 1948년과 1949년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 명부에 있거나 처분(사형)돼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이다.
행불인수형자들이 '사자'(死者)이기 때문에 유족들이 대신 청구인으로 나섰다.
재심 청구에 나선 유족들은 재심 청구서를 통해 자신들의 아버지나 남편, 혹은 형에 대한 재심을 요구했다.
자신의 형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이상하(84) 할아버지는 "형이 '산'에 갔다는 이유로 저희 일가족이 몰살당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등 8명이 돌아가셨다. 나도 같이 있었는데 총을 안 맞아 살아났다"며 "(산에 들어간) 형님이 자수를 했는데 결국 사형당했다"고 울먹였다.
제주시 아라동 구산부락 출신 현경아(97)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현 할머니는 "우리 남편 시체를 오늘까지도 못 찾아 눈을 감지 못하겠다. 죽어서도 남편을 못 만날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 할머니는 "아들도 손자도 있어도 아방(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부인이 부인이냐. 오늘도 미망인으로 오라고 해 울면서 왔다"며 "기도를 해도 남편이 간 곳을 모르겠다. 남편을 찾아달라. 머리카라 하나만 찾아줘도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4.3행불인은 약 3600명이고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은 2530명이다.
생존수형인 18명(재판 중 사망 1명 포함)이 올해 초 재심 재판에서 사실상 무죄인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고 그 외 파악되는 생존수형인이 10여명이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유족은 행불인유족협의회 경인위원회, 대전위원회, 영남위원회, 호남위원회, 제주위원회에서 각 2명이 대표로 나섰다.
김필문 협의회장은 "우리도 이제 얼마 없으면 무덤으로 간다. 그러면 우리 자손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느냐"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오늘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 희생자 행불인 3600명, 수형인 2530명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송승문 제주4.3유족회장도 "행불인협의회에서 3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는데 생존수형인이 먼저 (재심을) 청구했다"며 "일단 생존수행인 18명에 대한 공소 기각이 나왔기 때문에 군사재판의 불법으로 인해 희생된 이분들(행불인수형자)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믿는다"고 피력했다.
한편 생존수형인 18명은 2017년 4월 19일 재심을 청구, 지난해 9월 4일 결정돼 재판 과정에서 직접 당시를 증언했지만 행불인수형자의 경우 유족이 이를 입증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