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 포부 ‘헛구호’
제주포럼,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 포부 ‘헛구호’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9.06.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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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窓] 국제포럼 위상에 걸맞는 대외용 이슈도 미흡
미중 무역전쟁,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 다뤘지만 ‘변죽만’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5월 29일부터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시작된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31일 JDC 평화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사흘간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제주포럼의 시작은 지난 2001년 ‘동북아의 공동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평화포럼’에서부터였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해 제주에서 열린 제1회 제주평화포럼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개막식 연설을 통해 자신이 줄곧 주창했던 ‘햇볕정책’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거듭 강조했다. 1년 전 6.15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리 한국 민족과 세계평화 역사에 참으로 의미 깊은 사건이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제1회 제주평화포럼이 열리기 전 5월에 페르손 스웨덴 총리 방북 때 북한이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다짐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겠다고 천명한 점, 미사일 발사 실험을 2003년까지 연기하겠다고 밝힌 내용 등을 소개한 데 이어 6월 6일 부시 미국 대통령도 북한과 대화 재개 입장을 밝힌 데 주목하기도 했다.

제주평화포럼이 열리기 일주일 전에는 금강산 육로관광과 금강산 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하기로 남북간에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최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렇다할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고 있는 분위기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모습이다.

김 대통령이 당시 “남북관계의 개선은 미·북 관계 개선과 병행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돌이켜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온도 차이가 있긴 했지만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제1회 제주평화포럼이 열렸던 당시는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기 훨씬 전이었다.

1991년 한·소 정상회의가 제주에서 열린 후 한·중, 한·일 정상회의 등 양자간, 혹은 다자간 정상회의가 6차례나 이어지면서 제주가 국제회의 및 정상회담 개최지로 주목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제주에서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열린 당시 제주평화포럼은 이후 정부가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이후 2003년 제2회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제4회 제주평화포럼에도 참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두 번째로 제주포럼에 다녀간 후 그 해 10월 7년만에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초창기 제주평화포럼이야말로 당시 남북 화해 분위기와 역사적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평화정책의 산실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해 14회째인 제주포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초창기 제주평화포럼 당시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지난 30일 열린 개회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지난 30일 열린 개회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아시아의 회복탄력적 평화 : 협력과 통합’이라는 대주제를 내걸고 사흘 동안 41개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71개에 달하는 세션이 진행됐지만, 국제 사회에 대외적으로 내놓을 만한 뚜렷한 이슈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전 세계 지도자와 전·현직 고위 인사, 주한 외교단, 국제기구 대표, 학자, 기업인, 언론인 등 70여개국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안에 담긴 내용은 없이 껍데기만 화려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결국 제주포럼에 참석하지 못하고 애초 포럼에 참석하기로 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포럼에 오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무엇보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인사들을 모시고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국제’ 포럼이라면 하다 못해 애초 포럼을 개최하면서 내걸었던 대주제에 걸맞는 묵직한 이슈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중 무역전쟁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 주제를 다룬 세션도 진행되긴 했지만 정작 국내에서조차 주목을 끌지 못했다.

더구나 포럼 기간 중 세션이 열린 회의장을 들어가보면 토론자는 물론 심지어 주제발표를 맡은 인사들도 사전에 준비한 발표 원고나 자료도 없이 마이크만 잡고 발언하고 있는 상황이 수차례 확인됐다.

갈수록 포럼의 ‘격’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참가자들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 향후 제주포럼의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포럼 기간을 정해놓고 참여하는 기관별로 세션 주관을 맡겨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세션을 아우르는 이슈를 도출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주제를 내걸고 진행된 특별세션이나 특별대담이 ‘그들만의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초창기 ‘제주평화포럼’으로 시작해놓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주제를 경제, 관광, 문화 등 분야까지 다변화한 것이 포럼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함께 대안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대로라면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을 지향한다는 제주도의 야심찬 구상은 한낱 구호에 그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는 다보스 포럼의 경우 매번 그 시기에 걸맞는 아젠다와 이슈를 제시하기 위해 미리 주제를 선정, 참가자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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